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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송승헌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한결같은, 송승헌 같은 배우 하나 있어도 좋지 않을까.

UpdatedOn May 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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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와 코트는 모두 드리스 반 노튼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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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는 돌체앤가바나 제품.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지금도 중고등학교 친구들 볼 때가 제일 편해요.
그 친구들은 제가 학생일 때 만났기 때문에
제게 특별하거나 과하게 해주지 않아요. 그게 제일 좋아요.”

 

화보 촬영을 많이 안 하시죠?
오랜만이었어요. 화보를 즐겨 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택배기사>가 공개되었으니 그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혜성 충돌 후 한반도가 사막화되면서 산소가 부족하다는 설정이에요. 배역상 저희 아버지인 천명그룹 류재진 회장님이 지구에 남은 1%만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요. 자원은 한정돼 있고 산소 생산량은 부족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계급이 나뉩니다. 모두를 데리고 갈 수 없는 상황이죠. 거기서 갈등이 생깁니다.

맡은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분법적으로는 악인일 수 있죠. 제가 연기한 류석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거예요. 사람이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 다르잖아요. 류석은 겉으로는 독단적이고 냉정하고 악해 보일 수도 있는데, 한편으론 이해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해요. 무조건 악인은 아닌 것 같아 애착을 느꼈습니다.

배우의 삶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캐릭터를 연기해서 보여주는 건 제 역할이지만 뒤에서 도와주시는 분을 포함해 한 작품에는 스태프가 많습니다. 배우 뒤에는 1백 명에서 2백 명의 현장 스태프가 있어요. 그런 분들은 보이지 않으니 책임은 오롯이 제가 져야죠.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이나 감수해야 합니다. 영광을 제가 받을 때도 있고, 또 비판도 수용해야 하고요.

연륜을 생각하면 당연합니다만 어른스러운 말씀이군요.
어릴 때는 배트맨이 좋고 조커가 나쁜 놈인 줄 알았는데 커서 보니 조커도 나름 이유가 있죠. 보는 입장에 따라 다앙한 의견이 있음을 갈수록 느낍니다.

기초적인 질문이라 민망합니다만, 연기를 하면 뭐가 좋습니까?
예전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는데 20~30대에는 큰 재미를 못 느꼈어요. 주변 사람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연기자가 꿈이었던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내가 연기자가 될 줄 몰랐다’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연기에 대해 준비하지 않은 채 20대 초반 우연한 기회에 시작했습니다. 운이 아주 좋았죠. 그렇게 30대 초중반까지는 ‘이게 뭐지’ 하는 마음으로 지나왔어요. 연기가 재미있다기보다는 ‘이게 내 직업인가 보다. 내 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현장의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해서 편하지도 않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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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는 르메르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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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코트는 보테가 베네타 제품.

남들이 지켜보는데 뭔가 하는 게 쉽지 않죠.
제가 굉장히 낯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이었거든요. 아는 사람들만 보고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성격이 못 됩니다. 그래서 오해를 받기도 하고 더 위축되기도 했어요. 그러던 게 30대 중반부터 현장에서 일부러라도 더 어울리려고 했어요. 같이 밥도 먹고, 감독님과 스태프와 어울려서 이야기도 하고. 스태프와 어울리면 더 편해진다는 걸 깨닫고 나니 요즘은 현장 가는 게 아주 재미있어요. 작품을 연기할 때도 느껴요. 20대 때는 왜 이렇게 못했을까 조금 후회할 정도로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모든 걸 느끼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결국 선배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이 들면 성숙해지고, 그러면서 느끼는 것 같아요.

선배들께 많이 물어봅니까? 모르는 게 생기면 누구에게 묻습니까?
연기 부분에서는 감독님이나 작가님께 물어보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살아가면서는 결국 친구나 친한 지인에게 묻습니다. 결국 동의를 구하는 거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만요.

고집이 있는 편인 것 같습니다.
있죠. 저는 모르겠는데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편한 게 좋아요. 기본적으로 유행에 민감하지 못해요. 뭔가를 크게 바꿔볼까 한 적도 없고. 익숙한 게 좋고 오래된 사람들이 좋아요.

오히려 멋있어 보입니다. 요즘은 모든 게 너무 빨리 바뀌니까요.
이런 제 성격이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겠죠.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지금도 중고등학교 친구들 볼 때가 제일 편해요. 그 친구들은 제가 학생일 때 만났기 때문에 제게 특별하거나 과하게 해주지 않아요. 그게 제일 좋아요. 사회에서 만난 분들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요.

오래 해온 취미도 있습니까?
연기 말고 꾸준히 하는 건 운동 정도입니다. 자전거 타고, 영화 보고, 게임하고,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 정도예요. 취미보다는 연기 때문에 새로운 걸 많이 배웁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지휘를 배웠죠. 승마나 클라이밍이나 스킨스쿠버를 배운 적도 있고요. 연기 때문이 아니었다면 그런 것을 제가 배우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자전거를 탄다면 어디로 가십니까?
한강 나가서 남산을 돌아 북악까지 갈 때도 있고, 팔당이나 양수리까지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알아보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마스크와 헬멧과 선글라스를 끼니까 괜찮아요. 누가 알아봐도 크게 신경 안 씁니다.

알려진 채로 사는 것도 쉽지 않겠습니다.
성인이 되자마자 이 일을 시작해 익숙해져서 그런지 크게 불편하지는 않아요. 사람이 많은 카페나 식당을 즐길 수는 없지만요. 식당에 가면 구석 자리를 택하는 정도의 신경은 씁니다. 차가 있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도 않고요. 대중교통을 안 탄 지도 오래됐네요.

기본 요금 모르시죠?
차를 소유한 후부터는 그러네요.

저도 모릅니다. 요즘은 교통카드를 찍으니까 딱히 감이 없어요.
표를 사는 게 아니고요? 지하철 탈 때 표 사잖아요. 노란 티켓. (잠깐의 정적 후 송승헌이 웃었다. 멋진 미소였다.) 진짜 대중교통 안 탄 지 오래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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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는 질 샌더 by 지스트릿 494 옴므, 재킷은 마틴 로즈 by 지스트릿 494 옴므, 팬츠와 플립플롭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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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재킷·코트·팬츠·슈즈 모두 페라가모 제품.

어릴 때 스타가 되셨고 그 이후로 대중교통 체계가 크게 바뀌었으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생활이 단순하겠네요. 연기하고, 운동하고, 만나던 친구들.
기본적으로 집에 있는 성향이에요. 어느 날 ‘뭐 하고 있었지?’ 싶어서 보면 2~3일 동안 집에 있어요. 할 일이 없으면 약속 잡는 사람들도 있죠. 저는 약속 없이 집에 있는 날이 제일 좋아요.

이사도 조금만 다녔습니까?
두세 번 정도입니다. 이사를 한 계기는 독립이었고요. 어머니는 여전히 제게 “밥은 먹고 다니니?”라고 물어보세요. 밥을 못 먹고 다니는 줄 아시나 봐요. 저 밥 잘 먹고 다닙니다. 요즘 다 너무 잘되어 있잖아요. 배달 음식도 잘되고.

송승헌 님 같은 분도 배달 음식을 드십니까?
일단 요리를 잘 못하고요, 저는 배만 부르면 되는 성격이에요. 맛을 안 따져요. 생쌀 먹고 배만 부르면 될 정도로. 한 번은 후배랑 같이 운동하고 강북의 유명한 식당에 갔어요. 굳이 강남에서 다리 건너 어디로 가자고. 친구는 거기 가려고 주말에 방 예약을 하는 등 굉장한 노력을 했는데 저는 한마디 했습니다. “이걸 먹으러 왜 여기까지 왔니. 이런 맛 비슷한 데 많잖아.”

다른데···.
(웃음) 저는 미식가가 아니에요. 주변에 친한 신동엽 형이나 김영철 선배는 굉장한 미식가라서 저랑 밥 먹으면 화를 내요. 어렵게 식당을 예약해서 갔는데 저는 이걸 먹자고 여기로 온 거냐고 하니까요.

신동엽 님과도 무척 오래된 인연이네요.
동엽 형은 제가 <남자 셋 여자 셋> 하던 때부터 알았으니 25년 전부터 알았죠. 진짜 시간이 빠르네요. 동엽 형 덕분에 (김)영철 형과도 가까워졌어요. (소)지섭이도 한 살 동생이지만 같이 데뷔해서 지금까지 제일 자주 보는 동생이에요. 옷도 그렇고, 오래되고 편한 게 좋아요.

정말 일관성이 있네요. 꾸준히 하고 잘 바꾸지 않고.
약 20년 전 제 데뷔 초창기에 교복 입고 오던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제 팬클럽 회장까지 했는데, 보통 회장까지 하면 중간중간 연락도 하고 우리 매니저도 알아요. 그 친구에게서 어느 날 연락이 왔어요. 결혼한다고. ‘촬영 등 일정 때문에 못 오시겠지만 자기 결혼하는 걸 알리고 싶어서 청첩장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제가 거기에 갔어요.

진짜요?
저도 그런 경우가 처음이었어요. 신부 대기실에 갔더니 이 친구가 너무 놀랐는지 절 보고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순간 저도 갑자기 찡해지고요. 내가 알던 그 친구는 교복 입고 와서 오빠 좋다고 하고 팬클럽 회장까지 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본 꼬맹이가 이제 시집을 간다니.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기쁜 마음으로 갔다가 우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찡했어요. 창피하기도 하고, 내가 여기 왜 있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야 너 왜 그래~”라고 하면서 분위기를 돌렸죠. “빨리 사진 하나 찍고 하자”라고 말하면서요. 제가 막내라 동생이 없는데 여동생이 시집가면 이럴까 싶은,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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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과 팬츠 셋업은 르메르,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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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감정이 아닌데 갑자기 찡할 때가 있죠.
오래된 팬분들이 정말 고맙죠. 신인 때, 내가 아무것도 아닐 때부터 나를 좋아해주셨던 분들. 그런 분들을 보면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싶어요. 그분들이 원하는 게 다른 거 없어요. 제가 더 많은 작품에서 좋은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 그 모습을 보고 웃고 울고 힐링이 된다고 해주세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깨닫게 됩니다. 이 일이 그냥 직업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감동도 줄 수 있다는 걸요. 그건 연기자라는 직업의 큰 장점이고 감사한 일이에요. 직업으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님이나 작가님도 있습니까?
너무 많죠. <택배기사>를 연출한 조의석 감독님과는 함께 멜로 작품을 해보고 싶고, <히든 페이스>를 함께한 김대우 감독님과는 다음엔 코믹 영화를 찍고 싶어요. 조의석 감독도 20년 지기 친구입니다.
이분은 액션을 좋아하고 멜로 감성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더욱 그의 멜로 영화가 보고 싶습니다. 김대우 감독의 위트와 유머를 살린 코미디 영화도 해보고 싶습니다.

특별히 해보고 싶은 장르는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는 반전이 있는 스릴러 영화예요. <세븐>이나 <트레이닝 데이> 같은 누아르적인 영화들, 아니면 <노 웨이 아웃> 같은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런 작품은 많이 못 해본 것 같아요. 제가 반듯한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 걸 깨고 싶어서 <인간 중독>을 했습니다. 파격적인 사랑이고 노출도 있었고요. 그때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어요. <플레이어>에서는 조금 더 자유분방하게 해보기도 하고요. 그런 시도를 많이 해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괜찮은 놈’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는 기억되지 않아도 돼요. 그런데 ‘그 자식 별로야’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아요.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기억을 줄 수는 없을 거예요. 어떻게 모두에게 좋은 기억을 주겠어요. 10명 중 10명이 저를 다 좋아해주지도 않고요. 그런 건 괜찮아요.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남자답고 쿨한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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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박찬용
Photography 천영상
Stylist 황난
Hair&Make-up 김현진

2023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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