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든 나쁘든 계속 변하지 않는다
작은 체구의 노인이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에 오른다. 회색 블레이저에 운동화를 신고 등장한 남자는 마이크를 쥐고 첫인사를 건넸다. “곤니치와.”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목소리였다. 그 주인공은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다.
안도 다다오는 누구인가? 프로 복싱선수를 꿈꿨던 청년 안도 다다오는 한 목수(木手)와의 만남 이후 건축가의 길로 들어선다. 대학에 가진 못했지만 스승은 어디에나 있었다. 로마 판테온의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을 보며 ‘저 빛처럼 살겠다’ 다짐했고 그는 오사카로 돌아와 건축가가 되었다. 세상은 이제 그를 이렇게 부른다. ‘빛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지난 3월 안도 다다오는 자신이 세운 뮤지엄 산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서울과 원주를 오가며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여전히 묻고 싶은 것들이 남았다. 우리는 일본으로 돌아간 안도 다다오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그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모든 질문에 직접 꼼꼼히 답변하길 원했다. 이어지는 인터뷰는 영어로 작성한 질문과 일본어로 말한 답변을 옮겨 완성됐다.
한국에서 연 첫 번째 개인전의 제목은 ‘청춘’입니다. 어떤 뜻을 담고자 하셨나요?
저는 인간도 건축물도 미숙하면서 도전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냥 원숙하고 침착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게 ‘영원한 청춘’의 정신이죠. 이러한 생각을 전시회 제목에 담았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 건물을 세워서 재방문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의 기분은 어떨까 궁금했어요.
도시는 생물이기에 시간이 흘러 되돌아가면 그 변화에 놀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제가 만든 건축물에 방문하면 뭔가 안심되는 기분이 들죠. 물론 건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합니다. 처음 생각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사용되고, 또 그곳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기쁘죠. 이 일을 하면서 스스로 가장 ‘잘했다’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표작 2백50여 점이 소개됩니다. 관람객이 어떤 것을 중점으로 관람하면 좋을까요?
우선 각 프로젝트의 메인 테마에 따라 섹션을 나누었습니다. 다만 관람객이 너무 형식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감성으로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가장 큰 전시물이라고 할 수 있는 뮤지엄 산의 공간을 오감으로 느끼시면 좋겠습니다.
안도 다다오 건축의 특징 중 하나는 노출 콘크리트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일본 시공팀 덕에 가능한 일 같기도 한데요. 다른 나라에서는 시공 품질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혹은 무언가 포기하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확실히 일본인에게는 섬세함을 선호하는 국민성이 있습니다. 일본의 시공 정밀도는 상당하지만 ‘정확도가 높다’는 것이 그저 ‘좋은 콘크리트’를 뜻하는 건 아닙니다. 저마다 지향해야 할 공간, 그에 걸맞은 콘크리트의 표정이 있어요. 그 지역에서 기술의 정수를 다해 만들어낸다면 그게 그곳에서는 최고의 콘크리트인 겁니다. 뮤지엄 산에서는 섬세함보다 오히려 힘 있는 느낌을 요구했는데, 잘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안도 다다오 건축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별로 의식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무게’라든가, ‘금욕주의적인 점’이라든가, ‘좋든 나쁘든 계속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반세기 넘게 이 일을 해오면서 수많은 찬사와 상을 받았잖아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스미요시 연립주택’을 만들고 받은 일본건축학회상이 아니라, 오히려 받지 못한 요시다 이소야상입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대선생께서 “이 건축물은 만든 사람보다 만들게 한 사람(클라이언트)에게 상을 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여러 해를 거치며 경험을 쌓을수록 그 말의 무게를 통감하게 됩니다.
건축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복싱선수로 활동했죠. 그러다 ‘일본 복싱의 전설’ 파이팅 하라다를 보고 재능에 한계를 느껴 복싱을 그만뒀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만일 그 만남이 없었다면 계속 복싱선수로 남았을까요?
아니요. 결국에는 언젠가 재능의 한계를 깨닫고 그만두었겠지요. 빠른 시일 내에 압도적인 재능을 만나 납득하고 포기할 수 있었으니 저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에서 복싱과 건축의 유사점을 찾으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본인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건축가와 글러브를 끼고 링에 서는 복싱선수는 물론 완전히 다른 직업입니다. 삶의 방식도 다를 테고요. 하지만 마음의 불안을 이겨내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투쟁’이라는 점에서 두 직업은 제게 동일합니다.
여러 대표작 중에는 건물주의 반대를 이겨내고 완공된 것들이 많습니다. 건물주를 설득할 수 있는, 혹은 반대를 무릅쓰고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비결이 있나요?
반대를 무릅쓰고 클라이언트의 뜻에 반하는 것을 만든 적은 없어요. 다만 기세 좋게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고 다른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웃음) 애초에 저는 가치관이 같은 사람과 어느 정도 신뢰 관계를 쌓고 일을 시작하니까요. 제안에 합리성이라든지, 혹은 정통성이 있으면 대체로 받아주죠. 결국 중요한 것은 디자인도 돈도 아닌 인간 간의 신뢰입니다.
전 세계에 교회와 절, 미술관, 주택, 지하철역을 세웠습니다. 아직 지어보지 못한 것 중에 세우고 싶은 건축물이 있나요?
딱히 생각나지 않네요.
사적인 질문이지만, 안도 다다오는 과연 어떤 집에 살까 궁금했습니다.
건축사무소를 열고 한동안은 태어나고 자란 목조 연립주택에 살았습니다. 지금 사는 곳은 아틀리에 근처의 평범한 아파트입니다. 자주 ‘자기 집을 설계하지 않나요?’ 물어보시는데 그럴 마음은 안 드네요. 건축물을 만든다는 것이 역시 저에게는 ‘일’이란 얘기죠. 하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아틀리에 건물은 제가 설계했습니다. 그 작업장이 저의 홈그라운드죠. 집은 오히려 잠만 자는 곳일 뿐입니다.
출세작으로 알려진 ‘스미요시 연립주택’부터 ‘빛의 교회’ ‘물의 교회’ 등은 안도 다다오의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본인의 대표작 다섯 개만 골라줄 수 있나요?
각각의 일에는 그만의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쉽게 선택할 수 없지만, 기자님이 예로 든 초기 작업물들에는 특별한 애정이 있죠. 경험이 없고 아슬아슬하게 살았던 만큼 긴장감을 갖고 만들었으니까. 그만큼 마음이 깊이 담겨 있어요.
좋은 건물은 어떤 건물입니까?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아름답게 나이를 먹으면서 살고 있는 건물입니다.
1965년 로마 판테온을 방문하셨죠. 그때 천장에서 내리쬐는 빛을 보며 ‘이 빛처럼 살자’라고 다짐했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이 빛처럼 살자’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었을까요? 그리고 다짐을 이루셨나요?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나요?(웃음) 하지만 분명 기억나는 것은 구체의 돔 안에서 움직이는 빛에 감동했다는 겁니다. 이것이 ‘건축의 빛인가!’ 하면서요. 자연이야말로 생명의 원천이고,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입니다. 빛은 만물의 어머니인 자연이 추상화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살아 있는 자연의 상징이니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안도 다다오는 어떤 건축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남의 머릿속, 마음속 이야기는 제가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 가고 싶은가?’라고 한다면, 한시도 망설이지 않고 “영원한 청춘을 산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웃음)
안도 다다오가 한국에 세운 대표 건축물
‘제주 글라스하우스’ 제주 서귀포시 2008
‘본태박물관’ 제주 서귀포시 2012
‘뮤지엄 산’ 강원 원주시 2013
‘마음의 교회’ 경기 여주시 2014
‘JCC아트센터’ 서울시 종로구 2015
‘유민미술관’ 제주 서귀포시 2017
‘LG아트센터’ 서울시 강서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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