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와의 인터뷰는 8년 만이네요. 제 눈에는 당시 화보 속 모습과 큰 차이가 없는데, 본인은 어떻게 느끼나요?
일단 얼굴이 좀 늙었죠.(웃음) 마음가짐은 많이 달라졌어요. 8년 전 저는 늘 미래 속에 살았거든요. 뭔가를 꼭 이뤄야 한다는 강박이 컸죠. ‘네가 지금 어떻게 잠이 와, 실수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하면서 저 자신을 스스로 못살게 굴었어요. 연기를 쉬는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들한테는 칭찬도 위로도 잘해주면서 정작 나한테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조금 슬프더라고요. 정작 내가 내 편을 못 들어줬구나. 요즘에는 스스로 칭찬도 해주고,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걸 해요.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려고 하다 보니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됐어요.
인지도에 비해 생각보다 화보 촬영은 별로 안 했더라고요. 오늘처럼 화보 촬영이 있으면 전날 긴장되기도 하나요?
전혀 아닙니다. 모델로 처음 일을 시작해서인지, 촬영장에 오면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에요. 물론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은 있죠. 그래도 화보 촬영은 늘 마음이 가볍고 즐거워요. 오늘도 그랬고요.
오늘 아침에는 어떤 노래 들었나요?
휴대폰 잠깐 볼게요. 잔나비의 ‘꿈과 책과 힘과 벽’ 들었네요. 요즘 예능 프로그램 <수학 없는 수학여행>을 챙겨 보고 있거든요. 사랑하는 동생 도경수가 나와서.(웃음) 함께 출연한 가수분들 음악도 찾아 듣는데, 이 노래는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5월 12일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택배기사>가 공개됩니다. SF 장르물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먼 미래의 캐릭터를 연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죠. 실제 촬영은 어땠나요?
아무래도 CG가 많다 보니 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장면이 많았어요.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외계+인>을 워낙 오랫동안 촬영해서 크게 어렵진 않았어요. 조의석 감독님과도 <마스터>에서 호흡을 맞춰본 터라 즐겁게 촬영했습니다.
이런 게 팀워크구나 싶네요. 연기를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제는 선배로 불릴 일이 많을 텐데, 촬영장에서도 선후배의 역할이 존재합니까?
촬영장에서는 후배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도 선배님이라고 불러요. 선배 배우로서의 역할보다 한 팀 안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죠. 축구팀에 공격수, 수비수가 있는 것처럼요. 감독도 배우도 스태프도 목표는 같잖아요. 좋은 작품 만드는 것. 영화도 드라마도 결국 사람이 모여서 만드는 일이니까 현장 분위기가 좋아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굳이 역할이라고 한다면, 한 번이라도 먼저 인사하고 가깝게 지내는 거예요.
배우 일 역시 스크린 안팎으로 챙겨야 할 것이 많네요. 작품만 볼 때는 지질한 캐릭터와 극악무도한 캐릭터를 모두 해낼 수 있다면, ‘좋은 배우’라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제게는 김우빈이라는 배우가 그렇고요. 좋은 배우는 어떤 배우라고 생각하나요?
일단 연기를 잘해야겠죠. 돈 받고 하는 직업이니까요. 다만 좋은 연기, 좋은 배우의 기준은 늘 고민하고 있어요. 연기에 정답은 없잖아요. 때문에 스태프와 잘 소통하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김우빈을 검색하면 ‘인성 좋은 배우’가 많이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택배기사>에서는 ‘비범한 싸움 실력을 갖춘 전설의 택배기사 ‘5-8’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번에도 싸움 잘하는 캐릭터예요.
아무래도 뭐 이미지가.(웃음) 에디터님은 왜 웃으세요! 아무래도 제가 키가 크고 얼굴에서 풍기는 느낌 때문에 그런 역할을 자주 맡겨주시는 것 같아요.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저도 들어본 적은 없어요.
자기 작품을 몇 번이고 잘 보는 분이 있는가 하면, 보기 힘들어하는 분도 있더라고요. 어느 쪽인가요?
잘 못 봐요. 물론 제가 출연한 모든 작품을 좋아하지만, 그냥 제 연기를 보는 게 힘들어요.(웃음) 오래된 작품일수록 더 못 봅니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저 때 왜 저렇게 했지’ 하는 마음만 커져요.
그나마 보기 편한 작품도 있나요?
<우리들의 블루스>요. 일단 다른 출연작에 비해 분량이 적기도 했고요.(웃음) 다른 배우분들이 워낙 훌륭하게 연기하셔서 볼 때 마음이 되게 좋았어요.
배우로서 어떤 칭찬을 받을 때 가장 기쁜가요?
‘연기 잘한다’ ‘작품 잘 봤다’라는 말도 좋지만, 동료에게는 ‘보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 감사하죠. 촬영 기간이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일 년을 넘기기도 해요. 우리가 일 때문에 만났지만, 어쨌든 그 기간 동안은 같이 사는 거잖아요.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해요. 보고 싶다는 건 그만큼 행복했다는 뜻이니까. 그런 연락을 받을 때 내가 잘하고 있구나 싶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이따금 그림 선물도 하나요?
저는 늘 추상화를 그려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다른 그림을 잘 못 그려서.(웃음)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 몇 년 다닌 게 전부예요. 선물은 딱 한 번 해봤어요.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를 촬영하는 동안 그린 그림인데, 쫑파티 하는 날 이경희 작가님께 드렸어요.
독특하게 첫 활동 이후 활동명을 본명에서 예명으로 바꿨죠. 김현중과 김우빈은 무엇이 같고 다릅니까?
다른 점은 분명히 있어요. 저는 그걸 ‘김우빈 모드’라고 부릅니다.(웃음) 전 되게 내성적이고 낯을 정말 많이 가리거든요.
지금까지 이야기 나누면서 느낀 바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요. 이게 김우빈 모드예요. 배우는 남들 앞에 서는 직업인데 언제까지고 낯을 가릴 순 없잖아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진 못하지만 조금은 더 편안하게 말하게 돼요. 실제로 많이 도움되기도 하고요.
예명으로 활동하는 연예인에게 궁금했던 점인데, 부모님은 어떤 이름으로 부르나요?
저희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이름보다는 ‘아들’이라고 부르세요. 거의 없는 일이긴 한데, 제 본명을 모르는 분들과 있을 때는 간혹 우빈이라고 부르셨던 것 같아요.
여러 인터뷰에서 ‘영업을 잘한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팬이려나 싶었습니다. ‘나 이것까지 영업해봤다’ 하는 게 있을까요?
그 영화를 정말 좋아하긴 해요. 주인공이 영업을 잘해서 좋아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면 제가 영업왕을 자처하는 게 그 영화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웃음) 한번 생각해봐야겠어요. 저는 차 팔아본 적 있어요. 어느 날 친구가 어떤 차를 산다고 하는데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제가 볼 때는 기아 K7이 딱 적당했거든요. 그때부터 길에 K7이 있으면 ‘저 옆에 서봐. 내가 사진 찍어줄게’, 혹시나 K7 택시를 타면 ‘야, 봐봐. 실내 봐. 너 아기 낳으면 유모차도 넣어야 되는데 그 차 너무 작잖아’ 하면서 계속 영업했어요. 결국 그 친구 K7 사서 3년째 아주 잘 타고 있습니다.
배우 일도 하다 보면 질문하고 싶어질 때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찾는 분이 있나요?
이경희 작가님을 자주 찾아봬요. 작가님께 여러 질문도 드리지만,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연락드리는 것 같아요. 한 번씩 뵙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분이니까.
5년의 공백이 있었고 올해는 두 편의 신작 공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금 김우빈에게 가장 두려운 건 뭔가요?
하루가 너무 빨리 가요. 심지어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져요. 무섭다기보다는 깜짝깜짝 놀라죠.
배우 한석규 씨는 ‘배우는 나이 먹는 걸 기다리는 직업’이라고 말한 적 있어요. 우빈 님께서도 한 인터뷰에서 얼른 마흔이 되고 싶다고 한 적 있더라고요. 나이 먹는 게 기다려지는 이유가 있나요?
당시 그렇게 얘기한 이유는, 살면서 쌓인 경험이 연기에 도움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느껴본 감정이라면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마흔의 남자라면 아주 많은 경험을 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죠. 지금은 별로 마흔이 되고 싶지 않아요.(웃음) 서른다섯의 김우빈이 딱 좋아요.
좋아하며 즐길 수 있는 일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다르죠. 김우빈에게 연기는 어떤 쪽인가요?
마냥 즐길 수 없는 일이죠. 여전히 어렵고 무섭기도 해요.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저는 연기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잘하고 싶어요.
지금으로부터 또 한 번 35년이 지났을 때, 김우빈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저는 늘 좋은 사람,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 ‘좋은 사람, 좋은 배우는 뭘까’ 늘 고민하고요. 좋은 사람. 누군가를 떠올렸을 때 기분이 좋으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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