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산토스의 스워드 핸즈
시계 기사를 쓸 때 고민되는 것 중 하나가 각 부위의 명칭 표기다. 기계식 시계는 서양의 산물이므로 시계 부품의 원래 명칭은 외국어다. 케이스나 투르비용을 어디까지 번역할까? 용두도 생각해보면 미묘하다. 용두는 일본에서 쓰는 일본식 조어고 영어 명칭도 크라운이니 용두보다는 크라운이 낫다고 본다. 이 기사에서는 시침, 분침, 초침 등 시계를 이루는 침적 요소를 모두 핸즈로 칭한다. 핸즈의 세계에도 변수가 아주 많다. 까르띠에 산토스의 시간을 보여주는 핸즈는 ‘스워드 핸즈’라 부른다. 이름처럼 칼 모양으로 생겼다는 뜻이다. 영롱한 파란색도 이야깃거리가 있다. 채색을 한 게 아니라 열 처리로 만든 색이다. 스틸에 300℃ 이상의 열을 균일하게 가하면 산화물이 얹히며 이렇게 튼튼한 파란색이 나온다. 파란색 시계 핸즈가 잦은 이유이기도 하다.
IWC 포르투기저의 리프 핸즈
시계 핸즈의 큰 변수는 굵기다. 시계 핸즈는 크게 둘로 나뉜다고 봐도 될 정도다. 굵은 핸즈와 가느다란 핸즈. 고전적 시계 용어로 말하면 드레스 워치류에는 가느다란 핸즈, 스포츠 워치류에는 굵은 핸즈를 쓴다. 역시 모두 쓰임새와 연관된다. 드레스 워치의 ‘드레스’는 서양 남성이 차려입은 ‘드레스업’을 뜻한다. 이 차림에 어울리는 시계는 단정하고 핸즈가 가느다란 시계다.
오늘날의 고가 시계는 사실상 모두 액세서리가 되었다. 아무 차림에 아무 시계나 차도 상관없다. 그러나 옛날 분류는 아직 이어져서 드레스 시계 느낌을 내고 싶을 때는 가느다란 핸즈를 쓴다. IWC 역시 창립 1백 년이 넘은 오늘날도 성실하게 시계를 만든다. 단정한 시계인 포르투기저에 고전적인 ‘리프 핸즈’를 얹었다. 실로 나뭇잎처럼 완만한 곡선을 볼 수 있다.
튜더 펠라고스의 스노플레이크 핸즈
핸즈는 시계 디자인을 넘어 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굵은 핸즈는 가느다란 핸즈에 비해 무겁다. 무거운 핸즈를 돌리려면 무브먼트의 토크가 높아져야 한다. 무브먼트의 토크가 높아지려면 무브먼트의 물리적인 크기가 확보되어야 한다. 무브먼트의 크기는 시계의 크기와 직결되며 시계의 크기는 소비자의 선호도와 직결된다. 하나의 변수에 모든 것이 연결되는 것이다.
튜더는 ‘스노플레이크’라는 자사만의 핸즈를 가지고 있다. 눈송이라는 이름처럼 기본적인 막대형 인덱스에 마름모 모양으로 핸즈를 튀어나오게 했다. 보기 편하고 디자인도 특징이 있는 동시에 자사의 상위 브랜드인 롤렉스의 다이버 시계 서브마리너의 시침보다는 단순하다. 롤렉스와 튜더는 기술과 철학을 상당 부분 공유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렇게 조금씩 디테일에 차이가 있다.
오메가 씨마스터의 애로 핸즈
스포츠 시계의 바늘이 굵은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실용적인 이유가 있다. 잘 보이기 위해. 특히 다이버 시계는 예전에 실제로 물속에서 시간을 봐야 하는 사람들이 쓰던 진지한 기구였다. 방수와 시인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타 시계에 비해 야광 표시 부분이 큰 이유도 잘 보이기 위해서다. 오늘날 고가 손목시계의 장식적인 실루엣은 모두 예전의 기능적인 사연을 품고 있다.
오메가는 자사의 스포츠 시계에 화살 모양 ‘애로 핸즈’를 쓴다. 오메가의 훌륭한 만듦새는 핸즈를 봐도 알 수 있다. 가운데를 살짝 접고 화살표를 위해 깎아낸 부분도 많으며 안쪽에 들어간 야광 표시는 확대해봐도 흐트러짐이 없다.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시계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세공이 더 많이 되었다. 이런 요소가 모여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고가품이 만들어진다.
몽블랑 지오스피어의 카테드랄 핸즈
몽블랑 지오스피어의 핸즈 모양을 ‘카테드랄 핸즈’라 부른다. 중세 유럽 대성당에서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무늬를 닮아서다. 카테드랄 핸즈를 적용하는 브랜드는 요즘 보기 힘들다. 공이 많이 드니까. 그래서 카테드랄 핸즈를 적용한 브랜드에게 괜히 정이 갈 때가 있다. 오늘의 몽블랑 말고도 오리스가 카테드랄 핸즈를 자주 쓴다. 둘 다 가격 대비 구성이 좋다.
몽블랑은 전통의 스위스 시계 브랜드 미네르바를 인수하며 시계 제작 노하우를 흡수해 상당히 수준 높은 시계를 만든다. 이 시계는 다이얼 내부에 산소를 완전히 제거해 고도차가 큰 곳에서도 김이 서리지 않는다. 핸즈도 나무랄 데 없이 잘 만든 카테드랄 핸즈다. 공들여 다듬어 뾰족하게 만들고 야광 소재를 빈틈없이 채웠다. 실제 디테일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하다.
태그호이어 모나코의 바통 핸즈
시계에 큰 관심이 없다면 ‘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맞기도 하나 세상엔 시계 핸즈의 종류가 이렇게 많다. 핸즈는 각기 포지셔닝, 전통, 기능적 필요성과 한계 등에 따라 갈라파고스 군도의 새 부리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했다. 그 진화의 흐름과 맥락을 알아보는 것도 즐거운 취미 생활이 될 것이다. 모두 각자 사정에 따라 진화했을 뿐이다.
태그호이어 모나코는 크로노그래프 명가 태그호이어를 대표하는 시계 중 하나다. 핸즈 역시 드라이버 워치라는 캐릭터에 따라 자동차 계기반의 눈금처럼 생겼고, 고급 시계답게 미세한 홈을 판 뒤 야광 물질과 페인트를 구획 맞춰 넣었다. 이 모든 게 고가품의 디테일이고, 이런 것들이 모여서 멀리서 얼핏 봐도 ‘좋은 시계네’라는 막연한 느낌을 만든다. 모든 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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