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이번 월드컵에서 흥미로웠던 데이터는?
메시가 안 뛰는 건 기록으로도 증명된 유명한 이야기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그랬으나 메시의 아르헨티나가 우승했다. 이번 월드컵은 지난 시대에 중요했던 숫자인 점유율의 시대가 가고 역습의 시대가 왔음을 보여준다. 그 역시 숫자로 드러난다. 경기 중 골이 발생하는 ‘오픈 플레이’에서 골을 넣는 경향이 많아졌다. 기존에는 오픈 플레이에서의 골이 전체 골 수 중 49%대였는데 이번 월드컵에선 오픈 플레이 골이 69%까지 올라갔다. 반면 세트피스 골은 줄었다. 러시아 월드컵 때 세트피스 골이 51골이었는데,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25골로 줄었다.
현대 구기 스포츠의 발전 방향은 ‘공의 움직임을 늘리는 것’이다. 즉 공이 서 있을 때가 상대적으로 많은 점유율 축구보다 공이 움직이는 역습이 많아진 건 현대 구기 스포츠의 방향성이 축구에도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슛 셀렉션이 좋아졌다. XG라는 지표가 있다. ‘그 지점에서 슛을 날렸을 때 득점률이 몇 %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예전에는 5% 정도였는데 이제는 10% 정도까지 올랐다. 그와 관련된 지표가 ‘슛을 가까이에서 때린다’는 것이다. 평균 골 거리(슛 지점에서 골문까지의 거리) 역시 러시아 월드컵 때 15.7m였던 반면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14.5m로 줄었다.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예전에는 그냥 공을 오래 지키는 게 트렌드였다. 그런데 공의 움직임이 많아지는 구기 스포츠의 경향이 반영되어 역습이 많아졌다. 역습이 많아지니까 오픈 플레이에서 골이 많이 나온다. 오픈 플레이니까 더 골문 가까운 곳에서 슛을 하고, 골문 가까이에서 슛을 하니까 슛 정확도가 올라간다. 그래서 최후방 수비수의 수비 라인을 순간적으로 무너뜨리는 ‘라인 브레이킹’이 중요해졌다. 메시가 대단한 건 잘 안 뛰는데 라인 브레이킹에 능하다는 것이다. 잘 안 뛰고도 골을 많이 넣는 조기축구회 아저씨처럼.
황규인(<동아일보> 스포츠부 차장)
02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와 팀은?
선수는 아르헨티나의 앙헬 디 마리아. 나이도 많은데 디 마리아는 빅 매치에서 계속 골을 넣었다. 디 마리아는 2021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유로 2020 우승팀과 코파 아메리카 우승팀이 붙은 ‘2022 피날리시마’에서도 골을 넣었다. 이번 월드컵 결승전에도 골을 넣었다. 메시처럼 대단한 선수가 있는 것도 좋지만 결승전에서는 누군가 골을 넣는 게 중요하다. 디 마리아는 그 중요한 걸 계속해준 것이다. 그렇게 골을 잘 넣었는데도 메시에 비해 주목을 못 받는 팔자에 동정심이 생기기도 한다. 디 마리아 역시 슈퍼스타지만.
가장 인상적인 팀은 어쩔 수 없이 모로코다. 모로코 국가대표 축구팀 26명 중 모로코에서 태어난 선수는 12명뿐, 나머지는 해외동포 개념이다. 감독 왈리드 레그라귀도 국적만 모로코고 사실상 프랑스계다. 모로코는 효율적인 전술인 선수비 후역습 전술을 채택했다. 수비할 때는 완전히 밑으로 수비 라인을 내렸다가 역습할 때 한 방 때려 박으러 올라가는 식으로 축구했다. 이 모든 걸 감안해도 아프리카 팀이 4강에 올라간 건 말도 안 되는 성과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거둔 성과와 비교하면 알 수 있다. 그때 한국은 히딩크가 있었다. 개최국 어드밴티지도 있었다. 장기 합숙도 했다. 모로코는 그런 게 없었는데도 대박이 났다. 그게 정말 어마어마하다.
모로코가 아프리카 팀이라는 것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모로코는 지중해만 건너면 유럽이다. 감독과 선수도 거의 유럽 문화권에 있다. 재외동포가 전체 스쿼드의 반을 넘는다. 그래서 흥미로운 것이다. 모로코 국가대표팀은 ‘조국’의 개념을 생각하게 한다. 이를테면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 한국을 더 사랑할까, 해외에 사는 한국 사람이 한국을 더 사랑할까? 후자인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일본 축구의 전력도 화제였다. 나도 그렇고, 이제 한일전을 할 때 일본이 한국보다 세다고 생각한다. 재일교포는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무조건 한국이 이겨야 한다. 월드컵은 결국 내셔널리즘인가 싶기도 하다.
그 강렬한 내셔널리즘이 월드컵만의 매력을 만든다. 가장 수준 높은 축구는 유럽 챔피언스리그처럼 수준 높은 리그에서 진행될 것이다. 월드컵은 전술이나 팀 구성원 등의 면모를 보았을 때 경기 수준이 세계 수준에서 약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모든 선수들이 아주 몰입해서 뛴다. 국가를 대표한다는 고양감이 월드컵을 특수한 경기로 만든다. 선수들을 보면 심리적 환각 상태라고까지 할 만한 고양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경기 수준이 조금 떨어져도 선수들이 미친 듯이 뛰니까 보는 입장에서도 가슴이 뛰는 것이다.
홍재민(축구 작가, 전 <포포투> 편집장)
03
시인의 눈으로 본 2022 월드컵은?
최근 10년간의 월드컵 중 가장 재미있었다. 아랍 세계에 속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잘하는 것부터 흥미로웠다. 약팀이 강팀을 제압하는 이벤트가 일어나는 게 축구의 묘미다. 우승 팀인 아르헨티나를 꺾은 팀은 사우디아라비아뿐이다. 경기력이 훌륭해서 보기에 더욱 좋았다. 유럽 시즌 중에 월드컵이 열렸기 때문이다. 시즌이 끝난 후에 경기를 하면 선수들이 지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지단은 지친 채 뛰었다. 이번 월드컵은 시즌 중에 열렸으니 선수들이 그만큼 신선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준비했음을 알 수 있었다. 반대로 월드컵이 끝나니까 리그에서 후유증을 겪는 점도 이번 월드컵이 남긴 점이다. 손흥민이나 해리 케인도 리그에서 고전하고 있으니까. 가장 재미있는 경기는 역시 결승전이었다.
최영미(시인, 축구 애호가)
04
월드컵이 K리그 팀의 전술과 운영에 미칠 영향은?
황희찬의 절치부심 결승골과 메시의 대관식이 인상적이었다. 어려움 속에서 외국 감독으로 원정 16강을 이룬 것도 대단하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스타가 나올 것이다. 이미 조규성 등이 유럽의 관심을 얻고 있는데 그는 한국에서도 아주 잘했던 선수다. 한국에서 잘하는 선수가 월드컵에 출전해 빅 리그로 진출하는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
월드컵에서 세계 축구의 트렌드가 보이는 게 사실이다. 세계 축구 트렌드에 따라 각 리그 축구팀의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의 방향성도 달라지고, 그 트렌드에 맞게끔 팀 역시 여러 가지 변화한다. 선수 영입이나 시스템 구성 역시 트렌드를 반영하게 된다. 현대 축구에서는 정보 분석을 통해 코칭 스태프의 역할이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GPS 등 장비를 이용해 선수의 움직임을 디테일하게 파악할 수 있다. 훈련 방식 역시 예전보다는 많은 정보가 있다. 정보가 열려 있으니 실력 격차가 줄어든다. 예전에는 브라질이나 유럽의 스타일이나 방법을 보고 ‘와 잘한다’라고만 했는데, 이제는 우리도 그 경향을 반영할 수 있다.
내가 대표이사로 부임한 강원 FC 역시 세계 축구를 연구할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나타난 역습 전술 역시 최용수 감독이 스리백을 자주 쓰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받아들일 거라 본다. 감독은 본인의 축구 철학과 이번 월드컵에서 본 것들을 비교하며 적절한 포지션의 선수를 투입해 게임 전략을 짤 것이다. 단장의 역할도 있다. 정보 분석의 힘은 스카우트를 할 때 드러난다. 전문 테크니컬 디렉터를 모시고, 실수를 줄이고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며 선수들과 접촉할 것이다.
김병지(FC 강원 대표이사)
05
카타르 현장에서 느낀 카타르 사람들의 축구 사랑은?
카타르에 간 건 처음이었다. 카타르는 국민이 많지 않고 외국인이 많이 사는 나라다. 오히려 월드컵에 원정 응원을 온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등 남미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와서 축제를 즐기듯 경기를 즐겼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가까운 나라에서 온 사람도 많았다.
한국 대표팀 경기 전부를 취재했다. 가장 인상적인 경기는 역시 포르투갈전이다. 한국 대표팀이 출전하지 않은 경기 중에서는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아르헨티니와 호주의 경기를 보는데, 호주를 응원하는 팬들은 거의 없었고 체감상 95%는 아르헨티나 팬이었다. 메시를 찾는 신도 같다는 느낌이었다.
현장에서도 한국의 16강 진출을 예측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첫 경기 전까지도 ‘어렵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우루과이와 포르투갈 모두 축구 강국이니,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도 희망적인 예측이 별로 없었다. 우루과이전을 하고 나서부터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우루과이가 축구 강국인데 우리가 이만큼이나 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가나전은 경기를 잘했지만 결과가 아쉬웠다. 포르투갈전을 이겨야 하는 데다 경우의 수까지 봐야 하니 현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라 예상했다.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르헨티나 경기가 끝나고 “메시는 어디 있죠?”라는 질문을 듣기도 했다. 원래 그 현장에 취재를 가려던 예정은 없었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잡는 이변이 일어났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의 큰형님 같은 나라라서 이슬람의 전반적 지지를 받는다. 그래서 경기가 끝나고 난리가 났다. ‘이 현장에 가야 한다’ 싶어서 현장으로 나가니 사람들은 이미 아주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메시는 어디 있죠?”라고 말하는 사람의 멘트를 받을 수 있었다.
월드컵은 스포츠 기자가 갈 수 있는 최고의 현장이다. 영화 기자가 칸 영화제에 취재 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도쿄 올림픽이나 베이징 올림픽도 가봤지만 월드컵은 다르다. 올림픽은 아마추어 선수도 많이 출전하니까 스포츠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월드컵은 정점의 프로 선수들이 온다. 대회 운영 등에서도 최고의 스타들이 모이는 자리다. 성과를 냈을 때 가슴이 차오르는 느낌도 다를 것이다. 운동선수에게도 그렇겠지만 스포츠 기자에게도 꿈의 무대다. 갈 수만 있다면 또 가고 싶다.
김태운(MBC 스포츠 기자)
06
월드컵 공식 파트너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전하려고 한 메시지는?
전 세계인이 월드컵의 골을 본다. 세계 최고의 축구팀들이 싸우고, 전 세계인도 경기에 집중한다. “모두가 축구의 골을 넘어 인류 전체의 더 큰 목표(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면?” 현대차의 핵심 메시지도 여기서 시작했다. 우리가 즐긴 이 멋진 경기를 다음 세대도 즐기려면, 지속가능한 세계라는 ‘골’을 위해, 다 함께 연대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 골을 위해 11명의 글로벌 홍보대사를 모았다. 각자 자리에서 영향력이 있고, 지속가능성이라는 목표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BTS, 박지성, 전 리버풀 축구선수 스티븐 제라드, 디자이너 제레미 스콧 등이 참여했다.
팀 캡틴 제라드는 월드컵 전 “잉글랜드 팀이 한 골 넣을 때마다 영국에 나무 5백 그루를 심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혹시 걱정도 했다. ‘골을 아예 못 넣으면 어쩌지?’ 그런데 이게 웬걸, 잉글랜드는 첫 경기의 6골을 포함해 이번 월드컵에서 총 13골을 넣었다. 제라드가 약속을 지킬지가 미디어와 팬들의 화제가 될 정도였다. 그는 현대차와 함께 공약대로 13×500=6500그루를 심는다! 이벤트에 참여한 팬의 숫자까지 더해 총 8천2백 그루를 심을 것이다.
현대자동차 월드컵 캠페인 담당자
07
월드컵 경기와 음식 배달 주문 수의 상관관계는?
집에서 배달 음식과 함께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즐기는 것이 보편화되는 추세다. 이 추세는 사내 수치로도 드러났다. 가나전이 있던 28일에는 전주 동일한 요일과 주문 수를 비교했을 때 주문량이 27%가량 증가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에도 평시 대비 30%가량 주문 수가 증가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 기간에도 가장 인기 있는 배달 메뉴는 역시 치킨이었다. 동시에 치킨 외에도 다양한 음식 카테고리에서 고른 주문량 성장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양하고 까다로워진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배달 앱에서 주문할 수 있는 메뉴들이 다채로워지면서 나타난 주문 트렌드로 분석된다. 월드컵 마케팅도 활발히 진행됐다. 앱을 통해 국가대표팀 응원 메시지를 남기면 할인 쿠폰을 지급하는 이벤트가 진행됐다. 해당 이벤트는 론칭 이틀 만에 3만 명이 참여했다. 이제 소비자는 월드컵 등 국내외 스포츠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배달 앱을 즐기고 있다.
김희연(요기요 PR 팀장)
08
이번 월드컵에서 드러난 K리그 선수의 활약은?
사실 대표팀에서 K리그(K리거)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지고, 앞으로도 더욱 작아질 것이다. 해외 스카우터가 한국 선수에게 관심을 많이 보인다. ‘톱 급’ 선수는 물론 상위권 선수들은 매력적인 러브콜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선수들에게 해외 진출은 꿈이자 로망이다. 좋은 활약을 보인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서 수비진은 K리거고 미드필드와 공격진은 해외파 선수가 대부분인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미드필드 위로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으나, 아직 체력/체격 면에서 수비수로 해외 리그에서 자리 잡기는 어렵다.
“공격을 잘하면 승리하지만 수비를 잘하면 우승을 한다”라는 격언이 있다. 우리나라가 이번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던 데에는 수비수들의 활약도 컸다. SSC 나폴리의 김민재가 유독 부각되었으나 김영권(울산)과 김문환, 김진수(전북)도 벤투의 빌드업 축구에서 빠질 수 없다. 이들은 좌우에서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며 공격과 수비의 핵심 역할을 했다. 이들이 보여준 수비진의 호흡과 라인 컨트롤 수준은 월드컵 참가팀 중에서도 상위권이었다.
물론 대한민국 월드컵 사상 최초로 멀티골을 넣은 조규성과 막내 오현규, 브라질전에서 중거리골을 넣은 백승호도 K리그를 대표해 좋은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네 명의 김씨 수비수’들이 보인 호흡과 활약은 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영웅 ‘팀 킴(TEAM KIM)’과 견주어도 손색없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선수는 김진수다. 김진수는 과거부터 국내 최고의 왼쪽 풀백 재능이었다. 수비력은 물론이고 공격도 되고 빠른 발에, 킥력이 매우 좋아 크로스 적중률이 뛰어나다. 어릴 때부터 천재로 불리며 연령별 대표팀에 붙박이 주전이었다. (이영표, 박주호 사례가 있지만) 측면 수비수로는 드물게 분데스리가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진수 팔자에 유일하게 월드컵이 없었다. 2014년, 2018년 모두 월드컵 직전 큰 부상으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월드컵은 선수에게 꿈의 무대다. 눈앞에서 목표가 좌절됐을 때 절망이 아주 컸을 것이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그런 김진수가 31세에 처음으로 출전한 월드컵이다.
그는 한을 풀기라도 하듯 정말 열심히 뛰고 심지어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정말 원없이 뛰는 듯 보였다. 자신의 앞인 왼쪽 공격수에는 10년 이상 함께 뛴 주장 손흥민이 있으니 호흡도 잘 맞았다. 가나전에서 조규성 선수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한 것은 물론, 매 경기 10km 이상 뛰며 공수에 힘을 보탰다. 김진수는 손흥민에게 2~3명의 상대 수비가 붙어 있을 때 넓어진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자신의 공격 재능을 마음껏 뽐냈다.
수비수는 잘해도 본전이다. 실점의 빌미를 제공해서 안 좋은 의미로 경기의 주인공이 되면 최악이다. 그래서 수비수의 공격 가담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김진수는 한국 최고의 재능을 가졌음에도 두 번의 월드컵 좌절을 맛본 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첫 월드컵을 뛰었다.
박상현(전 K리그 구단 관계자)
09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감독과 그의 의사결정은?
프랑스 축구대표팀 감독 디디에 데샹이다. 데샹은 1998년에 선수로, 2018년 감독으로 이미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음에도 일류 감독으로 분류되기엔 무리가 있었으나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모습은 위대한 감독이라는 호칭을 붙이기에 충분했다.
2022년의 프랑스 축구대표팀은 관리할 리스크가 많았다. 캉테와 포그바의 아웃으로 4년 전 우승을 일궈냈던 미드필드가 무너졌다. 발롱도르를 받았지만 대표팀에선 겉돌았던 벤제마의 선발 및 기용과 관련해 대표팀 안팎의 이슈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토너먼트 내내 안정적인 경기력을 발휘하며 결승까지 갔다.
데샹 최고의 의사결정은 아르헨티나와 치른 결승전 전반의 선수 교체였다. 사실상 전 세계가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응원했고, 아르헨티나는 전반에도 2:0으로 앞서고 있었다. 그때 데샹은 프랑스 축구대표팀 역사상 최다 득점자인 올리비에 지루를 뺐다. 보통 수세에 몰린 팀은 지루처럼 힘 좋은 타깃맨에게 공을 몰아주는 롱볼 전술을 펼친다. 반면 데샹은 음바페를 중심으로 정상 상태가 아닌 아르헨티나의 수비를 흔드는 전술을 택했다. 명장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용단이다.
데샹의 프랑스 축구대표팀은 우승 빼고 다 했다. 그는 역사나 인종적 이슈로 내부 갈등이 끊이지 않던 프랑스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결승에 두 번 연속 진출했다. 젊은 선수를 투입해 세대교체를 이끈 것도 고무적이다. 무려 지단이 프랑스 축구대표팀 후임으로 거론되던 상황에서 데샹은 2026년까지 계약 연장을 이뤘다. 그가 받고 있는 인정과 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강민구(<카를로 안첼로티: 카를레토 리더십>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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