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주무셨어요?
너무 일찍 잠들어서 새벽에 깼어요. 8시에 잠들었다 자정부터 6시까지 깨어 있었습니다. 밤 시간에 깨어 있는 게 좋아요. 넷플릭스 다시 보곤 합니다. 어제는 애니메이션을 이것저것 보다가 집에 있는 만화책도 꺼내서 봤습니다.
만화책은 뭐였나요?
<배가본드>요. 마지막으로 나온 지가 한 3~4년 된 것 같은데 그다음 이야기들이 안 나오고 있어요.
그후를 안 그리는 마음도 이해가 가요. 그 작가는 작가로서 모든 영광을 거의 다 누렸으니까요. 앞으로 잘못 그렸다가 안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고요. 배우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좋은 필모그래피가 많이 있어도 앞으로의 판단에 따라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요.
그런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되긴 했죠. 이제는 작품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됐어요. 스스로 이 일을 이 정도 했으면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는 게 맞다고 봐요. 내가 일정 수준을 넘었다고 생각이 들지만 또 이번 작품은 아닐 수도 있고요.
연기도 계속 연습하면 향상됩니까?
연기는 무조건 느는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요. 천부적으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몇몇 있긴 해도 하면 발전합니다. 거기서부터 시작인 것 같아요. 내가 연기라는 걸 할 수 있게 되고, 스스로 배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다음부터. 배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아무나 살아남지 못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그 문제죠. 배우로서 경험을 쌓으려면 일정 수준 이상을 해줘야 되는데 (기본적인) 그 정도는 타고나는 것 같아요.
저는 배우를 인터뷰할 때 배우의 기분을 상상해볼 때가 있습니다. 나는 이 무대에서 내 연기를 하는데 모두가 나를 바라본다는 게 잘 맞으세요? 저는 가끔 사진을 찍힐 때가 있는데, 사람들이 10명씩 나를 쳐다보고 있으면 꽤 부담스러웠습니다.
당연하죠. 저는 초반에 좀 무심했던 편이라 그런 상황을 잘 모르고 넘어갔어요. 그게 부담인 줄도 몰랐어요. 누군가는 답답해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이해를 못 했어요. 처음이면 고민도 하고 남 시선을 부담스러워하기도 하는데. 떨리지 않았던 것과는 달라요. 떨리긴 했지만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이 일이 내게 맞는지, 이런 고민은 하지도 못했어요. 그 시기가 그렇게 지났어요. 운이 좋죠.
지금은 알잖아요. 알고 나니 어떤가요?
안 맞아요. 연기는 괜찮아요. 이런 화보 촬영은 조금 어렵고. 예능 자체도 어려워요. 저는 예능 하는 분들 너무 존경해요. 예능은 별도의 능력인 것 같아요. 저는 연기가 좋고 연기에 집중하는데 누군가 날 쳐다보고 있다는 걸 인식하면 많은 배우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다른 분께도 그런 질문을 한번 하고 제게 알려주세요.
지금 한창 <스위트홈 2> 촬영 중이시죠?
그렇죠. 지금 마무리 단계인 것 같네요.
촬영장의 일상은 낮밤이 없습니까?
보통은 낮밤이 없죠. 낮에는 낮 장면, 밤에는 밤 신을 촬영합니다.
촬영 일정은 여전히 빡빡하게 운영되고 있습니까?
요즘에는 근로기준법 때문에 정해진 하루 촬영 시간이 준수됩니다. 오늘 촬영이 끝나면 최소 8시간 이후에 촬영을 시작할 수 있어요. 스태프들은 그 시간을 지켜서 a, b, c팀 등으로 나눠서 교대로 일하기도 합니다. 배우나 감독 등 몇몇 나머지는 계속하고 스태프들이 교체됩니다. 옛날에는 한 열흘씩 밤을 샜어요. 집에는 약 20일 못 들어갔습니다. 밤을 새고 아침엔 빨리 찜질방 가서 스태프들 다 씻고 2시간 뒤에 만나서 다음 날 촬영이 시작되었어요.
스태프들도 힘들겠지만 배우들은 그렇게 잠이 모자라면 대사가 외워집니까?
외워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해내야 됩니다. 어떻게든 되긴 하죠. 그런 촬영 풍조가 심했던 시기에는 뭘 찍는지도 모르고 찍었어요. 정신 차리고 보면 ‘어떻게 찍었는지 모르겠다. 큰일 났다’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촬영도 선진적으로 운영하는 <스위트홈> 시리즈의 이응복 감독께서 배우님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상상이 안 되는 배우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상욱을 연기하는 모습이 새롭고 임팩트 있을 것.’ <스위트홈>의 배우처럼 거친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하나요?
배우뿐만 아니라 한 가지 캐릭터만 가진 사람은 보통 없거든요. 배우들은 성향상도 그렇고 직업의 특성상도 그렇고 주된 캐릭터가 아닌 나머지 캐릭터를 또 키워요. 그게 잘 이루어진 사람은 일이 더 수월하겠죠. 어떤 거 하나만 주로 키운 사람은 그거에 특화돼 있고요. 이런 차이 정도일 텐데 저도 제 안에 있는 그런 캐릭터를 개발했죠.
캐릭터 개발을 하다 보면 내 방 안에서 혼자 화를 내보기도 합니까?
평소에 어떤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할 때 보통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어제 하던 대로 엊그제 하던 대로 하잖아요. 근데 저희들은 고민을 좀 하는 편이니까 의식적으로 말투 등을 바꿔보기도 합니다. 실생활에서도요.
식당 가서 더 무섭게 주문해보거나?
이해받지 못할 상황이나 장소에서는 안 그러는 편이 좋긴 하죠. 저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생각으로 정리하고요, 말이나 행동을 해보면서 느낌을 찾습니다.
배우들은 여러 가지 캐릭터가 있고 어떤 분들은 한 가지 캐릭터를 연구해 특화시키시기도 합니다. 본인은 어떠세요?
저는 여러 캐릭터가 있는 게 좋습니다. 모든 캐릭터를 잘할 수는 없다 해도요. 몇몇 전설적인 분들이 계시지만 그걸 쫓는다기보다도 그냥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거든요. 저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배우가 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을 겪지만 사람은 한 사람의 인생을 살잖아요. 여러 인생을 살기에 최적화된 게 배우인 것 같았어요. 배우는 공식적으로 어떤 캐릭터로도 살 수 있으니까요.
2023년에 이진욱 님께서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무엇입니까?
실생활과 맞닿아 있는 걸 해보고 싶어요.
<스위트홈>과는 약간 다르네요.
마음이 왔다 갔다 해요. 배우는 새로운 걸 추구할 때도 있으니까, ‘이걸 하면 새로워 보일까’ 싶기도 하고요. 지금은 소소한 이야기나 소소한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가끔 잡지 에디터 일을 한다고 하면 괜히 친구들이 저에게도 시나리오를 써보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래서 생각해둔 줄거리가 있는데,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예요.
써보세요. 쓰면 좋죠. 지금은 제가 보기에 그게 1등, 이야기를 만드는 게 지금 배우, 감독보다 제일 귀한 일이에요.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들이 이미 많을 텐데도 좋은 이야기가 귀한가요?
귀하죠. 좋은 이야기가 들어오면 작품 선택에 큰 기준이 될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자본과 규모의 게임이라서, 재야에 숨어 있는 좋은 작품들은 거의 없을 거예요. 좋은 작품은 좋은 팀이 이미 다 가지고 있어요.
올해가 데뷔 20년째입니다. 데뷔했을 때 목표가 기억나세요?
없었어요. 그런 게 없어서 초창기에 힘들 수 있던 부분을 모르고 넘어갈 수 있었어요. 운이 좋았던 거죠. 지나치게 진지하지 않았던 게 그 시기를 넘어가는 데 좋게 작용했어요.
지나치게 진지하지 않아서요?
제가 후배들에게도 얘기하거든요. 너무 진지하지 마라. 자기 삶에는 진지하게 임하되, 어떤 일을 해도 ‘이거 아니면 죽겠다’ 같은 생각은 하지 마라. 인생은 생각보다 너무 길다.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의 결과가 네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 결과가 영향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보내는지가 영향을 미치는 거다. 지금 당장 잘되고 안되고는 진짜 의미 없다. 이렇게요.
그런 건 누가 말해줬습니까, 몸으로 깨달았습니까?
깨달았죠. 아등바등하지 말라는 게 나태하게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할 거는 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거예요. 지금 당장의 결과는 진짜 큰 의미가 없어요. (마음을 그렇게) 못 잡으면 평범하게 살 수밖에 없는 거고요. 평범하게 사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그렇다 해도 실망할 것도 없고요.
저는 유명 배우가 아주 특수한 직군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명 배우의 일상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실제로 본인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도 있나요?
그렇죠.
작품이 계속 나오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셈이네요.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엄청나게 많이 노출되는데, 괜찮은가요?
저희가 현실에 존재한다고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괜찮아요. 일단 사랑받잖아요.
사랑받고 있다는 것도 느껴집니까?
사람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 있잖아요. 그 느낌이 호의적이에요. 그걸 평생 느끼고 살아요. 안 좋을 때의 모든 단점을 상쇄시킬 만큼 굉장히 큰 장점이에요. 주변 배우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해요. 장점을 봐라. 그건 굉장한 장점이다.
저도 제 것을 만들 때 누구의 피드백을 받을지 고민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국이 짜다’ 수준의 피드백에도 반응해야 하는가, 같은.
받아야 할 피드백의 종류가 다른 것 같아요.
저의 삶으로는 잘 상상이 안 됩니다. 어떤 기분일지. 배우 일로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까?
사람들이 저희 작품을 보며 자신들의 어떤 시절을 추억할 때가 있어요. 사람들의 삶을 추억하는 데 큰 자리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일에서 어려운 부분은 뭘까요?
연기 이외의 활동이 개인적인 성향과 안 맞는 것 정도? 일 면에선 굳이 말하면 모호하다는 점이요. 그런데 모호하기 때문에 자유롭기도 해요. 사실 이 일은 좋다 나쁘다의 기준이 없어요. 좋다고 느끼면 좋은 거예요. 어떤 방식으로든 좋게 느끼게 만들면 돼요.
‘모호하기 때문에 자유롭다.’ 제 일에서도 도움이 될 말씀입니다. 제가 만드는 것 역시 답도 기준도 없는 일이라 저도 제 걸 만들 때 고민하거든요. 다 모호하니까요.
자기 걸 찾는 게 중요해요. 자기 걸 찾는 것도 어려운데, 찾았을 때 별일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 내 걸 만들어야죠. 보통 그렇게 내 것이 완성돼요. 제 경우엔 어떤 건 기가 막힌 게 있었고, 어떤 건 별일 없구나 싶어 개발한 것도 있었습니다. 말씀드리긴 복잡하지만.
내 걸 만드는 과정에서 피드백도 받습니까?
저는 보통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요. 사실은 피드백 듣는 걸 안 좋아하고 주변 사람들도 그걸 잘 알아요. 제가 묻는 것에만 대답해줍니다.
결과적으로 계속하는 선택마다 잘되었으니 ‘남의 피드백을 구하지 않는다’는 기조가 생겼을 수도 있죠.
아니에요. 피드백을 잘 안 듣는 건 제 단점이에요.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게 굉장한 장점이에요. 휘둘리는 게 아니라 주변의 말을 잘 들어야 좀 더 정확하게 자신을 알 수 있어요.
일이 먼저예요, 쉬는 게 먼저에요?
일이 먼저죠.
저도 일이 중요해요.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쉽니다. 반면 요즘은 ‘워크 라이프 밸런스’등의 개념으로 쉬는 걸 중요하기 여기는 분도 많아요.
선택하기 나름이겠죠. ‘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냥 소소한 인생을 살다가 갈 것이다.’ 그러면 워라밸 중요하죠. 그런데 원하는 게 있어요. 성취하고자 하는 게 있어요. 그런데 무슨 워라밸이 있겠어요. 그렇게 해서 남을 어떻게 이겨요. 자기를 나약하게 만들고 그걸 합리화하는 거지. 워라밸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전혀 상관 없어요. 괜찮아요. 그게 바로 성공이고 행복한 삶이에요. 그렇게 살기가 훨씬 쉽죠. 다만 뭔가 성취하고 일궈 나간 사람에게 워라밸을 물어보면 말도 안 된다고 할 거예요. 저도 그래요. 웃죠. 그냥 맞다고 할 거예요. 내가 이겨야 하니까. “맞아. 워라밸 해야지. 그게 최고야”라고 할 거예요.
성취하고 싶은 게 있었던 건가요?
궁극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최상의 것을 갖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걸 떠나서도 호기심이 많았으니 가져보고 싶었던 것도 많았습니다. 가져봐야 버릴 수 있죠. 버리는 마음도 가져보고 싶었고, 그러려면 가져야 했어요.
자신의 일은 기억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글쎄요, 기억될까요? 세상 모든 게 다 잊히는데요. 기억된다. 기억된다… 관객 여러분께서 제가 출연한 작품을 보는 순간만큼은 기쁘고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꿈도 있나요?
내가 훌륭한 배우가 된다. 흥행작을 만든다. 이런 건 꿈이 아니에요. 제 꿈은 꿈을 이룬 이후에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이룰 수 있는 것은 꿈이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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