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공으로 회귀한다. 둥근 축구공은 어디로든 굴러가고 누구나 굴릴 수 있다. 축구 얘기를 할 때면 우리는 잠시 괴로움을 잊는다. 축구팀에 대해 떠들다 보면 하락한 주식, 상승한 물가, 남의 집 살이, 취업난, 슬픔, 절망 언저리에 있는 문제들을 우리 삶에서 아주 잠깐 떼어놓을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축구를 이야기하게 된다. 누구나 ‘맨유’를 비난하고, 누구나 ‘나폴리’를 칭송할 수 있다. 축구는 계급이 없고, 경계가 없으며 모두에게 열려 있다.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 축구를 생각한다. 우리가 축구를 얘기할 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대한민국에서 축구를 가장 사랑하는 축구 팬을 만나고, 축구를 시작해서 인생이 달라진 사람, 프로리그에서 선수로 활약하는 사람, 축구로 먹고사는 사람을 만났다. 그들 모두 축구를 사랑한다 말했다.
이종현은 국내 라이선스 패션 매거진에서 5년간 일하다, 2년 전부터 프리랜스 에디터 겸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그의 하루에는 축구가 함께한다. 대체로 하루를 유럽 축구 리그 뉴스를 보며 시작하고, 틈틈이 스스로 오랜 팬임을 자처하는 리버풀 관련 소식을 체크한다. 그가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멋있잖아요.” 그 단순하지만 힘 있는 한마디에서 스타일리스트와 축구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축구 유니폼을 스타일링에 활용하기도 해요. 얼마 전 아이돌 그룹 트레저의 뮤직비디오 스타일링을 맡았는데, 멤버 중 현석이 축구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유니폼을 멋지게 리폼해서 활용하기도 했고요.”
“축구 시즌 때 알림 설정을 해둬요. 관련 뉴스나 경기 결과를 받는데, 응원하는 팀이 이겼다는 소식을 보면 하루가 즐거워요.” 그가 축구를 즐기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중학생 때였나? 리버풀과 AC 밀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을 보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전반전에 3-0이던 경기가 후반에 3-3이 되고, 승부차기 끝에 리버풀이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역사적인 경기예요. 여전히 유튜브에 ‘이스탄불의 기적’이라 검색하면 나올 만큼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회자되는 경기인데, 그 경기를 본 후로 축구의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즐기고 있죠.” 이종현은 축구를 즐기는 마음이 일상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축구가 삶에서 얼마만큼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모르겠는데, 하루 틈틈이 일하다 쉴 때도 보고, 새벽에 자다가도 보고. 그렇다고 삶을 휘두를 만큼 빠져 사는 건 아닌데, 적당히 즐길 수 있고, 오랫동안 응원하는 팀이 있다는 건 삶의 즐거움이에요.”
이종현이 말하는 축구의 즐거움은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응원하는 팀과 선수, 감독의 전사를 알수록 보는 재미가 더해진다고. “어떤 팀에 전도유망한 선수가 영입됐는데, 단지 잘한다는 것만 알기보다, 그 선수가 어느 발을 주로 쓰는지, 공격수라면 어떤 위치에서 골을 잘 넣는지 등을 알면 훨씬 재밌잖아요. 감독의 스타일도 마찬가지고요.” 더불어 응원하는 팀이 있다는 건 축구를 오랫동안 좋아할 수 있는 구실이 된다고도 했다. “좋아하는 팀이 선전할 때는 기분 좋고, 연패를 기록하면 마음이 안 좋고 그래요. 그래도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 주춤한다고 멈추면 팬이 아니에요.”
그가 축구를 좋아하는 방식은 일상을 자연스럽게 축구와 함께하는 것인 듯했다. “해외 출장을 가도, 프랑스, 스페인, 영국 같은 축구와 연관이 깊은 도시라면 짬을 내서 경기를 보거나, 관련 굿즈를 사기도 해요.” 그는 오늘 촬영 소품으로 들고 온 것들 모두 출장 당시 사온 것들이라고 했다. “바르셀로나 출장 갔을 때가 유독 기억에 남아요. 축구 팬으로서, 현존하는 축구 선수 중 가장 독보적인 리오넬 메시의 경기를 한 번쯤 직관하고 싶었는데, 마침 제 출장 기간과 그의 경기가 겹친 거예요. 부리나케 달려갔죠. 두말할 것 없이 잘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나중에 아이에게 메시의 경기를 본 소감을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시간은 쌓이면 추억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 이종현에게 축구는 20년째 쓰고 있는 즐거운 에세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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