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공으로 회귀한다. 둥근 축구공은 어디로든 굴러가고 누구나 굴릴 수 있다. 축구 얘기를 할 때면 우리는 잠시 괴로움을 잊는다. 축구팀에 대해 떠들다 보면 하락한 주식, 상승한 물가, 남의 집 살이, 취업난, 슬픔, 절망 언저리에 있는 문제들을 우리 삶에서 아주 잠깐 떼어놓을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축구를 이야기하게 된다. 누구나 ‘맨유’를 비난하고, 누구나 ‘나폴리’를 칭송할 수 있다. 축구는 계급이 없고, 경계가 없으며 모두에게 열려 있다.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 축구를 생각한다. 우리가 축구를 얘기할 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대한민국에서 축구를 가장 사랑하는 축구 팬을 만나고, 축구를 시작해서 인생이 달라진 사람, 프로리그에서 선수로 활약하는 사람, 축구로 먹고사는 사람을 만났다. 그들 모두 축구를 사랑한다 말했다.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결과표를 받는다. 점수표, 하이라이트 장면, 세리머니, 선수의 역량 평가 등. 하지만 아마추어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경기 중 자신이 뛰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볼 수 없고, 자신의 역량을 분석한 결과표도 볼 수 없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고알레의 ‘이호’ 대표는 아마추어들이 경기하는 영상을 드론으로 촬영했고 SNS에 수시로 업로드했다. 구독자 수는 20만 명까지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고알레라는 이름의 축구 콘텐츠 사업으로 이어졌다. 이호 대표는 프로 선수를 은퇴하고 사업자로 거듭나 아마추어 선수를 포함해 축구를 사랑하는 남녀노소를 위한 길을 갈고닦는 중이다. 그는 축구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전국 각지에 고알레 트레이닝 센터가 있어요.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축구 수업을 받으러 오죠. 사람들이 처음에는 애정을 갖고 시작했다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재미를 느껴요. 팀 스포츠 경기의 묘미를요.”
이호는 원래 아마추어를 가르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걸어온 선수로서의 길과 역경, 고난, 성취, 성과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시작한 첫 수업에서 그는 망치로 맞은 듯 머리가 댕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축구 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눈빛에서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뚝뚝 흘러내렸고, 학생들은 이호의 날렵한 움직임에 연신 감탄했다. 순수하게 사랑과 열정만으로 배우러 온 사람들이었던 것. “아마추어는 강압적으로 트레이닝할 필요가 없어요. 인생을 내건 경기에 임하는 게 아니니까요. 처음 그들을 가르쳤던 두 시간 동안 한시도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어요. 모두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였어요. 이건 정말 큰 즐거움이구나 깨달은 뒤부터 본격적으로 고알레가 성장하도록 이끌어야겠다고 결심했죠.”
강한 자극은 한 번 맛보면 이를 뛰어넘는 경험을 하지 않는 한 쉽게 느끼기 힘들다. 경기장을 달릴 때 엔도르핀을 느껴봤던 이호는 은퇴 후 그 에너지가 그리웠던 적이 없을까. “선수 시절을 떠올린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재작년에 김민재 선수 경기 보러 갔을 때 ‘나도 이런 곳에서 한번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은퇴 후에도 다양한 사람에게 축구를 가르치며 매일 축구 해서 행복하다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그가 문득 그리워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선수 시절 경기장 달릴 때를 떠올리니 닭살이 돋네요. 함성 지르는 관객 앞에서 뛴다는 건 자신감과 긴장감을 동반해요. 내가 여태까지 준비했던 것들을 평가받는 자리임과 동시에 눈앞에는 내가 속한 팀 동료들과의 팀워크가 보이고, 내 뒤에는 팬들의 응원 소리가 들리는 복잡미묘한 현장이죠. 그건 말로 표현 못해요. 근데 제가 최근에 팀 스포츠의 힘이 정말 강하다는 걸 느꼈어요. 요즘 여자 축구가 활발한데, 평소 팀 스포츠를 경험할 일이 거의 없는 여성분들이 경기장을 뛰고 나면 ‘이기고 싶다, 더 훈련하고 싶다’는 말을 하세요. 이러한 열정을 보면서 스포츠는 신선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구나 다시금 실감했죠.”
이호가 경험했던 축구는 오직 승부를 위한 축구였다. 결과를 보여줘야 하고 팬들의 비판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업으로 삼아 매일 행복을 느끼는 중이다. 아마추어 선수나 유소년 축구단, 트레이닝 에피소드 이야기만 나와도 이호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누가 제게 ‘호야, 지금 하는 일 그만두고 어떤 자리든 넣어줄 테니 해볼래?’라고 한다면 저는 바로 ‘아니요’라고 할 거예요. 제자리가 가장 행복하고 좋은 자리라고 생각하거든요. 팬데믹 시작되고 한동안은 너무 힘들었어요. 오프라인으로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에너지를 못 받아서요. 요즘 다시 나가서 트레이닝받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에너지가 생겨요. 더 하고 싶고,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죠.”
고알레 트레이닝 센터는 전국 방방곡곡 퍼져 있다. 서울, 대구, 부산 등 여덟 개 도시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점차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전국적으로 고알레를 퍼트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서울에서만 트레이닝했을 때 두 시간 넘게 기차 타고 오시는 지방분들이 많았어요. 대구, 부산, 광주, 어디서든 오셨죠. 열정 하나로 시간을 들여 멀리 오시는 모습이 뿌듯하기도 했고, 감사했어요.” 고알레는 유튜브로 축구 강습 영상을 선보이고, 트레이닝 센터도 마련하며, 축구를 보다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축구 앱도 출시했다. 그렇게 길을 잘 닦아 나가는 이호의 목표는 무엇일까? “10년 후 우리나라 축구가 고알레 때문에 조금 더 발전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현재 아마추어가 축구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었어요. 그다음으로는 유소년 축구, 취미반 아이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만들고 있어요. 유소년 축구가 발전하고 취미로 축구를 즐기는 친구들이 많아지면 거기서 국가대표 선수가 나올 수도 있죠. 우리가 그런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축구의 발전에 조그마한 기여를 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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