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조는 강한 팀, 해볼 만한 팀, 반드시 이겨야 할 팀으로 구성됐다. H조의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 세 팀의 전력을 진단한다.
WORDS 이정찬(SBS 스포츠부 기자)
2002 한일 월드컵 준결승, 서울월드컵경기장 북측 관중석에서 ‘꿈★은 이루어진다’ 카드를 직접 들어 올린 뒤 소원이 하나 생겼다. 죽기 전에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주장이 월드컵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직관하는 것. ‘허황된 꿈’이라고 비웃을 수도 있겠다. 다만, 한국인 스트라이커가 ‘축구 종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일, 한국인 센터백이 ‘빗장 수비’의 본고장 세리에A에서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는 일 역시 불과 얼마 전까진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 가능성을 따지기보단 ‘행복회로’를 돌려볼 시간이다.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상상. 꿈이 이뤄지기 위해선 먼저 H조를 통과해야 한다.
#Hilarious. 형용사. 아주 우스운[재미있는]
월드컵 무대에서 우루과이의 루이스 수아레스만큼 큰 웃음을 준 선수는 드물다. 이른바 ‘핵이빨’ 사건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 D조 최종전에서 수아레스는 이탈리아 수비수 키엘리니를 향해 하얀 치아를 드러내 공격했다. 그러고도 마치 자신이 공격당한 양 이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했다. 선명한 상흔을 주심에게 보여주려는 키엘리니와 그것을 철저히 막으려는 우루과이 선수들까지. 이 코미디 같은 상황이 더 재밌는 건 이게 처음이 아니라서다. 수아레스는 이보다 1년 전, 프리미어리그 경기 중 첼시의 이바노비치를 깨물어 가까스로 웃음을 참던 SBS 스포츠 중계진의 방송 사고를 유발했다. 네덜란드에서 뛰던 2010년에도 상대 선수 목을 물어 징계를 받은 바 있다. 팬들은 일련의 사건을 ‘핵이빨 비긴즈’ ‘핵이빨 리턴즈’ ‘핵이빨 라이즈’로 부르며 숱한 패러디를 쏟아냈다. 23세던 2010년, 남아공에서 월드컵 무대에 데뷔한 수아레스는 16강전에서 우리나라를 상대로 두 골을 몰아넣으며 전성기를 열었다. 30대 중반에 들어선 수아레스에겐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지난여름 16년간의 유럽 생활을 접고, 프로 생활에 첫발을 디딘 우루과이팀 나시오날로 돌아가 마지막 불꽃을 준비하고 있다. 태극 전사들에겐 12년 전, 잘 싸우고도 진 선배들의 아쉬움을 씻어줄 기회다. 당시 수아레스의 요청으로 경기 후 유니폼을 맞교환했던 박지성 SBS 해설위원은 “수아레스 활동량이 예전 같지는 않다”면서도 “공이 어디로 올지 아는 선수로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그 틈을 파고들 것”이라고 경계했다. 이탈리아에서 세계 정상급 수비수로 성장하고 있는 김민재의 역할이 중요하다. 90분 동안 수아레스, 그리고 그의 투톱 파트너 다윈 누녜스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또 ‘핵이빨’ 공격 대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아레스 외에도 경계 대상은 많다. 레알 마드리드 중원의 핵, 페데리코 발베르데와 A매치만 159경기를 뛴 베테랑 수비수 디에고 고딘 등이 신구 조화를 이룬 팀이다. 벤투호로선 승점 3점이 최상이지만 승점 1점도 나쁘지 않은 결과다.
#History. 명사. 역사
가나전은 긴 말이 필요 없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한국 축구의 ‘2차전 징크스’를 깨야만 한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시작으로 10차례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공교롭게도 2차전에서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2002년 한일 월드컵(폴란드전 2-0), 2006년 독일 월드컵(토고전 2-1), 2010년 남아공 월드컵(그리스전 2-0)에선 3개 대회 연속 1차전에서 승리하고도 2차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미국(1-1), 프랑스(1-1)와 비겼고, 아르헨티나에는 4-1로 크게 졌다. 1승이 쉽지 않은 월드컵 무대에서 2차전에서‘만’ 못 이긴 게 대수냐는 비판은 잠깐 유보하시길. 위 사례에서 확인했듯, 첫 단추를 잘 끼워도 2차전에서 이기지 못하면 우리는 지긋지긋한 ‘경우의 수’를 또 따질 수밖에 없다. 결국 3차전에 사활을 걸어야 하고, 기댈 건 투혼뿐인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게다가 사상 처음으로 겨울에 열리는 이번 월드컵은 대회 기간을 확 줄였다. 첫 경기를 가장 늦게 치르는 H조 팀은 결승까지 갈 경우, 25일 동안 7경기를 치르는 ‘살인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16강 이후 체력 걱정 같은 ‘배부른’ 소리는 미뤄두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2차전은 중요하다. 32개국 체제로 확대한 첫 대회, 1998 프랑스월드컵에 나선 차범근호는 2차전에서 네덜란드에 5-0으로 대패한 직후 ‘감독 경질’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2014년 홍명보호 역시 1승 제물로 삼았던 알제리에 4-2로 완패하며 기가 완전히 꺾였고, 결국 추후 홍 감독이 임기를 남기고 스스로 물러나는 계기가 됐다. 가나는 이번 대회 본선 참가국 가운데 FIFA 랭킹이 61위로 최하위다. 28위인 우리나라보다 한 수 아래 전력이다. 가나가 궁여지책으로 이중국적자를 대거 영입(?)한 이유다. 스페인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이냐키 윌리엄스와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수비수 타리크 램프티 등이 대표적이다. 에이스는 아스널에서 맹활약 중인 토머스 파티다. 주요 도박사들도 한국의 우세를 점친다. 2차전 징크스를 지우고 새 역사를 쓸 절호의 기회다.
#Happy. 형용사. 행복한
가장 행복한 시나리오는 ‘H조 최강’ 포르투갈과 나란히 2승을 거둬 일찌감치 16강행을 확정한 뒤 만나는 거다. 추억을 떠올리며 당당히 맞설 필요가 있다. 20년 전에도 태극전사들은 3차전에서 포르투갈을 만나 승리하며 사상 첫 16강 진출을 확정한 바 있다. 4년 전, 러시아 카잔에선 ‘세계 최강’ 독일마저 ‘운명의 3차전’에서 무너뜨렸던 한국 축구다. 진정한 7번 유니폼의 주인을 가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2002년엔 당대 최고 미드필더, 루이스 피구의 번호였다. 모두가 기억하듯 피구를 꽁꽁 묶은 히딩크호는 후반 25분에 터진 박지성의 환상적인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이후 박지성이 대표팀 7번 유니폼을 차지하면서 ‘No.7’은 한국 축구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숫자가 됐다. 박지성과 피구의 번호를 물려받은 손흥민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맞대결은 H조 최고의 관전 포인트로 손색이 없다. 어려서부터 국내에선 박지성, 해외에선 호날두를 롤 모델로 성장을 거듭한 손흥민은 이제 자신의 우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에 올랐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레이스에서 호날두(18골, 3위)를 넘어서 골든부트를 차지한 손흥민(24골)은 이번 시즌에도 출전 시간과 득점 등에서 우위를 지키고 있다. 이적 시장에서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트랜스퍼마크트에 따르면 손흥민의 몸값은 7천5백만 유로(약 1천60억원), 2천만 유로인 호날두의 4배에 가깝다. 열쇠를 쥔 사람이 파울루 벤투 감독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2002 월드컵에서 홈팀 한국에 막혀 좌절했던 벤투는 이제 태극전사들을 이끌고 조국 포르투갈을 상대한다. 호날두 외에도 ‘제2의 호날두’로 불리는 펠릭스, 프리미어리그를 주름 잡는 조타, 실바, 페르난데스, 칸셀루 등 별들이 넘친다. 호날두를 앞세워 유로 2012 4강 진출을 이끌었던 벤투가 손흥민과는 어떤 역사를 써내려갈까. 대표팀에서의 임팩트와 성과가 박지성에 비해 떨어진다는 손흥민은 이른바 ‘손차박 논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행복하고 뜨거운 11월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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