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힘을 발휘할 최적의 전술은 무엇일까? 실점하지 않으려면 수비는 어떻게 배치해야 할까? 대표팀의 전술을 분석한다.
WORDS 홍재민(축구 칼럼니스트)
카타르 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국 축구 여론은 난리가 났다. 팬들은 9월 평가전 두 경기를 국내에서 치렀다며, 이강인을 기용하지 않았다며, 경기 내용이 답답했다며 화를 낸다. 언론까지 나서 벤투호의 멱살을 잡는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외로워 보인다. 19세기 독일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대표작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처럼 고독하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가지를 간과한다. 벤투호가 4년간 숙성된 팀이라는 사실이다. 축구에서 4년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다.
9월 평가전은 카타르에서 벤투호가 어떻게 싸울지에 관한 예고편이었다. 소집 명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벤투 감독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을 시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공언은 사실로 밝혀졌다. 코스타리카전에서 한국은 그동안 답답함을 유발했던 비효율 빌드업을 버리고 직선적으로 공격을 전개했다. 후방에서 상대 진영으로 한 번에 날아가는 롱패스, 중원 링크플레이의 최소화, 적극적인 페널티박스 진입 등이 눈에 띄었다. 카메룬전에서는 신중하게 경기를 풀어 1-0 승리를 지켰다. ‘다른 방법’이란 결국 ‘카타르 월드컵에서 싸울 방법’이었다.
월드컵에서 한국은 ‘쎈 놈’ 둘, ‘만만한 놈’ 하나를 만난다. 포르투갈과 우루과이 경기에서 벤투호는 볼 점유에서 처질 가능성이 크다. 어쩌다 잡는 점유 기회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짧게 간결하게 빠르게 파이널서드까지 진출해 득점을 노리는 수밖에 없다. 코스타리카전에서 벤투호의 공격이 딱 그랬다. 최후방의 김민재, 중원의 황인범, 좌우 풀백인 김문환과 김진수가 상대 수비의 뒷공간을 향해 롱패스를 찔렀다. 현실적인 동시에 유럽파 공격수라는 장점을 살리는 방법이다. 전방에는 손흥민과 황희찬이 있다. 둘 다 혼자 득점 기회를 만들거나 직접 골문을 노릴 수 있는 능력자들이다. 3년간 공식전에서 벤투호는 아시아 팀들만 상대했다. 볼을 돌리면서 경기 자체를 주도하려고 노력했다. 월드컵에서는 그럴 틈이 없다. 3, 4선에서 최대한 빨리 파이널서드 지역에 진입해야 한다. 들어간 뒤에는 공격수들이 창의력을 발휘해 골문을 노리는 방식이다. 그게 작전이냐고?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맨체스터시티가 그렇게 싸운다. 빽빽한 페널티박스에서 득점은 한두 명의 콤비네이션으로 나오는 법이다. 우리에겐 프리미어리그 공격수가 두 명이나 있고.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까지 대표팀에서 손흥민은 전방위적으로 뛰었다. 3선까지 내려와 볼을 받는 장면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데 9월 평가전에서 벤투 감독은 손흥민을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기용했다. 황의조가 있어야 할 자리까지 손흥민이 올라가 있었다. 카타르 월드컵 맞춤형 용법이다. H조에서 한국은 수비를 단단히 채운 뒤에 득점 기회를 노려야 한다. 지금과 달리 라인이 전체적으로 후진한다. 이런 상황에서 손흥민은 수비를 버리고(?) 공격에 전념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무책임한 스타 의존이 아니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보유한 팀이라면 누구든 그렇게 판을 짠다. 에너지를 비축한 손흥민이 파이널서드에서 힘을 한꺼번에 폭발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올 시즌 황의조의 컨디션이 급락한 모습이다. 카타르 월드컵에 맞춰 황의조가 경기력을 끌어올린들 벤투호가 최전방에 두 명이나 두는 사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손흥민은 세계적 스타플레이어다. 페널티박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 수비를 위협한다. 최전방에 손흥민이 고정된 상태에서 2선의 황희찬과 이재성만 가담해도 공격은 충분하다. 포르투갈과 우루과이를 상대로 그렇게 싸우고, 가나전에서는 정상적으로 돌아가 확실하게 승리를 챙기는 운영이 예상된다.
심플한 공격이 가능하려면 뒤에서 날아가는 패스의 정확성이 기본 전제로 깔려야 한다. 세리에A 무대에 안착한 김민재가 책임지는 부분이다. 9월 평가전에서 김민재는 위협적인 전진 롱패스를 여러 차례 선보였다. 상황에 따라서 과감한 전진 드리블도 선보였다. 김민재 덕분에 한국은 ‘살리다 라볼피아나’를 구사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 출신 히카르도 라볼페가 고안한 이 전술은 후방 빌드업부터 수적 우위를 점한다. 3선 정우영이 최후방까지 내려와 센터백 두 명과 함께 백3를 만드는 형태다. 골키퍼까지 관여하면 4명이 된다. 중앙에 3명이 있어 양쪽 풀백이 동시에 높은 지점까지 진출할 수 있다. 김민재처럼 패스와 볼 간수 능력을 겸비한 센터백이 있으면 ‘살리다 라볼피아나’는 매우 유용하다.
카타르 월드컵을 앞둔 벤투 감독의 최대 고민은 측면 수비력이다. 김문환과 김진수의 일대일 마크 능력이 월드컵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9월 평가전에서도 양쪽 풀백 포지션이 ‘약한 고리’라는 문제가 드러났다. 크로스를 쉽게 허용하는가 하면 일대일 상황에서 상대를 쉽게 놓친다. 이재성과 황희찬이 내려와 동료를 도와야 하므로 벤투호는 공격력 저하를 감수한 상태에서 경기 계획을 짜야 한다. 11월 국내파로 진행하는 소집 훈련은 이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카타르에서 벤투호가 웃을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다. 유럽파로 채워진 1, 2선 공격력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벤투호의 운명은 양쪽 측면 수비에서 결정된다.
9월 평가전에서 벤투 감독은 이강인 연호에 귀를 닫았다. ‘월드컵 플랜에 이강인은 일단 없다’라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이강인은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할 공산이 크다. 최근 라리가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있어도 벤투 감독 역시 지난 4년간 소집 훈련에서 이강인을 직접 점검했고, 실전에서도 기용해봤다. 선발 제외에 나름대로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 이강인 수준의 선수가 벤치에서 대기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 스쿼드가 그만큼 강해졌다는 뜻일 수 있다. 벤투 감독의 최우선 가치는 팀 밸런스다. 그는 4년에 걸쳐 이 부분을 제련했고, 그 결과물이 현재 선발진이다.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에서 4년짜리 팀은 이번이 처음이다. 긴 시간을 함께한 만큼 코칭 스태프와 선발진 사이의 신뢰도 두텁다. KBS 해설위원 구자철은 “선수들과 통화해보니 팀 분위기가 정말 단단하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준비는 거의 끝났다. 벤투 감독은 현재 선발진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의 두 주인공은 대자연과 사내다. 4년이나 준비해온 마당에 까짓거 사내의 당당한 뒷모습에 행운을 빌어보자.
“카타르 월드컵을 앞둔
벤투 감독의 최대 고민은
측면 수비력이다.
김문환과
김진수의 일대일 마크 능력이
월드컵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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