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코펜하겐 2023 봄/여름 컬렉션의 시작과 함께 패션위크 주최자 세실리에 코르스마르크는 다음 컬렉션에 참여하는 모든 브랜드와 쇼에서 모피를 금지하겠다는 결정을 발표했다. 많은 브랜드들이 퍼 프리 선언에 동참하는 추세지만 패션위크 자체에서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또한 덴마크는 세계 최대의 모피 생산국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러한 결정이 더욱 뜻깊다. 코펜하겐 패션위크는 이전부터 지속가능성을 위해 꾸준하게 노력한 세계 최대의 패션위크다. 2020년부터 지속가능성을 실행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고, 지금까지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작성하고 공개하며, 책임감 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지속가능성은 패션계에서 화두가 됐다. 그저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는 그린 워싱의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는 터라 코펜하겐 패션위크가 함께하는 브랜드들을 투명하게 이끌고, 힘을 보태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건 환경에 대한 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일명 스칸디나비안 스타일로 불리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재기 발랄한 컬렉션이 매년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덕택이다. 특히 가니, 세실리아 반센, 삭스포츠 같은 여성복 브랜드들이 주를 이뤘던 예전과는 달리, 이번 시즌엔 남성복과 성별을 규정하지 않는 젠더리스 브랜드들이 눈에 띄었다. 디자이너 에르빈 라티머가 이끄는 라티미에는 미니멀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이 주를 이루는 브랜드들 사이에서 신선한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셔츠와 재킷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오려버리고 커다란 데님 팬츠의 솔기를 잘라 다리를 그대로 내보이는 디자인은 남성성의 개념을 한층 확장시켰다.
또한 런웨이를 걸어나오는 모델들의 거침없는 걸음걸이와 반항적인 태도는 쇼를 더욱 유쾌하게 만든 요소였다. 펑크 문화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 P.L.N. 또한 성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컬렉션을 전개한다. 검은색으로 점철된 컬렉션은 마구 찢어지고 해체된 디자인, 여러 패브릭을 패치워크하는 방식으로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P.L.N.의 디자이너 피터 룬드 닐슨 또한 지속가능성에 책임을 느끼고 브랜드의 모든 옷을 맞춤 제작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창조한다’라는 신념에서 출발한 디비전은 빈티지나 데드스톡 패브릭을 재활용한 유니섹스 디자인을 선보인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영감을 받은 이번 컬렉션은 군복 형태에서 착안한 것들이 주를 이뤘다. 거친 진흙의 갈색과 이끼의 녹색 같은 컬러를 사용하고 버려진 천을 패치워크해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다분하다.
이처럼 지속가능성은 물론, 다양한 문화와 사회를 포용하는 브랜드들이 가득한 코펜하겐 패션위크는 계속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비록 4개 도시에서 열리는 컬렉션처럼 화려하고 장대한 퍼포먼스가 즐비하진 않지만,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의 소식은 언제나 반갑게 맞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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