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 이후 언론에서 대두된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식(Vacation)의 합성어로, 원하는 곳에서 일하며 업무와 휴가를 동시에 즐기는 근무 제도를 뜻한다. 사무실이 아닌 휴가를 겸해 떠난 리조트나 호텔, 또는 TV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바닷가 카페나 계곡 캠핑장에서 노트북 펼쳐놓고 일하는 게 워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방적인 직장은 해외에서 일하는 것도 워케이션으로 인정해준다. ‘온전한 휴식’인 휴가와 워케이션이 다른 점은 휴가지에서 휴식한 시간 외에 일하는 데 쓴 시간을 공식적으로 근무시간으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오래전 팀 막내 시절 반강제로 반쪽 짜리 워케이션을 경험했다. 일주일 휴가를 내고 괌에 놀러 갔을 때였다. 마감에 지장이 생길까 기사를 미리 써놓고 비행기를 탔는데, 지면 편집 과정에서 수정이 필요했던 것. 한창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즐긴 뒤 한국에서 연락을 받고는 샤워도 하지 못하고 몸에 타월을 두른 채 호텔방에서 상사와 메신저로 소통하며 기사를 고쳤다. 지금처럼 워케이션 개념이 정립된 시절이 아니었기에 휴가지에서 일한 시간은 근무시간으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국제전화가 안 되어 목소리를 듣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지. 메신저 보이스톡 기능이나 화상회의 기능이 발달한 지금은 그런 핑계 대기도 어렵지만 말이다.
워케이션은 일하는 장소가 집이 아닌 휴양지로 바뀐 재택근무의 진화 버전이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던 디지털 노마드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그동안 그러한 업무 형태는 특정 직업군만 가능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코로나19 유행으로 재택근무가 활발해지며 사람들이 집에서 쉬는 것뿐 아니라 일할 수도 있음을 학습한 것처럼, 워케이션은 사무실의 개념을 확 넓혀버렸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의 기업인사 담당자 대상 워케이션 인식 조사 결과, 제도 도입에 긍정적이라는 응답은 63.4%였다. 워케이션의 기능과 효과 중 업무의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1.5%였다. 직원이 자기 눈앞에 앉아 있어야 안심된다는 상사가 많은 보수적인 기업보다는 MZ세대 구성원이 많은 젊은 기업이나 스타트업이 워케이션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 라인(LINE)을 운영하는 라인플러스는 그동안 한국 내 계열사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02원격근무(리모트 워크) 제도를 해외 지역으로 확장했다. 7월부터는 한국과 시차 4시간 이내의 국가 어디에서든 원격근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숙박 플랫폼 기업 야놀자는 지난해 말부터 직원들에게 다른 지역에서의 숙박과 업무 공간을 제공하는 워케이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e커머스 기업 티몬은 새로운 업무 체계를 도입하면서 제주, 남해, 부산 세 곳에 머물며 일할 수 있는 워케이션 제도를 시작했다. 6월까지 직원 50명이 워케이션을 다녀왔고 반응이 좋아 추가 운영을 고려하고 있다.
퍼시스그룹 계열 일룸 독립 책상 브랜드인 데스커는 양양에서 워케이션 캠페인 ‘워크 온 더 비치’를 연말까지 진행한다. 11월까지 강원도 양양 죽도해변 인근에 워케이션 센터와 테라스 등 워케이션 공간을 마련하고 직원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워케이션이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피차 일하는 시간에 집중해서 일하되, 쉬는 시간은 침범하지 않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워케이션은 과거 기자처럼 휴가 중에 별안간 일하는 게 아니라 엄연히 근무시간으로 인정받고 일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근무시간 이후의 소통은 자제해야 한다.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인 일명 ‘퇴근 후 업무 카카오톡 금지법’은 국회에서 수년째 계류 중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꾸준히 나올 정도로 업무 이외 시간의 지시로 고통받는 직장인이 많다는 걸 기억하자.
워케이션 중이라면 ‘즉문즉답’도 중요하다. 통화보다 메신저 대화가 더 익숙한 MZ세대와 달리 윗세대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할 수 없어 답답함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오해가 쌓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근무시간이라면 ‘칼답’하는 게 필수다. 회사에서 단체 채팅방이 만들어지면 (기자를 포함해) 급하게 알람부터 끄는 직장인이 많은데, 워케이션 중에는 꺼진 알람도 다시 봐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좋은 노트북이 필수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노트북이란 첫째 가볍고, 둘째 배터리가 오래가는 제품을 말한다. 여행지에서 일하다가 배터리가 간당간당해 어댑터 꽂을 콘센트를 찾으러 다니는 것만큼 시간 낭비도 없다. 특히 요즘은 콘센트를 쓸 수 없게 막아놓은 카페도 많으니 최소 10시간 이상은 충전 없이도 쓸 수 있는 제품을 고르는 게 속이 편하다. 주변에 워케이션을 경험해본 이들이 추천한 건 경량 노트북인 LG 그램 또는 삼성전자 갤럭시 탭+키보드 북커버 조합이었다. 둘 다 USB C 타입 충전이 쉽고 배터리가 오래간다.
노트북을 챙길 상황이 아니라면 블루투스 키보드 하나 정도는 가방에 넣자. 얼마 전 ‘엄지족’인 Z세대 대학생은 스마트폰 사용이 워낙 익숙하다 보니 간단한 리포트는 PC를 켜지 않고 스마트폰만으로 작성한다는 글을 봤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끝낼 수 있는 업무가 아니라면 양손으로 타이핑하는 것과 엄지 2개로 타이핑하는 건 천지 차다.
워케이션을 하면 십중팔구 호텔방이 사무실화될 것이다. 이를 위해 여행·숙박 업체들이 알려주는 워케이션 팁도 몇 가지 소개한다.
호텔스닷컴은 햇빛이 잘 들어오는 방이나 객실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따뜻한 자연광 아래에서 편안하고 조용하게 집중하며 화상회의 및 업무를 할 수 있기 때문. 또한 객실 어디서나 작업할 수 있게 해줄 멀티탭과 침대 또는 욕조에서 노트북을 올려놓을 접이식 테이블, 사생활 보호를 위한 모니터 보안 필름과 노트북을 객실 TV 화면에 연결할 HDMI 케이블 등을 챙기면 워케이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카이스캐너는 호텔 예약 전 객실 내 업무가 가능한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고, 무제한 와이파이가 제공되는지도 체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화상회의가 많거나 복사기, 팩스 등을 많이 써야 하는 업무라면 건물 내 회의실, 비즈니스 센터를 사용할 수 있는지도 확인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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