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삼부작 중 두 번째 편에 속한다. 관객 수 1천7백60만을 기록해 역대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명량>이 첫 번째였다. 세 번째 편인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는 2023년 개봉을 예고했다. 모두 이순신이 주인공인 영화이되 감독은 배우를 각기 달리 캐스팅해 관객에게 이순신에 관한 입체적인 시각을 넓혔다.
확실히 <명량>에서 이순신을 연기한 최민식과 <한산>의 박해일은 전혀 다른 이미지로 관객에게 어필한다. <명량>의 이순신은 아무리 찬물을 끼얹어도 전소할 것 같지 않은 심장의 소유자다. 승패가 결정된 전쟁이라며 주변 모두 두려움에 떠는 동안 이순신은 병사들의 용기를 깨우기 위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다짐으로 위용과 용맹함을 과시했다.
<한산>의 이순신에 대해 김한민은 영화 주간지 <씨네21>과 나눈 인터뷰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분출하는 에너지보다 고요한 선비 같은 기질로 주변을 아우르는 포용력을 표현하고 싶었다.” 실제로 <명량>의 이순신이 “바다를 버리는 것은 조선을 버리는 것이다”라며 직설법으로 부하를 자극해 끌고 가는 타입이라면, <한산>의 이순신은 “이 한산이 진정 큰 산이 되어 우리 산천을 지켜내길 바라보세나”라고 함께 눈높이를 맞추면서 위아래 구분 없이 동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리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두 영화에서 이순신이 처한 해전의 상황은 성격이 판이했다. <명량>의 이순신은 12척의 배로 3백 척의 왜군에 맞서야 했던 까닭에 병사들의 정신을 다잡아 기개를 높이는 것이 절실했다. <한산>의 이순신은 연이은 패배와 선조의 의주 파천으로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했다. 일본군에 밀리지 않으려면 학이 날개를 편 것 같은 학익진(鶴翼陣)의 기세, 그러니까 바다 위의 성을 구축한 아군의 배 한 척 한 척의 흐트러지지 않는 전열이 중요했다.
바로 여기에 김한민이 ‘이순신’ 삼부작을 운용하는 연출의 의도가 담겨 있다. 해전의 성격과 이순신의 캐릭터를 하나로 맞춰 그에 맞는 배우를 캐스팅, 주인공이 같은 세 편의 영화를 달리 가져간다. 다시 말해, 이순신으로 분한 배우의 이미지를 단서 삼는다면 <노량>에서 김한민이 해전 콘셉트를 어떻게 가져갈지 점치는 것도 가능하다.
<노량>의 이순신은 김윤석이 맡았다. 김윤석은 <타짜>의 아귀처럼 산전수전을 다 겪은 승부사이면서 <도둑들>의 마카오박처럼 일을 조직적으로 꾸미는 작전의 대가다. <남한산성>에서는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던 병자호란 당시 치욕스럽게 청(淸)에 목숨을 구걸하느니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키자며 척화를 주장한 예조판서 김상현을 연기했다. 그런 이미지를 종합해 김한민은 김윤석에게서 <노량>의 이순신을 보았다. “세월의 무게감과 경륜을 갖춘 인물로서 최후의 절정을 보여줘야 했다. 김윤석 배우가 제격이라 생각했다.”(<씨네21>)
김한민은 <한산> 개봉 후 공식 석상에서 세 배우의 이순신을 일러 “<명량>의 용장(勇將), <한산>의 지장(智將), <노량>의 현장(賢將)”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노량>에서 우리가 보게 될 이순신은 판세를 정확하게 읽는 능력과 적절한 대응 방식, 무엇보다 죽음의 순간에도 의연했던 ‘현명한 장수’가 그의 면모일 것이다.
한산도대첩과 다르게 노량에 대해서는 대첩이 아니라 해전이라고 표기한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적과 싸우다 숨을 거둬서다. 죽음의 순간조차 아군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한 이순신의 신화 같은 최후는 ‘전투가 중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라는 그의 어록으로 상징된다. <노량>이 이순신 삼부작의 마지막 장이면서 ‘죽음의 바다’를 부제로 두고 있는 이유다.
‘죽음의 바다’로 명명된 <노량>의 노량해전은 명량과 한산도대첩을 뛰어넘는 규모의 해상 전투로 유명하다. <이순신의 바다>(황현필 지음, 역바연 발행)에 따르면, ‘노량해전은 전투 규모만 따지자면 한산도대첩과 명량대첩을 합친 것보다 더 컸다. 임진왜란사를 뛰어넘어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역사상 최대의 해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한 왜군과 해전을 벌여야 했던 이유 역시 이전과는 양상이 달라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전쟁은 어차피 끝나게 되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침략 전쟁에서 실패하고 자국으로 돌아가려는 일본군을 이순신이 돌려보내지 않겠다며 길을 막고 벌인 전투가 노량해전이었다.’
<노량>의 부제가 뜻하는 바, 일본군에게 노량은 조선 침략의 실패를 알린, 이순신에게는 전쟁 영웅의 최후를 선고한 서로 다른 의미의 ‘죽음의 바다’였던 셈이다. 김한민은 ‘<노량>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묻는 <씨네21> 기자의 질문에 “또 다른 이순신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웅장한 레퀴엠의 느낌이 있다. 당연히 새로운 볼거리도 기다리고 있다. <한산>이 함대전이었다면 <노량>은 야간 전투가 많다”고 답했다.
<노량>의 이순신을 연기한 김윤석에 대해 앞서 언급한 대표적인 캐릭터의 공통점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타짜>의 아귀는 상대에게 죽음과 맞먹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도둑들>의 마카오박은 죽음도 불사한 복수의 욕망이 삶의 동력이 된 인물이었다. <남한산성>의 김상현은 나라의 운명에 자신을 일치시킨 사신(死神)과 같은 사신(使臣)이었다. 다만, 김윤석은 캐릭터에 드리워진 죽음에 인간적인 면모를 불어넣는 연기로 역할의 선악 여부에 상관없이 관객에게 구체적인 형태로 제시해 호평받았다.
<명량> 개봉 당시 김한민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이순신이 신격화된 만큼 이번에는 인간적인 면모를 담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이순신 삼부작을 관통하는 김한민의 연출론이다. 인간은 관념이 아니다. 어떤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바라볼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세 명의 배우가 연기한 이순신에게서 당신은 어떤 인간의 면모를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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