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준, 아이유가 출연하는 영화 <드림>(가제) 촬영을 마치셨다고요. 홈리스 월드컵 국가대표팀 감독의 이야기라던데, 어떤 작품이 될지 궁금합니다.
2010년 브라질에서 열리는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홈리스 선수들 얘기가 TV에 소개된 적 있어요. 잡지 <빅이슈>에서 홈리스와 알코올중독자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개최하는 월드컵에 한국이 첫 출전하게 된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처음 해보는 사람도 있고, 좌충우돌이죠. 인생도 돌아보고 재활 의지도 다지는 휴먼드라마예요. 오래전부터 기획한 이야기인데 이제야 촬영을 마쳤네요.
감독님은 드라마 <멜로가 체질>이나 영화 <극한직업> 등 어떤 플랫폼에서든 고유한 개성을 보여줍니다. 현실에 밀착된 지질하면서 미워할 수 없고, 코믹하고, 달고 짠 맛이 담긴 톤앤매너가 있어요.
그게 가능한 건 제가 사람과 가까운 이야기 안에서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걸 좋아하고, 제 이야기가 거대 자본을 들인 방대한 규모가 아니기 때문일 거예요. 예산이 커질수록 타협점이 달라지니까요.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블록버스터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경우엔 어떨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웃음)
<멜로가 체질>에서 주인공들이 치고받는 대사가 정말 재미있었는데, 그런 대사는 어떻게 만들어내나요?
제가 대사를 읽어보면서 1인극을 해봐요. 직접 읽으며 대사의 속도, 리듬감, 주고받는 호흡을 조율하죠. 평소 제 말투 아니냐고요? 술 먹으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웃음)
감독님은 무엇을 재밌다고 생각하나요?
사람의 뉘앙스랄까요. 사람이 가진 기운이나 리듬 같은 것. 그 사람이 이래서 웃긴데, 뭐라고 설명을 못하겠어. 그런 거 있잖아요. 그걸 배우들의 힘으로 만들어주는 거죠.
데뷔작인 <힘내세요, 병헌씨>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죠. 당시에 참 새로운 영화라고 느꼈는데, 감독님이 새로운 길을 개척해본 적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제가 영화를 하게 됐다는 사실 자체가 저희 가족에겐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웃음) <힘내세요, 병헌씨>를 만들 당시 독립 영화에선 코미디가 별로 없어서 ‘왜 이렇게 엄숙하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무거운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잘하는 사람이 이미 많았고 저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작업을 감독님만의 비전을 가지고 뛰어든 적이 있나요?
지금 편집 중인 <드림>입니다. 세상 모든 투자사와 배우에게 다 까였던 작품이죠.(웃음) 10년 정도 된 프로젝트예요. 저도 인지도가 없을 때 시작해 같은 투자사에게 두 번 버림받았고 캐스팅도 굉장히 어려웠지만, 제작사 대표님께 기다려라, 언젠가 이거 꼭 할 거라고 했어요. <극한직업>이 성공한 후 이제 다시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 해서 착수했고 타이밍이 맞아 배우분들도 믿고 해주셨습니다.
<드림>을 오랜 세월 밀어붙인 힘은 어떤 것이었나요?
어떤 외부 요인도 아닌 오직 저의 의지였죠. 사실 전 포기가 빠른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이걸 하고 싶었던 이유는 몇 년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더라고요. 소외된 사람들,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홈리스를 취재하고 네덜란드 대회를 따라가기도 하면서 다양한 사연을 접하며 마음이 움직였죠.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너무 관심이 없는 거예요. 이걸 가장 쉬운 형태의 대중 영화로서, 가족이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70대인 우리 부모님이 극장에서 봐도 공감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요.
감독님께서는 창작자로서 두려울 때가 있습니까?
창작자로서 열등감은 있습니다. 그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두려움도 될 수 있고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창작하면서 열등감이 없다는 건 이상하죠. 세상에는 대단한 창작물이 굉장히 많잖아요. 자연히 좋은 작품들을 보면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그걸 동력으로 삼아 즐기면 그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거든요. 대단한 작품을 보고 이런 게 또 나왔네, 그럼 난 뭐하지 하면서 술 한잔하면 되는 거니까요.(웃음)
동시대적인 감각을 가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입니까?
어떤 트렌드가 있을 때 그게 왜 유행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꼭 필요해요. 궁금증을 가지고 ‘왜지’ 하고 지켜봐야죠.
자극을 받는 작품도 있나요?
요즘 <나의 해방일지>나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여태까지 우리가 봐온 드라마투르기와는 다르잖아요. 전자는 ‘뭐야, 버스 타고 가는데 끝나?’ 하는 식으로 에피소드가 마무리되죠. 상업 드라마의 문법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렇게 의지를 가지고 지켜야 하는 것도 있구나, 그렇게 밀어붙였을 때 대중적으로도 호응을 얻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로는 비디오가게에서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을 빌려 보면서 자랐고, 요즘은 요르고스 란티모스를 좋아해요. 아주 진지한 이야기로 그려지지만 커플이 되지 못하면 랍스터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인 <더 랍스터>도 사실 어찌 보면 굉장한 코미디잖아요.(웃음) 결국 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큰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감독님께 모험이란 어떤 것인가요?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고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계속해서 변하는 대중을 설득해야 하는 모든 영화가 도전이고 모험인 거예요.
달과 우주인에 대한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이야기를 제작하고 싶습니까?
저는 달과 우주에 관련된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달과 우주에 관련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예산 문제나 세트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이야기를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 소재로 영화를 만들려면 얼마나 예산이 많이 들고 세트장에 1년 내내 박혀서 먼지 먹고 기관지가 안 좋아지겠어요?(웃음)
여태까지 쓰신 대사 중 가장 아끼는 것은 무엇인가요?
최근 <멜로가 체질> 대본집이 나왔어요. 은정(전여빈)이 “나 힘들어, 안아줘”라고 하는 대사를 꼽을게요. 별것 아닌 대사인데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 드라마를 만든 것 같기도 해요.
감독으로서 더 이루고자 하는 야심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저는 이루고자 하는 걸 30대에 빨리 초과해서 이뤘어요. 제가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이라 40대를 보내면서 뭘 하고 싶은지 찾아보려고요. 50세에 은퇴하고 여생을 마당에서 개랑 뛰어다니면서 사는 게 꿈이었는데, 100세 인생이라니.(웃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좀 더 공부해보려고 합니다.
창작자로서 마음에 품은 가이드라인이 있나요?
‘이제 뭘 해야 하지?’ 요즘 영화 하는 사람들이 빠진 고민이에요. 플랫폼도 너무 빨리 변하고 바이러스 시대에 세상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죠. 돌이켜보면 안 그랬던 적이 없어요. 영화 하는 사람들은 늘 ‘이제 어떤 얘기를 해야 하지’ 고민해왔죠. 저는 그럴 때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고. 잘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있을 테고, 못하지만 좋아해서 밀어붙이는 것도 있을 테고, 사람은 결국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선택지가 늘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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