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자랑거리는 치안이다. 쾌적하고 값싼 대중교통과 중독적인 먹거리는 더 이상 최신 국뽕 트렌드가 아니다. 요즘은 외국 패널들이 카페에 가방을 두고 가도 훔쳐가지 않는 시민의식을 칭송한다. 뿌듯하지 않나? 안 훔치고 안 뺏기며 살 수 있는 사회라고 한다. 서울에선 자전거 제외하고, 물건을 잃어버리면 잃었지, 도둑맞지는 않는다. 그런 도시 흔치 않다. 서울의 치안이 과장된 것은 아니다. 해외 나가면 절실히 비교된다. 유럽 관광지에서 팔찌를 강매당하거나 사진 찍고 돈 뺏긴 경험 있을 거다. 차 안에 귀중품 두지 말라는 소리, 백팩은 앞으로 메고 다니라는 잔소리를 듣노라면, 서울만큼 살 만한 곳도 없는 듯하다.
그럼 서울은 안전한가? CCTV가 많아서 범죄 예방이 된다고들 한다. 틀린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더 들여다봐야 한다. 감시하지 않아도 서울에선 절도 행위가 일어나기 힘들다. 사기 치는 편이 낫지, 몇만원에 자신의 인생을 걸 정도로 여유로운 도시가 아니다. 서울살이는 힘들다. 태어나서 학교를 다니고 성인이 되기까지 치르는 경쟁이 세계 어느 도시보다 치열하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노력, 아니면 그저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한 노력만으로도 버겁다. 잠이 부족할 정도로 노력해야만 이 도시에서 도태되지 않는다. 실패하면 재기도 어렵고, 다음도 없다. 실수도 용서받기 어렵다. 관습대로 시킨 것만 열심히 해도 불편한 누군가로부터 비난받는다. 사회가 요구하는 올바른 태도까지 맞춰가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서울 생활이다. 그런데 이 과열된 경쟁사회에서 겨우 수십만원에 평생 쌓아온 커리어 전부를 건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카페 테이블에 놓인 남의 노트북 한 대에 건다?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물론 우리 사회가 도덕 수준이 높고, 시민의식도 높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훔치지 않는 건 아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20년 절도 범죄가 약 18만 건인 데 반해 사기를 포함한 지능 범죄는 42만 건에 달했다. 눈에 보이는 물건을 훔치진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은 잘 훔친다.
경찰청 통계를 더 살펴보면 강력, 절도, 폭력, 지능 4대 범죄 중 2020년 가장 많이 일어난 범죄는 사기였다. 횡령이 약 5만8천 건, 배임도 4천 건으로 많다. 지능형 범죄는 소득 수준이 높은 사회에서 일어난다. 더 나은 삶의 질, 그러니까 부귀영화를 목표로 한 범죄다. 소득 수준에 따라 발생하는 범죄 유형도 다르다. 2020년 강도 사건이 6백63건에 달했다면, 소득 수준이 낮았던 1990년에는 강도 사건이 4천7백60건 발생했다. 범죄 유형이 달라졌지, 범죄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이를 근거로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다. 사기와 강력 범죄는 다르다. 사기는 내가 조심하면 된다. 사기꾼에게 현혹되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면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 강력 범죄는 내 행위와 무관하게 재산과 신체에 피해를 입는다. 다행히 서울은 세계 주요 도시와 비교하면 일상을 위협하는 강력 범죄가 적다. 서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강력 범죄가 적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관·민이 노력한 결실이다.
그러나 한국이 안전하다는 주장에는 여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위험은 인지하지 못할 만큼 느린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치명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나 홀로 사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다. 통계청에 의하면 2020년 전국 1인가구는 약 6백60만 명이다. 전년 대비 약 50만 가구가 늘어났으며, 1인가구는 전체 가구의 약 31%를 차지했다. 문제는 1인가구의 기초생활보장 수급률도 함께 증가했다는 점이다. 같은 시기 처음으로 15%를 돌파했다. 이들 중 고독한 이는 얼마나 될까.
1인가구가 모두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대학가 앞의 학생이나 노량진의 수험생도 상당할 거다. 그들 중 취업 문제와 주거 빈곤을 겪는 이도 많을 테다.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도 많으리라고 본다. 원치 않는 고독을 겪어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통계청 사회지표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몸이 아파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나 이야기 상대가 필요한 사람들 즉, 사회적 고립도 비율이 상당히 높다. 2016년 기준 OECD 평균인 11.4%보다 두 배 이상 높은 24.1%에 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지난해 ‘고독사 예방법’이 시행됐지만, 아직 고독사의 정확한 통계를 조사하기 어렵다. 다만, 무연고 사망자 수를 살펴보면 최근 4050 중년층이 증가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의 ‘고독사 실태조사 설계 연구’에 따르면 2020년에만 2천9백47건이었고, 그중 연고가 있음에도 시신 인수를 기피한 건수가 2천91건에 달했다. 우리는 노인층의 고독사에 주목해 왔지만, 현재는 청장년층 고독사도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또한 40세 미만 청년 고독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무연고 사망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일 뿐, 실상은 더 많으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누가 해치지 않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방 안에서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 세대가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정말 안전한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 여전히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2020년 국내 자살자는 1만3천1백95명으로, 전년 대비 감소했다. 하지만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는 25.7명에 달해 전 세계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게 높다. 특히 남성 자살자의 비율이 여자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노년층의 자살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3040세대 자살률도 높았다. 살인 사건 발생 비율은 낮지만, 대신 20년째 스스로 죽는 이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 안전한 나라일까? 자살은 삶의 만족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경제적 문제 때문에? 실패가 용납되지 않아서? 재기할 수 없는 사회라서? 희망이 없어서? 무엇이 자살의 원인이라고 특정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 사회가 안전하다는 소리가 거짓 선전처럼 들려 씁쓸할 따름이다. 국뽕 채널에 자주 나오는 깨끗한 도시 경관, 편리한 대중교통, 다양한 먹거리, 흥미로운 K-드라마, 첨단 기술, 놀라운 인터넷 서비스 같은 것이 우리 삶을 만족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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