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집은 별 문제 없이 잘 살아갈까. 재미 중 가장 큰 재미는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했던가. 최근 쏟아져 나오는 관찰 예능을 보다 보면 이 말이 실감 난다. 겉보기엔 별 문제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내고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상 이상의 갈등이 드러난다. 아이가 생각지도 못한 말과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부부 사이의 갈등이 폭언과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양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때론 충격적인 장면들이 드라마도 아니고 재연도 아닌 실제 상황이라는 건 불편하면서도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지금의 관찰 예능은 도대체 어떤 상자의 뚜껑을 연 것일까.
엄마 지갑에서 상습적으로 돈을 훔치는 아이. 심지어 이 아이는 자신이 ‘촉법소년’이라 신고해도 감옥 안 간다는 걸 알고 있다. 카메라는 이 아이가 훔친 돈으로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사주는 모습을 따라가고,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 집 안 물건을 갖고 나가 중고 거래를 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엄마의 추궁에도 끝까지 발뺌하다 결국은 이실직고하지만 거짓말과 도둑질이 일상인 아이. 결국 엄마는 아이에게 화를 내다 눈물을 보인다.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소개한 거짓말을 일삼는 ‘금쪽이’ 사연이다. 시청자는 충격적인 아이의 행동에 놀라고 그 부모의 아픔에 공감한다. 그리고 오은영 박사의 놀라운 분석과 솔루션이 제공된다. 돈을 수단으로 관계를 시작하려는 아이의 심리를 읽어내고 그걸 풀어내는 해법을 제시한다. 시청자는 놀라고, 공감하다, 감탄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안도한다. 적어도 평범한 우리 집에선 저런 불행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새삼 확인하면서다.
관찰 예능이 아닌 토크쇼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연예인들이 출연해 오은영 박사에게 저마다의 고민 상담을 하는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도 스토리텔링 구조는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와 같다. 연예인이라고 하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살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라는 게 이 프로그램이 전하는 메시지다. 물론 각각의 사연 속에 등장하는 저마다의 정신적인 고충은 시청자도 충분히 감정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오은영 박사가 심리 상담을 해주는 역할로 중심을 잡아주고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은 진정성을 잃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오은영 박사가 MBC와 시즌2를 시작한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은 이러한 상담 프로그램으로서의 진정성과 관찰 예능이 갖는 자극성이 애매한 경계를 보여준다. 갈등으로 심지어 이혼까지 생각하는 부부의 일상을 관찰 카메라로 들여다본 후, 오은영 박사가 일종의 솔루션을 내주는 형식이지만, 편집되지 않고 방송되는 영상들에는 욕설과 폭력까지 자극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은 오은영 박사의 솔루션을 이런 영상까지 공개하는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때론 그 자극적인 영상이 솔루션 자체보다 더 강렬하게 남는 상황이 생겨나기도 한다. ‘결혼지옥’이라는 부제는 그래서 어쩌다 행복했던 결혼이 지옥이 된 상황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가진 자극성을 은근히 나타내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한때 부부나 연인이 등장하는 관찰 예능은 달달한 사랑의 순간을 포착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양상이 달라졌다. 달달한 관계보다는 갈등을 다루고, 그래서 결혼보다 이혼을 소재로 삼는 관찰 예능이 더 많아진 것이다.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는 그 판도라의 상자를 선제적으로 연 프로그램이다. <아내의 맛> <연애의 맛> 같은 관찰 예능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TV조선은 더 센 자극으로 <우리 이혼했어요>라는 이혼 소재 관찰 예능을 가져왔다. 이 프로그램은 여러모로 과거 MBC에서 했던 <우리 결혼했어요>의 패러디로 과거와는 달라진 관찰 예능의 양상을 드러낸다. 즉 <우리 결혼했어요>가 누군가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불편했던 시절 ‘가상결혼’이라는 콘셉트로 수위를 낮춘 관찰 예능에서 나아가 가상이 아닌 진짜로, 그것도 결혼이 아닌 이혼까지 담아내는 관찰 예능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나마 시즌1은 이혼 후에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겼지만 시즌2로 오면서는 자극이 세졌다. 일방적인 이혼 통보를 받았다는 지연수는 이혼한 전남편 일라이에게 자신이 시댁에서 ‘감정 쓰레기통’이나 ‘하녀’ 취급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쏟아냈고 그 장면은 편집은커녕 예고 영상까지 더해져 방송을 탔다.
자극적인 부부 관찰 예능에 OTT도 합류했다. 티빙 오리지널 예능 <결혼과 이혼 사이>가 그것이다.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보다 훨씬 심의에서 자유로운 플랫폼의 특성 때문인지 이 프로그램의 수위는 그 어떤 것들보다 높다. 아내에 대한 욕설과 폭언을 일상적으로 입에 달고 사는 남편이 등장하고,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있어 폭언과 폭력까지 쓰는 남편이 전파를 탄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관찰 카메라를 보고 코멘트를 하는 부분에서 오은영 박사 같은 상담자가 없다. 대신 일종의 연애 매칭 프로그램처럼 매일매일 작은 미션이 주어지고 그 하루를 겪은 후 결혼 혹은 이혼을 부부가 선택하고 그 결과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연애 매칭 프로그램의 이혼 위기를 맞은 부부 버전이라고나 할까. 물론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실제 변화해가는 부부 관계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만, 어느 한 부분을 잘라내서 보게 되는 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수위와 자극성이 높다.
지금의 관찰 예능은 가족의 행복한 순간이나 단란한 모습을 관찰하던 데서 벗어나 이제 위기의 순간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것은 결혼만큼 이혼도 선택이고 비혼주의가 늘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위기의 가족을 엿보는 심리는 ‘타인의 불행’을 통해 나의 삶은 그래도 괜찮다는 자기만족에서 나온다. 또 현재의 삶이 쉽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방송으로 보면 관찰 예능은 정제되고 편집된 영상이 아닌, 날것이 주는 자극의 세계를 열어젖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한 번 그 내밀한 영상들의 자극에 노출되고 나면 가상이나 설정이 들어간 영상은 시시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갈수록 자극에 둔감해지고 그러면 자극의 수위는 더 높아지게 된다. 과연 우리도 서구의 리얼리티쇼 같은 타인의 사생활 엿보기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 들어가게 될까. 자극으로 치닫는 관찰 예능에 적절한 브레이크와 안전장치가 필요해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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