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미술가들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주목받는 로르 프루보는 이질적인 이미지와 오브제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유의 억양으로 구현된 보이스오버와 문법에서 자유로운 텍스트로 동시대의 삶과 예술이 직면한 여러 난국을 창의적으로 극복해나가고 있다.
실제로 진보와 퇴행이 뒤섞이고 미래와 과거가 뒤죽박죽된 것 같은 동시대에 대해 그녀의 작업은 수많은 장소와 시간, 수많은 의미와 문제를 엮어 지은 기발한 스토리텔링으로 여러 갈래의 우회적인 비판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개념미술로 귀결되는 모더니즘 미술사의 가부장주의와 그 이면에서 존재조차 없이 사라져버린 여성들의 역할을 되돌아보는가 하면 정상적인 것과 합법적인 것, 이성적인 것 바깥에 있는 존재들에게, 그리고 오류로 얼룩진 언어와 무의식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더 나아가 앞으로 펼쳐질 가상 세계를 우리가 어떻게 실제 감각으로 포섭할지에 대한 가능성을 제안하는 것이다.
로르 프루보의 이야기 짓기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로 자신의 직계 가족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품에서는 물론이고 인터뷰에서도 주저 없이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작가는 사실과 허구가 구별되지 않는 지점에 서사를 위치시킨다. 인생의 대부분을 모국어(불어)를 사용하지 않는 지역에서 살며 철자 실수나 번역의 오류를 겪어온 작가는 이 경험을 이민자들의 언어가 순수한 규칙의 세계를 오염시키면서도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것처럼 창의적인 오류의 장치로 활용한다. 금지된 장소를 무단침입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이 행위는 사회의 규정된 코드를 위반하고 틈을 벌려 불완전함과 트러블이 공존할 수 있는 확장된 세계로 나아가려는 의지인 것이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이 세계로의 초대는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작가 본인의 유혹적이고 선동적인 목소리로 제안되며 끊임없이 용기를 불어넣는 작가의 주문과 속삭임에 이끌려 우리는 불분명하지만 심오한 어떤 목적지를 향해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아뜰리에 에르메스에는 ‘아저씨의 여행사 가맹점, 심층 여행사(Uncle's Travel Agency Franchise, Deep Travel Ink.)’라는 작은 여행사 사무실이 차려졌다. ‘심층’이라는 모호한 목적지를 내세우고 ‘주식회사 Inc.’를 발음되는 대로 적어놓은 어딘지 허술해 보이는 여행사이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을 자유자재로 여행하며 무수한 트러블들을 제시하는 로르 프루보의 기발한 이야기 짓기는 우리가 현재를 더욱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의식과 감각을 확장하는 데 의미를 둔다. 로르 프루보 <심층 여행사> 전시는 3월 25일부터 6월 5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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