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천
성북구 일대를 가로지르는 하천이다. 북악산에서 시작되어 돈암동과 보문동 일대를 지나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청계천과 합쳐져 한강으로 유입된다. 길이는 5.11km로 다소 짧다.
Editor 정소진 Photography 김나현
추랑 | 주소 성북구 보문로36길 20 1층
분수광장에서 시작해 성북천을 죽 걸었다. 천변에는 미용실 아주머니가 입구에 수건을 널고, 아파트 상가에선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삼선동의 정취를 느끼며, 개천 수면에 떠 있는 벚꽃잎을 바라보며 그렇게 몇 시간, 벌써 해가 저문다. 홍상수 영화 속 인물들처럼 우리는 오해를 풀고자 ‘추랑’의 문을 열었다. 고소한 막걸리와 달짝지근하게 끓인 물엿 향, 파전 기름 냄새가 썩 마음에 든다. 바 테이블에 앉아 제일 도수 높은 막걸리 ‘봇뜰탁주’와 ‘청어알 두부 김쌈,’ ‘아구살 가지 깐풍’을 주문했다. 막걸리, 동동주 같은 전통주와 전통 한식만 취급하나 보다. 얼큰한 대화는 끝을 향해 가는데 입을 헹궈낼 게 필요하다. 복숭아 향 막걸리 ‘디비져복숭아’라면 왠지 로맨틱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주는 가볍게 ‘육전과 어리굴젓’.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 먼 곳이 검정으로 물들었다. 열어놓은 창으로 봄밤의 공기가 들어오고, 창 너머로는 삼선동의 평화로운 정취가 흘렀다.
운치 | 주소 성북구 고려대로7길 48 1층
성북천을 따라 돈암동에서 안암동까지 걸으니 종아리가 저릿했다. 거리가 꽤 멀어 잠깐 쉴 곳이 필요한데, 이왕이면 천이 보이는 곳에 앉고 싶었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마감한 커다란 통유리창이 보였다. 저기라면 개천을 바라볼 수 있겠다. ‘운치(Wnch)’라고 쓰여 있다. 여기는 대학가니까 요즘 20대 감성에 취해보련다. 이탈리아 음식과 스파클링·레드·화이트·오렌지 와인. 상큼해 보이는 ‘오렌지 와인’과 매콤한 청양고추가 들어간 ‘오일 파스타’를 주문했다. 약간 달아오른 속을 달래줄 따뜻한 ‘조개 크림 스프’도 추가했다. 주종을 바꿔 디저트를 시켜볼까. ‘글렌피딕 12년’ 한 잔과 ‘이탈리안 디저트.’ 이탈리안 디저트는 쫀득한 아이스크림에 20년 숙성된 크리미한 발사믹 식초가 더해진 조합이란다. 아주 궁금한 맛인걸? 걸죽한 위스키에 괴상한 아이스크림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20대 취향을 배운다.
매그놀리아 | 주소 성북구 보문로30라길 5-2 지하 1층
봄꽃은 항상 옳다. 어색한 대화를 이어줄 주제로서, 좋아하는 이성과의 산책을 위한 핑곗거리로도 훌륭하니까. 우린 동선동을 가로지르는 성북천을 하염없이 걸었다. 별것 없고, 오히려 휑한 느낌마저 드는 성북천이 뭐가 좋아서. 그와 함께여서? 함께 걷던 그가 봄날의 시작은 와인이란다. 돌계단을 올라 폐허와 오랜 주택이 뒤섞인 골목으로 들어섰다. 조금 걸으니 ‘매그놀리아’가 보인다. 와인 취향도 같은 우리, 산미 없이 달기만 한 와인으로 부탁하니 주인장은 숨겨둔 보물 꺼내듯 셀러에 없는 걸 내어왔다. 찬장에는 전부 다른 와인이 빼곡한데 숨겨놓은 것도 많나 보다. 차고 뜨거운 것, 한식, 양식 가릴 것 없이 안주는 다양하다. 간단하게 ‘브리 치즈 구이’와 ‘깻잎떡볶이’로 시작. 위스키도 국가별로 다양하게 갖췄네. 소박해 보이는데 똑똑하다. 와인잔의 스템을 문지르며 우리의 봄날을 함께 그려보았다.
테이블 담소 | 주소 성북구 보문로34길 68-4
성북천 다리 중 하나인 바람마당교를 건너며 대학 동기들과 청춘과 미래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갈피 못 잡고 불안한 우리가 바싹 마른 개천 같다. 고민들로 말라비틀어진 마음을 술로 적시고파, 목가적인 술집을 찾아 나섰다. 을씨년스러운 ‘테이블 담소’로 들어섰다.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았다. 시끌벅적한 토론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오늘만큼은 매서운 것으로 씻어 내리라. 테이블 담소에는 싱글 몰트위스키, 보드카, 잭 다니엘스 같은 클래식한 위스키가 있다. 조금 알딸딸해질 무렵 부담 없는 가격의 칵테일도 즐겨본다. 안주는 소박한 ‘김치새우볶음밥’이 좋을까? ‘크림소스 떡볶이’가 좋을까. 돈가스도 있네. 일단 다 시키고 본다. 젊은 우리는 많이 먹어야 한다. 술이든 음식이든. 속을 술로 쓸어내리며, 흐릿한 미래를 마음대로 상상하며, 그렇게 우리는 청춘을 산다.
도림천
길이는 11km로, 관악산과 삼성산 중간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신림동을 지나 신대방역, 대림역을 따라 흐른다. 안양천으로 합류하여 한강까지 이어진다.
Countributing Editor 양보연 Photography 김나현
리버타운버거 | 주소 영등포구 선유로3길 10 1층
도림천과 맞닿은 문래동 인근을 공장단지라 부르는 건 옛말이다. 몇 년 전 대대적인 변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폐공장들이 젊은이들이 차린 가게로 변모했고, 일대는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사람들을 반긴다. 이런 걸 더러 ‘힙’하다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문래동은 힙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전부터 힙했고, 지금은 서울의 어느 지역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동네로 자리 잡았다. ‘리버타운버거’는 도림천변을 따라 생경한 곳에 있다. 가게를 중심으로 사방팔방 어디를 둘러봐도 빌딩 천지다. 그런데 초록색 입구를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삭막한 빌딩 숲의 느낌을 완전히 바꿔버린다. 동시에 수제 버거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신선한 재료로 만든 리버스버거와 음료를 시켰다. 도시 어느 곳에나 강이 있고, 높은 빌딩이 숲을 이루며, 때때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주는 가게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서울이 가진 최고의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스몰 | 주소 영등포구 경인로77가길 12
가장 많은 환승객이 오가는 신도림역. 언제나 북적이는 그 역과 달리 마주한 도림천은 한적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띤다. 강가를 걷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만개한 벚꽃을 보며 봄이 왔구나 짐작한다. 길 따라 강을 건너면 문래창작촌 골목 한편에 자리 잡은 야시장 ‘스몰’이 있다. 와인바와 포장마차, 야키토리 그리고 수제 맥주 펍까지 한자리에 모은 이곳만큼 밤을 적시기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주말이면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입맛 따라 주종과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주점답게 밀레니얼과 Z세대가 주 고객이라고 한다. 오늘만큼은 입맛 까다로운 MZ세대가 되어보련다. 다양한 주막이 길게 늘어서 얼큰한 포차 같은 감성도 물씬 풍긴다. 이곳에서라면 위스키와 함께 그윽하게 취해도, 소주와 함께 스트레스를 날려도 좋겠다. 각종 술이 진열된 바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화의 밤 | 주소 영등포구 도림천로19길 11 G밸리소홈 상가 201호
구로디지털단지는 그 이름처럼 산업단지이자 수많은 빌딩과 사무실이 즐비한 곳이다. 그 삭막한 분위기를 달래주는 건 아무래도 도림천이 아닐까. 빌딩 숲 사이 도랑천을 걸으니 회색빛 도시가 한결 낭만적으로 보인다. 기분에 맞춰 낭만적인 곳을 찾았고, 퓨전 오마카세 ‘이화의 밤’이 그곳이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답게 귀한 대접을 받는 기분으로 자리에 앉았다. 와인이나 샴페인도 좋겠으나, 고된 하루를 보냈고 마침 봄인 만큼 전통주로 시작하면 어떨까. 애피타이저부터 정성 들인 요리를 하나씩 코스로 즐기다 보면 밤이 더욱 화사해질 것이다. 디저트까지 알뜰하게 먹고, 기분 좋게 취한 채로 다시 거리로 나와 바람을 맞았다. 밤공기가 유독 시원하게 느껴졌다. 봄과 밤 그리고 도림천이 낭만적인 가게가 선물한 새로운 감상에 대하여 다시 한번 떠올렸다.
엉베흐 | 주소 구로구 공원로8길 25 지하 1층
영등포생태공원과 구로거리공원 사이 흐르는 도림천을 걸었다. 부쩍 따듯해진 날씨를 마음껏 누려볼 참이다. 그렇게 이 계절을 만끽하다 찾아온 밤을 와인과 함께하면 어떨까. 신도림역과 가까운 도림천 인근에 자리 잡은 ‘엉베흐’의 문을 열면 딱일 것이다. 품격 있게 차려입고 와인을 마시는 것도 좋겠으나, 몇 년 사이 어쩐지 만만해진 이 술을 가볍게 마주하는 것 또한 방법일 것이다. 세상 모든 럭셔리는 멋만큼 중요한 게 태도니까. 클래식한 분위기를 캐주얼하게 누리는 그 순간은 봄답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적당한 가격의 와인에 ‘홍가리비 록펠러’ 혹은 ‘렘 숄더렉 스테이크’를 곁들인다면 이 계절을 더없이 만끽할 수 있다. 많은 테이블로 공간은 넓지만, 바텐더와 대화할 수 있는 바를 택했다. 한껏 취해도 좋았다. 기분 좋게 하천을 걸었고, 봄은 새로 시작하기 좋은 계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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