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천
은평구 불광동을 기점으로 역촌동, 응암동, 증산동과 서대문구 북가좌동, 마포구 성산동을 거쳐 흐른다. 홍제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이어진다. 길이는 9.21km에 이른다.
Editor 정소진 Photography 김나현
글라쓰 | 주소 은평구 불광천길 558
자전거를 타고 불광천이 끝나는 지점까지 달렸다. 끝엔 굴다리가 나오는데, 시커먼 그곳에 다다르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불광천은 화려하고 밝았는데, 끝은 어둡고 삭막하다. 조용한 굴다리가 뿜어내는 먹먹한 감정이 싫지만은 않았다. 굴다리 옆으로 올라가니 와인바 ‘글라쓰’가 보였다. 그곳으로 달려갔다. 가벼운 와인이면 완벽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저녁 5시가 좀 넘은 시간이니 와인도 팔겠네 하며 주문한 화이트 와인 글라스. 투움바 파스타와 내가 좋아하는 소시지도 추가했다. 이곳저곳 둘러보니 모던하고 깔끔하다. 은평구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마무리로 시원한 맥주 한잔 들이켜야지. 이곳만의 크래프트 비어, 독일 캐러멜 맥아를 사용한 아메리칸 IPA를 주문했다. 잔을 비우면 내 안의 먹먹함도 사라지겠지. 맥주를 천천히 음미하며 오래 마셨다.
와산상회 | 주소 은평구 응암로11길 12-1
은평구에 오면 왜인지 누아르가 느껴진다. 낡은 빌라, 좁은 골목, 그 골목을 채운 오래된 트럭들. 불광천 와산교 끝 작은 사거리 한쪽에는 보도블록에까지 테이블을 놓고, 담배를 태우며 고기를 구워 먹는 아저씨들이 있다. 편의점 테라스엔 강아지를 안고 노인들이 토론 중이다. 거친 기운이 느껴지는 거리를 따라 걸으니 거친 풍경의 식당이 나왔다. 그곳은 와산교 앞 ‘와산상회.’ 간판부터 예사롭지 않다. 트렌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레트로풍 가맥집으로 들어서 ‘트러플 백순대 한판’과 ‘바싹먹태’ 그리고 소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현란한 소맥 퍼포먼스를 펼치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졌다. 대림시장의 기름 냄새와 와산상회의 먹태 냄새, 불광천의 소음이 완벽한 하루를 만들어줬다. 밤에 오면 더 좋겠다. 그럼 ‘은평 누아르’를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을 테니까.
알키미스타 | 주소 은평구 응암9길 24
불광천변은 연남동을 닮았다. 아담한 카페들이 즐비하고 걸음마다 맛집이 보인다. 카페와 맛집 앞에 늘어선 줄이 한숨처럼 길다. 우린 불광천을 옆에 끼고 걸었다. 주말의 불광천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뜨거운 햇살 아래 걸으니 시원한 맥주가 생각났다. 한잔하면, 키야아! 죽여주겠다 싶었다. 마침 안과 밖이 불분명한 ‘알키미스타’가 보인다. 알키미스타의 테라스는 의자 몇 개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괜히 야외석에 앉게 된다. 좋은 날씨와 풍경 때문이다. 우린 테라스에 앉아 상그리아와 칵테일을 주문했다. 그러다 내부에서 들리는 점원의 말소리에 신경이 쏠린다. 알키미스타는 도서를 큐레이팅 하는 술집이다. 손님에게 읽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고개를 돌려 내부를 훑으니 안쪽에 위치한 서가가 보였다. 소설도 좋지만 어쩐지 불광천은 수필과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더 모먼트 | 주소 은평구 불광천길 318
봄 건너뛰고 여름이 왔나 보다. 새절역 2번 출구에서 걸어나오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나를 훅 감싼다. 더위를 피해 시원한 천이 흐르는 불광천으로 내려갔다. 슬쩍 발도 담갔다. 한적한가 싶더니 이내 하교하는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새절역 2번 출구 옆 발 담갔던 불광천을 따라 걸었다.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었는데, 마침 칵테일 바 ‘더 모먼트’가 보였다. 들어서니 스코틀랜드 어딘가의 작은 바가 생각났다. 달콤한 버번위스키 한 잔을 순식간에 털어 넣고 입가심으로 칵테일을 택했다. 바텐더와 순간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순간, 소중한 추억이 무엇이냐는 질의응답이 두런두런 이어졌고, 버번위스키를 한 잔 더 채우기로 결심했다. 바로 앞에 불광천을 마주한 이곳에선 순간을 간직하기 좋다 . 나 홀로 홀라당 취해버리고 싶은 밤이다.
양재천
길이는 18.5km로 경기 과천시와 서울 남부를 흐르는 하천이다. 관악산 남동쪽 기슭에서 발원해 북동쪽으로 흐른다. 서초구와 강남구를 가로질러 탄천과 만나 한강으로 뻗어간다.
WordS & Photography 김나현
티엔프루프 | 주소 강남구 양재천로 181
얼마 전만 해도 벚꽃이 만개했는데 이제는 푸른 잎이 가득하다. 자연의 생명력이 느껴질 때면 술이 생각난다. 취하면 살아 있는 기분이 드니까. 나에게 생명력을 넣어줄 바를 물색했다. 바텐더를 둘러싼 ‘ㄷ’자 바. 저기라면 혼자라도 괜찮겠다. 용기 내 ‘티엔프루프’에 들어서 구석 자리에 앉았다. 위스키 병들이 벽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떤 칵테일을 고를까. ‘올웨이즈 비 마이 베이비(Always Bee My Baby).’ 기발하다. 이름에 끌려 주문하니 금속으로 장식된 벌 모양의 잔에 달달한 칵테일이 나왔다. 벌의 날개를 살짝 들어 맛을 음미했다. 카모마일 향이 입안을 감쌌다. 만족스럽게 한 잔을 비어내고 나니 다음 선택이 신중해졌다. 주인장에게 추천을 구했다. 3일 동안 우려낸 센차에 진을 믹스한 센차 토닉, 거기에 나뭇잎 모양 가니시를 더한 칵테일을 내어왔다. 슬슬 살아 있는 게 느껴졌다.
설천 와인하우스 | 주소 강남구 논현로 24길 9
양재천은 커플들의 성지임을 잊고 있었다. 천 건너편엔 연인들이 다정하게 걸어가는데 나는 홀로 아이스아메리카노만 홀짝이고 있었다. 흘러가는 천 위에 떠 있는 꽃잎이 내 젊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적한 마음만 안고 돌아가는 길, 홀린 듯 ‘설천’의 문을 열었다. 어두운 내부의 커다란 수족관에 눈길이 갔다. 화려하게 꾸민 수조 앞 대리석 테이블에 낭만이 묻어 있다.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오이스터 플래터와 새우 라비올리, 거기에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을 주문했다. 지갑 사정을 고려해 다섯 피스만 주문했다. 입안 가득 바다 냄새가 퍼지고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매콤하지만 부드러운 로제 소스 위 새우 라비올리를 베어 무니 달콤한 고구마가 새우살과 어우러졌다. ‘물멍’하며 음식을 즐기다 보니 취기가 올랐다. 오이스터 덕에 지갑은 얇아졌지만, 마음과 뱃속은 채워졌다.
플랫오 | 주소 서초구 양재천로 103-1
도곡역부터 매봉역까지 이어진 양재천을 따라 걸었다. 양재천의 오후는 유난히 조용하다. 그래서 개천의 물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물소리를 따라 흘러간 대화 끝엔 역시나 허기가 있었다. 이 낭만을 즐기며 배를 채울 공간이 필요했다. 카페 거리 끝에 다다랐을 즈음 외쳤다. 여기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이곳이야말로 낭만을 즐기기 적합하다. ‘플랫오’에 들어서 메뉴판을 펼치자 눈에 들어온 건 한 단어. ‘비건’. 생소하지만 이것저것 주문했다. 오늘부터 비건이 되리라 결심하며. 옥수수 가루 퓌레와 구운 채소를 곁들인 ‘폴렌타’, 감자, 치즈를 이용한 반죽에 토마토소스와 브리 치즈를 올린 ‘뇨끼’, 수비드 달걀을 얹은 ‘에그 샐러드’로 테이블을 가득 채워보리라. 여기에 산미 강한 내추럴 와인이 빠지면 안 되지. 소곤거리며 비건 음식을 먹으니 왠지 세련된 취향을 배운 기분이다. 와인의 산미에 우리는 달큰하게 취해갔다.
아인글라스 | 주소 서초구 양재천로 143-12
이른 시간부터 양재천은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인파를 피해 한적한 골목에 들어서니 못 보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 생겼나 보다. ‘아인글라스’, 그 밑에 ‘비어’라고 쓰여 있는 단어만 보고 들어갔다. 맥주는 다른 주종에 비해 가벼운데, 이곳의 맥주는 마냥 가볍지 않다. 브루마스터가 직접 양조한 맥주만 판매하기 때문. 제대로 찾은 것이다. 고심해서 주문한 페를라주 맥주가 샴페인잔과 함께 나왔다. 잔 덕분에 벌컥벌컥 들이켜던 습관은 넣어두고 맥주를 천천히 마셨다. 혀에서 탄산이 오밀조밀 굴러다녔다. 맥주로 속을 식히다 보니 음식이 당겼다. ‘잠봉뵈르 샌드위치’, 맥주를 먹는데 ‘미트 라자냐’도 빠질 순 없지. 먹다 보니 맥주가 부족했다. 묵직한 음식들과 잘 어울리는 흑맥주 둥켈이라면 만족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나만 알고 싶은 아지트 같은 공간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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