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선 나른함과 긴장감이 넘실거렸다.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아주 넓은 리조트 수영장에 외로이 떠 있을 때. 누군가 다이빙이라도 하면 파도에 휘청이다 다시 균형을 잡을 때. 물에 반쯤 누워 있으면 소리가 더 잘 들릴 때. 온 감각이 예민하게 열린 상태에서 휴식을 취하는 기분. 음식 앞에서 느꼈다.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은 이태원에 있다. 한남 공영주차장 앞 삼거리 맞은편 구찌 가옥 꼭대기다. 시선을 막는 건물은 없다. 창밖의 절반은 하늘이고, 나머지는 한남동 전경이다. 이탈리아 마을 성당 종탑에 오르면 보이는 풍경이 대개 그렇다. 하늘이 지평선으로 펼쳐진다. 마치 해변에서 바다를 보는 것처럼. 창밖에서 넘실대는 건 파도가 아니라 초록 방수 페인트를 칠한 옥상들이다.
초록색은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의 색이다. 입구에서부터 펼쳐진 초록은 벽면을 타고 다이닝룸 벽을 초록으로 물들인 다음 자리로 옮겨가 피코크 그린색의 벨벳 방케트(Banquette) 의자가 된다. 이와 짝을 이루는 것은 에보니색 테이블이다. 그리고 별이 있다. 이곳의 심벌인 별은 천장에 행성처럼 떠 있다. 바닥 타일 문양에도 별이 있고, 테라스 바닥 대리석 모자이크에도 별이 반짝인다. 이는 기존 구찌 오스테리아 피렌체와 동일한 인테리어다.
셰프 마시모 보투라(Massimo Bottura)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는 두 번이나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선정된 미쉐린 3스타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의 오너다. 마시모 보투라는 카림 로페즈(구찌 오스테리아 피렌체 총괄 셰프), 전형규(구찌 오스테리아 서울 총괄 셰프), 다비데 카델리니(구찌 오스테리아 서울 헤드 셰프)와 함께 메뉴를 개발했다. 서울을 생각하며 서울에만 존재하는 요리를 창작했다. ‘서울 가든’과 ‘아드리아해의 여름’이다. 참고로 ‘서울 가든’에는 나비가 있다. 싱그러운 샐러드 위에 붉은 나비가 앉아 있다. 먹기 아쉬울 정도로 섬세하다. 보이는 것처럼 맛도 섬세하다.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의 모든 메뉴가 그렇다. 눈으로 1차 감상을 한 후에 향을 맡거나 포크 끝으로 톡톡 건드리며 두 번 세 번 감각할 만하다. 그리고 맛을 보고, 씹고 혀끝으로 뭉개며 다시 감각한다. 나는 이걸 단순히 맛있다고 하기는 싫다. 복잡한 맛이라고 부르고 싶다. 음식이 부서질 때마다 새로운 맛이 등장한다. 헐크를 물리치니까 벽안의 토르가 나타난 상황이다. 토르를 먹어치우면 아이언맨이 등장하고, 스파이더맨이 나오고 그런 식이다. 아뮈즈부슈 한 조각을 먹어도 복잡한 맛의 층위를 경험할 수 있다.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한 사람들이 극찬한 메뉴는 ‘파마산 레지아노 크림을 곁들인 토르텔리니’였다. 부드러운 크림의 질감과 한우의 풍미가 순차적으로 등장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만족한 것은 ‘에밀리아 버거’다. 구찌 오스테리아의 시그너처 메뉴다. 아이 주먹만 한 앙증맞은 크기의 핑크색 박스에 담겨 나온다. 박스를 열면 두 입 크기의 버거가 다소곳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과감하게 먹고 싶지만 조신하게 먹게 된다. 버거 크기에 딱 맞는 박스에서 조심스레 두 손으로 버거를 꺼내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크게 한 입 베어 물자 폭신한 버거밤의 질감과 도톰한 패티에서 터져나온 육즙이 입안을 채웠다.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의 메뉴는 여러 번 감각해야 하는 음식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적당한 유머를 주고받으며 예민한 감각으로 음식을 즐기길 권한다. 대화가 끊긴 순간에는 창밖을 보면 좋다. 봄날의 구름이 한남동 위로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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