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는 매년 시대정신을 담은 사진전을 개최한다. 올해는 팬데믹 속 미래를 바라보는 희망의 시각을 전시했다. 지난 4월 1일 막을 내린 전시 <O! Leica 2022 – Out of the Ordinary>에서 주목할 시선을 보인 두 작가. ‘앰부쉬’ 패션 디자이너 윤안과 포토저널리스트 신웅재가 시대정신을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주제가 ‘간직해야 할 아름다운 일상’이다. 작업 당시를 더듬어보면, 외부와 접촉이 차단된 시기였다. 실내에만 갇혀 있을 때 윤안의 감각을 자극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일하면서 여행을 정말 많이 했다. 팬데믹 직전까지 거의 번아웃에 가까운 상태였다. 매달 매주 다른 도시를 다니면서 일하고, 여행까지 해야 했으니까.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멈추고 도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지루함을 느꼈는데, 생각해보면 도쿄에서 20년을 살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데 어떻게 이곳에서 지루함을 느낄 수 있을까. 뭔가 잘못됐다. 어쩌면 내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사진에 집중하게 됐다. 멋진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도시를 돌아다니며 무작위로 촬영했다.
지루함을 느끼는 정신 상태란 거만한 태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티스트에게는 똑같은 것도 새롭게 보는 시각이 가장 중요하다. 카메라를 들고 사물을 바라보면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볼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통해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여러 사진가들의 책을 찾아 봤다. 에른스트 하스(Ernst Haas)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전 세계 도시를 촬영한 사진가다. 그의 사진에는 움직임의 요소가 많다. 마치 차를 타고 가거나 걸어가면 놓치기 쉬운 것들을 흐릿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회화에서 텍스처 스터디라 부르는 질감 연구처럼 표현된 사진들이다. 그런 작업들을 보고 일상적인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지루함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번 전시에선 관점의 변화가 강조된 이미지들을 선보였다. 형체를 알 수 없게 만들어, 기존 형태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의도한 사진도 있었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려는 시도로 읽혔다. 특히 녹아내린 케이크의 이미지에선 액체와 플라스틱의 질감이 골고루 느껴졌다. 주얼리 등 물성을 다루는 디자이너이기에 질감에 예민하리란 생각도 들었다. 질감에 대한 관점에도 변화가 있었을까?
그렇다. 질감은 나에게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많은 것들을 만지고 보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다루는 질감을 어떻게 포착할지가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이를테면 단순한 평면도 광택이 흐를 수 있고, 달라 보일 수도 있다. 사물을 볼 때 촉각적인 측면에 집중하게 된다. 이것이 나의 관점이다. 그렇기에 사진의 구도보다는 질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진 방법론 중에는 캐릭터 스터디도 있지만 그보다 나는 본능적으로 질감이라는 측면에 좀 더 집중하는 것 같다. 심지어 단순한 형태를 대하더라도 질감의 측면에서 보며 무엇을 끄집어낼지 고민하게 된다. 이를테면 강가를 걸어가다가 저 건물에서 반사된 빛이 강물에 비쳐 반짝이는 윤슬이 내 눈에는 디지털 워터페인트처럼 보인다. 혹은 아침 5시에 거리를 걷는데 구름들이 상당히 재밌는 질감을 가지고 있었고, 도쿄 건물들 위로 뜨는 해가 디지털 풍경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 풍경을 뒤집어보기도 했다. 나는 사진을 통해 진지한 시도를 하기보다는 재미를 찾는다. 다들 사진을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찍은 사진은 나의 방법론인 셈이다. 나무 사진의 경우도 하늘을 올려다봤더니 완벽하게 아름다운 하늘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하늘에 저렇게 생긴 나무가 하나 있어서 그냥 찍어본 것이다. 그게 라이카 전시에 걸릴 줄은 몰랐다.
그런 사진에서 평범한 사람들과는 감각이 다름을 느낀다. 아름답고 재밌어서 찍은 사진들이 다른 작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
그렇다. 지금 아이폰에 사진이 한 6만 장 정도 들어 있다.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데, 지금도 메인 컬렉션 작업과 다른 협업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10개의 세부 사항을 사진처럼 정확히 기억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뇌는 재밌는 기관이라서 많은 것을 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것을 사진으로 남겨놓으려고 한다. 휴대폰 스크린 샷도 찍는다. 사진을 다시 기억해내는 용도로 사용한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사진은 떠다니는 순간들을 스크랩하는 기능도 있지만,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을 사진을 통해 인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 찍는 장치를 들고 다닌다는 사실 자체가 관점을 바꾸기도 한다. 최악이라고 여기는 것은 그런 이미지를 찍을 때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다.
카메라를 감각기관처럼 사용한다는 뜻인가?
맞다. 카메라를 사용할 때 중요한 것은 내 머리에 있는 이미지를 사진으로 옮기는 거다. 촬영 때 카메라 선택에 앞서 많은 고민을 한다. 나는 기술적인 사진가가 아니다. 애플사를 좋아하지만 아이폰의 색감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너무 완벽한 컴퓨터 같다. 나는 휴대폰보다는 카메라가 잘 맞는다. 라이카는 색감이 흥미롭다.
이번 전시에 공개한 사진들은 코로나 사태에서 촬영한 작품들이다. 고립된 상황에서 찍은 이미지에는 외로움의 정서가 녹아든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외로운 순간에도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을까? 외로움은 어떻게 아름다움으로 승화할 수 있나? 그런 의문이 들었다.
외로움은 물과 같다. 컵에 반밖에 없다고, 혹은 반이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볼 수 있는데, 나는 비관적인 성향이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 그리고 장신구라는 것은 얼마나 비싼지 또 어떤 브랜드인지를 따지다 보니, 마치 계급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펑크록을 하던 사람들은 돈이 많아서 주얼리로 치장한 게 아니라 버려진 것들을 모아서 자기표현을 했다. 그런 활동에서 영감을 받아 나도 사람들이 뭔가를 느낄 수 있는 주얼리를 만들고 싶다.
시각적인 감각을 얘기해보자.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 그게 스타일이고 자기표현이라 한다면, 스타일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남들이 한눈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패션에 관심을 가지라고 할까?
인간은 집합적인 존재이기에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태어나서 가족을 구성하고, 친척을 만나고, 학교를 가고, 사회에 나가는 과정을 겪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기 위해 타인과 비교한다. 그런 상황에서 어렵기는 하겠지만 가능하면 자신에게 집중하고 내면을 바라보는 데 시간을 더 써야 한다. 최고의 방법은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거다. 그 어떤 사람도 타인과 똑같기 위해 태어나지는 않는다. 남들과 다른 것도 괜찮다. 어떻게 보면 타인과 다른 점이 나를 아름답게 만들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같지 않다. 하지만 아시아나 한국 사람들처럼 서로 비교를 많이 하는 사회에서는 그런 생각을 갖는 게 힘들 수도 있다.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찾아야 되나? 꼭 그럴 필요도 없다. 오히려 본인에게 솔직하고, 본인이 추구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해도 된다. 그래도 된다. 지금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개성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고 응원한다.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고, 취미 활동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런 방법들을 활용했으면 좋겠다. 하나 더 말하자면, 사람은 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인생이다. 끊임없이 변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 진정성을 갖는 것은 아시아를 너머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감지하는 새로운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
너드처럼 보이겠지만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기술이 사람들의 정체성과 삶에서 큰 역할을 하는 흥미로운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웹3.0이 도입되면서 새롭게 변한 것들이 있다. 한국에서도 NFT가 주목받고 있을 거다. 웹2.0은 정부가 통제했지만 웹3.0은 개인에게 더 힘이 실리면서 사회가 흥미롭게 변하고 있다. 사회 변화가 당장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이런 변화에 따라 기업의 구조나 전 세계의 문화가 어떻게 변할지 기대된다.
한국에서도 탈중앙화는 중요한 이슈다. 누구나 콘텐츠 생산자가 될 수 있고,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 예술 작품에 부여된 평가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작품의 가치가 권위를 가진 집단 비평으로 결정되었다면, 탈중앙화 시대에는 비평보다는 재미나 트렌드, 창작자의 유명세가 작품의 가치를 좌우한다. 기존의 논법을 따라온 아티스트나 창작자는 탈중앙화에서 위기감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시간의 시험을 거칠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아이디어나 작품이든 인기 있기를 바라겠지만, 정말 그것이 의미를 갖고 만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유명세를 바라고 작업한 것인지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다를 것이다. 기술 발전의 무서운 점도 있다. 사람들이 알고리즘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통제당하는 현대 사회에서, 1백 명이 같은 얘기를 할 때 한 명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한 명은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스스로를 의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인류가 시간의 시험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1천 명이 같은 생각을 하는데 다른 생각을 가진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시기에는 크리에이터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너드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노동문제에서도 진정한 크리에이터만이 AI나 기술에 맞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으리라고 본다. 사람들은 자기가 뭔가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로봇에 의해 대체될 수도 있다. 지금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고 의식하겠지만 사실은 단지 플랫폼에 자리가 있어서 코멘트를 얹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탈중앙화에서 작가의 작품은 크리에이티브한 것인지 아닌지가 중요할 것 같다.
날카로운 통찰이다. 정보의 편향성에 휩쓸린 사람들이 많다. 온전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것이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는 듯 보인다.
이를테면 많은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리만 포스팅할까? ‘좋아요’가 달리지 않을 부정적인 의견은 올리지 않을까? 그렇진 않다. 나라는 존재는 ‘좋아요’를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나는 소셜미디어 등이 지금처럼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때도 내 목소리를 내려고 항상 노력해왔다. 대중은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라도 그걸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어떨지 모르겠다.
즉각적인 반응을 받지 못했을 때 부정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쁜 코멘트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특히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이나 젊은 세대에게 문제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집과 학교에서 교육하는 게 중요하다.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를 받거나 코멘트를 받는 게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님을 경험과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 젊은 세대를 보호하고 훈련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인생의 목표가 우주로 가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왜 우주로 가야 하나?
가고 싶다. 나사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우리가 진짜 작은 존재임을 느낀다. 우주의 끝을 본 적 없으니 한 번 가보고 싶다. 지구가 얼마나 작은지, 그 작은 지구의 작은 나라의 도시에서 태어난 내 존재. 그래서 우주의 무한함에 매료되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생명체조차 없는 행성이 많은데 인간이라는 존재는 독특하게도 이 행성을 파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인간으로서 감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다시금 깨닫는 기회였다.
SF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블레이드 러너> 마지막에선 레플리칸트가 자신의 죽음을 느끼며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인데 거만한 신인 양 영원히 살 것처럼 굴고 있다. 우주나 AI를 보며 드는 생각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이다. 생각하는 능력, 창조하는 능력,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일 텐데, 왜 그 능력을 더 많이 발휘하지 않을까.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건 그런 능력 때문인데 왜 알고리즘이 시키는 대로 따라갈까. 그건 오히려 인간성을 잃는 게 아닌가. 나라는 존재의 삶을 사는 건 좋은데 왜 사회에서는 타인과 같은 삶을 살아야 칭찬할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