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볼 수 없는 콘텐츠에 대해 예단하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산업적인 전망은 물론 작품의 비평적인 측면에 대해 다루는 것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볼 수 있는 전망과 해석도 있는 법이다. 더욱이 <파친코>처럼 작품 외적으로 할 얘기가 많은 서사라면 공개되기 이전에 텍스트 내부와 텍스트를 둘러싼 의미에 대해 얘기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파친코>는 작품 내적으로나 제작과 관련해서 모두 경계에 있는 혹은 경계를 넘어서는 작품이다. 드라마를 포함한 영상 서사는 이야기의 모태가 되는 원천 서사를 어디서 가져올 것이냐를 결정하면서부터 시작된다. K-콘텐츠가 원천 서사로 활용해온 것은 웹툰이었다. 2022년 1월 28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어 화제를 모은 <지금 우리 학교는> 역시 웹툰이 원작이다. <파친코>는 이민진 작가가 쓴 소설이 원작이다.
텔레비전이 주도적인 매체가 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스트리밍 서비스가 전체 미디어 생태계를 주도하는 매체가 되었고 코로나는 이러한 양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스트리밍 미디어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는 바로 드라마다. 영화는 일회성 소비에 그치지만 드라마는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도록 묶어두기 때문이다.
K-콘텐츠의 가능성을 극대화시킨 사업자가 글로벌 OTT 넷플릭스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애플TV 플러스를 비롯해서 최근에 국내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앞두고 있는 사업자들 역시 K-드라마를 통해 대한민국 시장에 안착함은 물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나아가 플랫폼의 평판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글로벌 OTT 사업자가 K-콘텐츠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알고 있고 <파친코>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애플TV 플러스를 포함한 글로벌 OTT 사업자들은 <오징어 게임>과 같은 성과를 거두는 것을 목적으로 국내 OTT 시장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이다.
<파친코>가 소설 원작이라는 점은 지금까지 성공을 거둔 글로벌 OTT가 제작 투자한 작품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물론,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드라마화한 <보건교사 안은영> 등 소설을 원작으로 한 K-드라마가 글로벌 OTT 플랫폼의 자본으로 제작된 것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민진 작가가 가진 독특한 이력, 그리고 한국과 일본, 미국을 넘나드는 탈국경의 서사가 애플TV 플러스를 통해 제작된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은 재미교포 1.5세대로 아버지는 원산이 고향이고 어머니는 부산이 고향이다. 작가 자신은 미국인이지만 미국식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이민진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설가 이민진의 원작 <파친코>는 이미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소설이고, 국내에서도 드라마 제작 결정 후 번역본이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파친코>는 2017년 <뉴욕타임스>가 10대 베스트북으로 선정한 바 있고,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파친코>는 4대에 걸친 장구한 세월을 다룬다. 넷플릭스에서 투자한 K-콘텐츠들이 K-호러와 같이 기존 장르에 한국적 특성을 버무려서 제작한 것이 특징이었다면, 소설 <파친코> 원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드라마 <파친코>는 전형적인 시대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통 사극을 포함해서 코로나로 이후 시대극을 접하기 어려워졌고, OTT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 중 시대극은 비교적 드물기 때문에 <파친코>가 성공을 거둔다면 시대극과 사극이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파친코>는 원작 소설이 탄탄한 서사를 구축하고 있는 데다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이 주연을 맡아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성공을 거둔 글로벌 OTT가 투자한 작품들과 <파친코>는 다소 결이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재가 독특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징어 게임>과 같이 특이한 설정으로 승부를 보거나 특정 장르를 한국식으로 변주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소재라는 점에서 <파친코>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OTT 사업자들이 제작 투자한 K-콘텐츠가 콘텐츠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면서 어디까지를 K-콘텐츠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파친코>가 글로벌 OTT 사업자가 제작 투자해서 만든 다른 콘텐츠들과 차별점은 제작비뿐 아니라 해외 인력이 대거 투입되었다는 점이다. 연출은 원작자 이민진과 같이 한국계 미국인인 코고나다와 저스틴 전이 맡았으며, 미나미 카호, 안나 사웨이, 지미 심슨 같은 외국 배우들도 국내 배우들과 함께 출연한다. 앞으로 제작비뿐 아니라 해외 인력과 협업해 제작되는 K-콘텐츠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해 국내 콘텐츠 생태계에 투자하기 시작한 지 6년이 넘어간다. 코로나로 인해 국가 간 물리적 이동이 어려웠던 기간에도 글로벌 사업자와 국내 콘텐츠 사업자 간 협업은 지속되어왔고, 글로벌 OTT 사업자의 국내 진출이 계속되고 있어 협력 형태는 더욱 다양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파친코>를 계기로 시대극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이뤄질 것인가? 탈경계의 서사 <파친코>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2022년 우리는 더욱 다양한 형태의 K-콘텐츠를 접하게 될 것이고, 콘텐츠 생태계는 또 다른 변화를 겪으면서 경계를 넘나들 것이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