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정규 앨범 <Bleach>가 나오기까지 9년이란 시간이 걸렸어요.
준원 1, 2집은 학교 다닐 때 쌓았던 실력과 취향으로 만들었어요. 다음을 위한 노력과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기둥을 더 단단히 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연습하고, 공부도 하고, 군대도 갔다 오니까 시간이 훌쩍 지나갔더라고요.
1, 2집 모두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상을 수상했죠. 공백기에 실력과 인기가 떨어질까 봐 마음 졸이진 않았어요?
혁준 활동이 줄어들고, 허전함이 점점 커질 때쯤 군대를 다녀오고 활동을 재개했어요. 그때가 슬럼프였던 것 같아요. 둘 다 이제는 딛고 올라왔으니까 좋은 일만 남은 것 같아서 오히려 기대돼요.
준원 괴로운 순간이 많았어요. 같이 음악을 시작한 친구들은 차 바꾸고 이사하는데, 저희에 대한 언급은 줄어들고, ‘그런 밴드가 있었지’ 하는 것 같아서. 동시에 위대한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도 생겼어요. 여러 번 엎다가, 머리 비우고 적은 폴더명이 ‘Bleach’였고요. “멋있으니까 앨범명은 이걸로 하자!” 했죠.
앨범명을 멋으로 정하기도 하는군요.
준원 저희는 곡을 만들기 전에 ‘이런 제목의 곡이 있으면 좋겠다’ 할 정도로 타이틀을 중요시해요. 제목부터 짓고 시작하거든요.
혁준 신기했어요. 제 메모장에도 곡이나 앨범 제목으로 쓸 만한 걸 적어두는데, ‘Bleach’도 개인적으로 프로젝트 할 때 쓰려던 거였어요. 그래서 더 마음에 들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해서인지 쿵하면 짝이네요. 음악 외적인 면에서도 잘 맞아요?
준원 문학적인 취향이나 멋있다고 생각하는 글귀는 거의 비슷해요. 진지한 내용임에도, 진지충인 글은 안 좋아하거든요. 위트가 있는 게 좋지.
혁준 스탠드업 코미디도 좋아하고. 확실히 영화, 책 등도 교집합이 있어요.
식사 메뉴 선정 중에 불화가 생길 일은 없겠네요.
혁준 워낙 다 잘 먹어요. 싫어하는 게 별로 없는 편이죠.
준원 욕이랑 벌레 빼고는 다 먹고 싶어요.(웃음)
매번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도전하니까 글렌체크의 새 앨범에는 기대감부터 생겨요.
혁준 항상 새로운 걸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장르를 하든, 새롭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전 앨범들에서는 그런 강박감에 뚜렷한 색깔이 있었다면, 3집에서는 좀 떨쳐냈어요. 다양한 장르를 오가면서, 그것들을 섞어서 작업하는 게 글렌체크의 정체성이 된 것 같고, 이번 앨범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풍기는 것 같아요.
인생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게 있을까요?
준원 많죠. 약간 난해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가끔 이런 생각도 해요. 이 몸뚱이로 태어난 건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세상에 갇힌 거다. 살면서 두려움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게 아닐까. 고민이나 강박, 부정적인 생각도 두려움에서 시작되잖아요. 그것을 다스리는 방법, 마음공부를 더 깊게 하려고 해요.
혁준 비슷한 맥락인데 어렸을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컸어요. 사람은 누구나 죽을 텐데,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까. 지금은 제 자신 바깥에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위해 살아요. 내 몸은 죽겠지만, 무언가는 영원히 남길 수 있으니까. 지금은 그게 음악이고, 이걸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면 영원히 살 방법이 아닐까요.
마음 수련과 불후의 명곡이라… 저라면 실패했을 도전이네요.
준원 사실 삶에서 99.9%는 실패죠. 실패가 나쁜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목적지까지 한 걸음 내디뎌야 하는데, 한 번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실패라고 볼 수는 없잖아요. 가까워졌다고 봐야죠. 곡 작업할 때도 매번 실패해요. 그게 시도고, 그걸 발판으로 다음 걸 해보고.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하는 거죠. 생각해보니까 항상 패배한 인생이었네.(웃음)
금연이나 금주 실패 정도의 얘기를 할 줄 알았지, 이런 대답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이상적으로 생각한 어른의 모습이 있어요?
준원 항상 아버지였어요. 제가 태어났을 무렵이 아버지가 지금의 제 나이 때였을 거예요. 제가 지금 가족을 데리고 해외로 가서 산다는 건 상상이 안 돼요. 전 행복하게 자란 기억만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처럼은 절대 못 해요.
혁준 저도 그래요.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고, 응원해주고, 뒷받침해주는 게 멋진 것 같아요. 만약 제 아이가 음악 하겠다면 저는 반대할 생각이거든요.
준원 저한테 관심이 하도 없어서 억울하고 섭섭했는데, 그렇게 놔두는 게 어려운 일이었어요. 부모님께 왜 그러셨냐고 물어보니까 아버지는 계산한 거였고, 어머니는 미안하대요.(웃음)
전자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듣기 싫은 전자음도 있어요? 출근 알람 소리처럼요.
준원 정말 싫죠. 특히 차 경적이요. ‘빵!’ 되게 듣기 싫더라고요.
혁준 ‘빠~아~앙~’ 하면 좋으려나.(웃음) 카카오톡 알림 소리요. ‘카톡!’ 소리가 싫어서 다른 거로 바꾸긴 했는데 다 별로예요.
전자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음악 장비나 프로그램의 빠른 발전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준원 확실히 도움이 돼요. 전자음악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음악 작업에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돼요.
혁준 좋다, 안 좋다 말하긴 어렵지만, 결과적으로는 득이 되겠죠. 기술이 발전하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그리고 중요한 능력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과거에는 악기 연주 실력이나 작곡 지식 등이 뛰어난 사람이 우월한 음악을 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컴퓨터로 미디 몇 개 찍으면 어떠한 연주가보다도 더 좋게, 사람은 연주할 수 없는 것도 만들 수 있어요. 누구나 웬만한 소리를 만드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한 시대가 됐죠.
‘음악을 잘한다’는 기준도 바뀌겠네요.
혁준 누가 더 취향이 좋은가의 싸움이 되겠죠. 누구나 자기가 생각하고 좋아하는 것을 노력만 한다면 구현할 수 있으니까. 더 좋은 취향과 여러 가지를 조합해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위대한 음악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뮤지션에게는 득보단 독이 되는 미래 아닐까요? 취향 저격형 음악만 만드는 사람을 보면 샘날 것 같은데.
준원 전 다른 사람한테는 관심이 없어서.(웃음)
혁준 잘된 데는 다 이유가 있겠죠. 제가 좋아하는 취향이나 장르가 아니더라도, 분명 그분들은 다른 면에서 뛰어난 실력이 있기에 그 자리에 간 게 아닐까요.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단순히 음악만 좋으면 잘되는 세상이었으면 성공한 사람이 엄청 많았을 거예요.
글렌체크 하면 ‘노동요’를 빼놓을 수 없죠.
준원 일하면서 힘드니까 음악 듣잖아요. 고통을 덜어준다고 생각하면 정말 감사하죠. 저희 음악이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혁준 되게 좋은 말이에요. 운전할 때 듣기 좋다는 말도. 저도 운전하면서 신나거나 좋아하는 음악 위주로 듣는데, 저희 곡을 들어준다면 그만한 칭찬이 없죠.
3집 앨범의 출발선에서 바라보는 결승점은 어떤 그림이에요?
준원 일단 전 곡의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어요. 다음 단계로 가는 발판이 될 수 있게. 이번 앨범이 글렌체크의 전환점이 될 거예요.
혁준 이번에 영상을 직접 만들게 됐어요. 더 나아가 지금까지는 음악을 위한 영상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영상이나 콘텐츠를 먼저 만들고 그것을 위한 음악 제작도 시도해보고 싶어요.
글렌체크를 음악 외적인 영역에서도 볼 수 있다?
혁준 그렇게 해보려고요. 공연 때도 비주얼적인 면을 강조하고 보여준 이유가, 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거든요. 관심도 많고요. 글렌체크는 음악에만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다 해보고 싶어요.
‘4ever' 뮤직비디오 속 준원 씨가 떠오르네요. 노출 연기까지 했던데요?
준원 아무 때나 벗을 수는 없잖아요.(웃음) 원래 카메라 공포증이 있었어요. 저희 유튜브 채널이나 사진첩에 들어가 봐도 남겨놓은 게 없더라고요. 이제는 더 풀어보려고요. 그게 가능하다면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지니까요. 또 하나의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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