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명을 쓰는 작가다. 에리카 콕스는 어떤 뜻인가?
동료 작가가 트위터 계정을 해킹당했는데, 해킹한 사람이 계정 이름을 에리카 콕스라 바꾸고, 데이트 사이트를 홍보한 적이 있다. 계정을 되찾긴 했는데, 그 이름도 이야기도 마음에 들어 구입한 이름이다. 한동안 안 쓰다가 몇 년 전 영국에서 작업할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디자인적 형태를 띠는 요즘의 작업과는 다르게 개념 미술적인 작품을 만들었나 보다. 작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메이커(maker)’라고 했다, 아티스트가 아니라.
맞다. 좀 더 문학적이기도 하고, 시각적인 것보다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작업을 했다. 사람의 관심사가 바뀌는 것처럼, 개념 미술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기도 했고, 내가 만든 세계관보다 현실에서 더 다이내믹하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걸 보며 작가로서 이야기를 만드는 게 어떤 의미일까 같은 회의감을 느꼈다. 그러다 2020년 즈음 마음을 다잡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은 미술이라 판단했고, 개념보다는 이미지적인 작품을 들고 돌아왔다.
<THE MONOLITH>는 어떤 생각에서 출발한 전시인가?
BMW와 함께하는 전시다. 자사 최초로 순수 전기차 SUV 모델 iX를 만들었는데, 이 차를 모티브로 작품들을 만들었다. 제안받자마자 내 작업과 잘 어우러질 거라 생각했다. BMW iX가 지닌 디자인 언어를 작가인 나의 방식대로 해석했고, 조형적으로 분석하고 분해해 내 미술 언어로 재조합해 만든 작품들을 전시한다.
조형 작품도 있고, 3D 영상도 있으며, 사진 작업도 있다. 이 중 가장 먼저 완성한 건 무엇인가?
전시장 중앙을 가로지르는 다섯 개의 오브제 작품. 3D 모델링으로 완성했고, 이걸 기반으로 다른 작품들을 완성했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현대적 오브제나 소비제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자동차는 물론 건축물이나 옷도 그렇다. 모두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데, 그 기능에는 사회적 가치가 쌓여 어떤 의미를 발생시킨다. 자동차는 탈것이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듯이 말이다. BMW를 탄다는 건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동차는 현대미술의 대상으로 삼기에 적합하다. 나의 작업은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해 그 조형성을 분해하고, 다시 맞추며 미술의 언어를 더해 완성하는 거다. 이번 전시장에는 다섯 개의 오브제 작품이 있지만, 실제로 만든 건 그보다 훨씬 많다. 내 작품의 오리지널 원본은 디지털 데이터인 셈이다. 그 원본에서 용도나 어떤 생각에 따라 3D 프로그램에 넣으면 영상이 되고, 프린트가 될 수 있으며, 조형이 되기도 한다.
“미술품이 아닌 사물들을 제작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작업관이 궁금하다.
미술계의 많은 작가가 자신이 다루는 매체와 장르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질문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예술은 어쩌면 사회적 용도로만 보면 무용한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이것에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탐구하는 거다. 한편으로는 기존 미술을 오염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내 작업에 쓰이는 재료나 방식은 건축이나 어떤 산업에 쓰이는 공법을 통해 만들고 있는데, 본래의 용도와 별개로 무용한 걸 만들고 있는 거다.
예술 작품은 사람에게 감정적 풍요로움을 주지만, 용도로만 보면 무용하다는 말이 인상 깊다.
무언가를 만들 때 돈과 시간과 노력이 드는데, 내 작업은 노동이 일반적으로 생산적인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일이다. 그렇게 완성된 것을 통해 결국 미술의 모양은 어떤가, 미술의 장소는 어떻고, 이 사회에서 미술의 기능은 어떤 것인가 질문을 하는 거다. 한편으로는 내가 작품을 만드는 이유가 꼭 미술일 필요가 없다고도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무용한 것들에 대해 논의할 수 있고, 그 가치가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는 거다. 나는 조각품에 속하는 작업을 하지만 조각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디자인 사물이냐고 묻는다면 디자인 프로세스를 따르지도 않는다. 이런 이유로 내 작업을 어떻게 호명할 것인가 고민해보면 이건 작가인 내 몫이 아니다. 나는 나의 생각과 머릿속 이미지를 미술의 언어로 작품을 만드는 거다.
그런 고민에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이하 파프) <Final Cut> 전시도 포함되는 걸까? 당시 전시에 아트 디렉터로 참여했다.
당시 파프의 디렉터가 내 작업에 관심을 보였고, 새 시즌 룩북의 콘셉트를 함께 정하자고 했다. 이후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함께 쏟아내며 패션 산업이 가진 일 처리 방식과 미술인의 방식이 동기화되기도 했다. 그러다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젊은 패션 쪽 인물과의 전시를 원했고, 파프에 제안이 가게 됐으며, 내가 아트 디렉터로 참여하게 됐다. 처음에는 전시에 내 작품을 전시할 생각은 없었다. 기획자로서 파프의 옷들을 전시장에서 멋지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다 파프의 옷들과 내 작업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파프의 옷이 가진 패턴을 작가인 나의 관점대로 오브제에 표현한 작품들을 구상하게 됐다.
<Final Cut>은 패션과 예술과 젊음이 보기 좋게 공명한 좋은 사례가 됐다. 관객들이 줄 서서 입장할 만큼 인기를 끌기도 했고. 에리카 콕스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영감을 어디서 얻나?
감사한 일이다. 다만 전시의 성공 여부가 관객 수가 아닌 것처럼, 나와 파프는 함량 높은 전시 리뷰처럼 비평적 논의가 나오지 않은 건 아쉽다. 작가로서 작품을 만들 때 여러 가지를 고려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아라리오에서 여는 파프 전시도 그랬고, BMW 삼성 전시장에서 열리는 전시도 마찬가지다. 그 장소는 물론, 지역의 특성이나 조건을 면밀히 보고 빠르게 반응한다.
다양한 매체와 문화에 관심을 둔 것도 작업관에 영향을 끼치나? ‘어푸어푸’라는 곡을 만들고 3D 아트 뮤직비디오를 개인 유튜브 채널에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음악이라는 매체가 나의 어떤 감정과 에너지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지금은 좀 더 시각적인 언어로 풀어내려 하고 있다. 유튜브는 좀 다른 예인데, 건강한 취미 생활 중 하나다. 브이로그 콘텐츠가 많은데, 일종의 일기장 같은 거다. 삶을 기록한다는 건 중요한 거라 생각하는데, 개인의 삶이 누군가의 공감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브이로그가 그런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바빠서 못 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앞으로 시간이 되면 더 찍고 싶고, 작업과 연관 짓지 않고 취미 생활로 남기고 싶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MONOLITH> 이후 개인전에 대한 생각도 있고, 더 큰 스케일의 작품과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상업적 공간인 어떤 광고 플랫폼을 통해 작가로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업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상업적 공간을 전시 공간으로 전유시키는 프로젝트다. 아직 확정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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