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K-서사
불평등, 연대, 갑을 관계, 일반인 히어로들, 치열한 경쟁. 한국형 서사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5개의 키워드로 정리한다.
#슈퍼히어로말고 #일반인
우리는 초월적인 존재가 나타나길 기대하지 않는다. 현실이, 또는 비극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길 원하지 않는다. 불가능하니까.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먼 미래에 실현될 수도 있는 변화를 기대할 뿐이다. K-드라마의 서사도 마찬가지다. 웅장한 세계관 따윈 없다. 초능력으로 대항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한국형 드라마나 영화는 보통 인간의 서사에 집중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건 소시민이다. 거센 힘으로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 아닌, 그저 살아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우리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줄 뿐이다. 그럼에도 그 속에는 아주 작은 힘이 살아 있다. 기득권자의 횡포를 바로잡으려는 서도철의 힘(<베테랑>),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덕수가 가족에게 희생하는 힘(<국제시장>), 첫 사회생활의 서러움을 극복하는 힘(<미생>). 그들의 힘에 우리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소시민이 극복 불가능한 절대적인 세력에 저항하는 비현실적인 모습은 한국형 서사의 뻔한 스토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서사는 우리에게 기대를 품게 한다. 먼 미래에 실현될 수도 있는 변화 말이다.
01 <오월의 청춘>
시민은 강하다.
1980년,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저 평범한 사랑을 꿈꿨을 명희와 희태. 하지만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앞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서로의 히어로가 된다. 계엄군에 의해 위험에 처하면 희태가 살려줬고 명희는 계엄군을 피해 달리던 동생 명수에게 총구가 겨누어지자 대신 총을 맞고 죽음을 택한다. 장엄한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몸을 던지는 소녀의 용기. 누가 그녀를 무력한 시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02 <모가디슈>
현실을 탈출하려는 우리 모습 같다.
1991년 발생한, 실제 소말리아 내전에 고립된 한국과 북한 공관 직원들이 모가디슈 지역을 동반 탈출했던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다. 내전에서 탈출하기 위해 남북한 가족들은 서로 연대하여 소말리아 총구를 피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소말리아인들을 피해 작은 쪽방에서 빛도 없이 숨어 지낸다. 남북한 대사와 참사관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들이지만 전쟁 앞에서는 굴복할 수 없는 평범한 존재가 된다. 그럼에도 가족과 삶을 지키기 위해 탈출하려 애쓰는 모습은 우리의 현실과 닮았다.
03 <지옥>
정의를 외면하다.
방송국 PD 배영재는 지옥의 사자들이 내린 지옥행 선고를 신의 의도라 해석하는 신흥종교 새진리회를 취재한다. 취재하며 알게 되는 사실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그들은 이치에 어긋나는 주장을 정의로 만들어 대중의 맹목적인 믿음을 산다. 새진리회를 추종하는 화살촉 집단은 빗나간 정의를 믿는 세상으로부터 힘을 얻어 불합리하고 잔인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변호사 민혜지와 배영재는 화살촉을 쫓으며 그들이 만들어낸 정의를 외면한다. 이들은 초월적 존재인 지옥의 사자에 대항할 수는 없었지만, 끝까지 새진리회의 정의에 굴복하진 않았다.
04 <다크홀>
재난에 저항한다.
<다크홀>의 화선과 태한은 알 수 없는 공기로 인해 만들어진 변종 인간들을 피해 다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인물. 재난에 맞선 평범한 인간들의 이야기다. 재난으로 인해 특정한 능력을 얻거나, 초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다크홀>에는 없다. 그건 현실을 회피하고, 판타지에 기대는 것일 뿐이다. <다크홀>에는 보통 사람들만 있다. 그들은 자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재난을 향해 처절히 저항하는 한국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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