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K-서사
불평등, 연대, 갑을 관계, 일반인 히어로들, 치열한 경쟁. 한국형 서사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5개의 키워드로 정리한다.
#불평등 #계급 #자본주의
불평등 해소는 한국 사회의 해묵은 과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정치 슬로건이 몇 해 전 우리 사회에 울림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불평등한 구조에서 고난을 겪는 개인들이 문화 콘텐츠에서 주요 소재로 다뤄지는 것을 보면,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은 다양한 영역에서 드러난다. 회사나 학교 등 서열화된 조직에서 기회와 보상이 공정하게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성과를 얻는 과정 또한 불공정한 경우가 목격됐다. 뉴스 정치면과 사회면에서는 공인의 비리를 주로 다루지만, 현실의 개인들에게 불평등은 익숙한 것이다. 불평등한 구조에서 개인이 겪는 문제는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불평등한 구조에서 살아왔고, 또 살아남았기에 이 구조의 균열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균열은 땜질해도 그 흔적이 또렷하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오랜 시간 그 땜질을 벗겨내고 균열을 파헤치며, 불평등에 무감각한 관객들을 환기시켜왔다.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해에는 <칠수와 만수>가, 1990년대 도시 개발 시기에는 <초록물고기>의 막동이가, 오늘날에는 <기생충>의 기우가 균열 앞에 섰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불평등은 전 세계 대부분의 사회에 만연하다. 그래서일까. K-드라마에서 불평등을 꼬집자 전 세계가 찌릿했다.
01 <오징어 게임>
목숨은 돈보다 귀하다.
빚에 쪼들릴지언정 저승보단 이승이 낫다. 그래서 참가자 전원은 게임 포기에 합의하지만, 되돌아온 한국 사회 그러니까 현실은 지옥이었다. 주인공 기훈이(이정재) 형이 경마와 한탕주의에 빠진 것은 그것만이 지옥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다른 참가자들 역시 채무에 떠밀려 오징어 게임이라는 절벽의 동아줄 앞에 섰다. 성실한 공무원 황준호(위하준)는 집안의 철딱서니 없는 말썽꾸러기 형한테 배신당해 죽었지만, 다른 참가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죽인다. 오징어 게임에서 부자들은 게임으로 더 큰 부를 쌓고, 참가자들은 부자들이 부를 쌓는 과정에서 희생된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경제 구조에 공감한 나라가 많다.
02 <펜트하우스 II>
펜트하우스는 필연적으로 일반 세대 위에 위치한다.
아파트 공화국에서 펜트하우스는 카스트 정점을 상징한다. 드라마 <펜트하우스 II>에서는 사회 상류층을 불평한 구조 위에 군림한 부정한 인물들로 묘사한다. 빈부격차, 사회 불평등, 뿌리 깊은 학교폭력 등을 다루기 위한 설정이다. 아침 드라마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재벌과 평민의 충돌을 그리지만, 플롯에 스타카토를 추가하고, 서사를 속주로 전개하며 부조리한 사회 상류층의 ‘막장’ 라이프스타일에 몰입하게 만든다.
03 <그 해 우리는>
평범한 청춘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감성 드라마다.
다큐멘터리에서 착안한 이야기인 만큼 최웅(최우식)과 국연수(김다미)의 입장을 균형감 있게 풀어내어 서사가 빈틈없이 탄탄하다. 조모 가정에서 가난하게 컸지만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국연수. 그녀는 사회에서 일에 쫓기며 살아가는 보통의 직장인이 된다. 반면 동네 유지 집에서 태어나 그림만 그리다가 스타가 된 최웅. 둘 사이에는 빈부격차가 존재하며, 성인이 된 후에는 그 격차가 더 벌어진다. 하지만 둘은 양극화된 사회구조를 깨거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 따윈 하지 않는다. 그것은 애초에 그들이 사랑하고, 다시 사랑에 빠지는 데 장벽이 되지 않았다. 드라마는 불평등한 사회에서 사랑의 가치를 보여준다.
04 <D.P.>
불평등한 계급사회 밑바닥에는 폭력이 난무한다.
안준호 일병의 삶이 그렇다. 피자 배달을 하고 약자라서 누명을 쓴다. 그의 억울함을 듣고자 하는 이는 없다. 돌아오는 것은 사장의 욕설. 계급사회인 군에서도 사회적 지위가 영향을 끼친다. ‘D.P.’는 소위 ‘빽’이 있어야 가능한 보직이다. 안 일병의 사수는 고위 관료의 자제이거나 좀 사는 집안이다. 안 일병은 폐쇄적인 계급사회에서 발생하는 부조리의 희생자들을 목격한다. 사회적 약자로 살아온 안 일병에게 군의 약자이자 피해자인 탈영병을 잡는 임무가 부여된다. 그것이 계급사회가 불평등을 유지해온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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