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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토론에서 배운다

말싸움할 때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대선 토론은 내용이 중요하지만 정작 유권자들의 시선을 뺏는 것은 후보자의 말투와 표정이다. 내용이 좋았다고 한들, 기억에 남는 것은 기록으로 남아 인터넷에 박제되는 것은 후보의 말실수와 당황한 표정이다. 후보자들의 화법으로 본 토론에서 피해야 할 것들을 꼽는다.

UpdatedOn February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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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이미지 싸움이다. 대통령 선거만이 아니다. 반장 선거부터 동아리 회장 선거까지도 그렇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치러진 선거와 그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대선 주자들이 이미지 메이킹에 신경 쓰는 것도 진정성 있는 공약 하나 발굴하는 것보다 이미지를 바꾸는 게 더 ‘가성비’ 좋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대권 주자라면 대부분 자의든 타의든 ‘PI(Personal Identity)’ 컨설팅을 받는다. PI 컨설팅업계에서 주로 인용하는 게 ‘메리비언의 법칙’이다. 앨버트 메리비언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1971년 발표한 내용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때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불과하고, 목소리가 38%, 보디랭귀지가 55%(표정 35%, 태도 20%) 가까이 차지한다는 내용이다. PI 컨설팅에는 패션이나 헤어스타일, 걸음걸이 같은 요인 외에도 말투와 제스처도 포함돼 있다. 주요 대선 주자들의 PI 컨설팅을 맡아온 전문가는 “단어 선택이나 말하는 속도 외에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을 흔드는 속도까지도 모니터링하고 개선하는 데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왕좌의 게임’에 참전한 이들의 화술은 어떨까. 이재명(더불어민주당) ·윤석열(국민의힘)·안철수(국민의당)·심상정(정의당) 후보의 TV토론을 보면 공적 대화 자리에서의 장단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시청자는 토론을 통해 거국적으로는 ‘이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겠다’는, 개인적으로는 ‘말싸움할 때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는다. 말싸움할 때는 일단 상대에게 ‘먹잇감’을 주지 않는 게 기본이다. 꼬투리 잡힐 거리를 내놓지 말아야 한다. 물론 무조건 목소리 더 큰 사람이 이긴다는 규격 파괴의 필승법을 배제했을 때 이야기다. 정제되지 않은 단어 선택, 잘못된 수치나 문구 인용, 핵심을 피해 가는 대답 등은 모두 마이너스 요인이다.

반대로 전문 용어나 격언, 통계 등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면 플러스 요인이 된다. 다만 해당 용어나 통계에 대한 배경이나 이해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역공당할 가능성도 있다.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먼저 입에 올리는 건 ‘자폭’에 가까운 행위다. 지난 대선토론에서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가 말한 “제가 MB(이명박) 아바타입니까” “제가 갑(甲) 철수입니까, 안철수입니까” 같은 게 대표적 실책이다. 주제와 상관없는 메시지도 자제하는 게 좋다.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후보의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떨어뜨리려 대선에 나왔습니다” 같은 말이 대표적이다. 지지자 사이에서는 ‘사이다 발언’이었겠으나 결과적으로 목적 달성에는 실패했다.

“이재명 후보는 논란에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동문서답으로 일관해 실망스러웠다.” “윤석열 후보는 경험이 없고 준비 안 된 모습이 답답했다.” 실제 2월 초 첫 4자 TV토론 이후 언론사에 접수된 독자 의견의 일부를 발췌했다. 각 당에서 상대 후보를 두고 내놓은 평가와도 비슷하다. TV토론 이후 윤석열 후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평은 ‘준비 안 된 초짜’였다. 윤석열 후보가 한 말 중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그게 뭐죠?” “(청약 점수 만점) 40점으로 알고 있습니다. (84점) 아, 예. 84점”같이 잦은 실수를 범해 이미지를 깎아 먹는 데 일조했다. 잘 모를 때 ‘좀 더 배우겠다’는 건 취준생이 ‘압박 면접’에서 임원진에게 임기응변할 때나 할 만한 말이지 대선 후보가 하기 적합한 말은 아니었다.

한편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가 대장동 의혹같이 불리한 질문에는 답변을 회피하기 급급했다며 ‘동문서답’만 했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의혹 관련 질문을 받자 “이런 얘기를 다시 하며 시간 낭비하기보다는 민생과 경제 이야기를 많이 하면 어떨까 싶다”고 답했다. 상대가 눈치채지 못했다면 답을 한 것처럼 슬쩍 넘기기에 좋지만 제삼자에게는 개운하지 못한 인상을 준다.

안철수 후보는 과거 토론보다 확연히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국민연금 개혁하겠다고 공동선언하는 게 어떤가”라는 발언으로 연금 개혁 필요성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이번 토론의 성과 중 하나다. 다른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도 조곤조곤 짚는 모습을 보고 ‘친절하다’ ‘얌전하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다만 ‘말싸움’만 두고 보면 집요함이 떨어진 게 단점이다. 말실수한 후보에게 연이어 공세를 펼치는 대신 틀린 부분만 정정해주고 그친 것 등이다. 이미지는 좋게 남겠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기는 어려울 수 있다.

심상정 후보의 강점은 이번 토론에서도 주효했다. 바로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대한 ‘맹공’이다. 지지율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면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파고드는 것도 방법이다. 미투 폄훼 발언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거나 주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최저임금제 폐지를 시사한 후보를 비판하는 식이다. 다만 첫 토론에서는 공격을 받은 윤석열 후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정확하게 알고 이야기하시라” 같은 반응으로 일관해 현장에서 유효타를 먹이지는 못했다.

더 디테일한 대선 후보의 발화 습관은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설명한 내용을 참고할 만하다. 신 교수가 방송에서 말한 후보들의 습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재명 후보는 승부욕 강한 말하기를 하고, 조음(造音)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윤석열 후보는 길고 장황하게 말하고, 감정적이고 선동적 말하기를 하며 휴지가 굉장히 잦고 길다. 안철수 후보는 음높이가 높고 약간 유약해 보이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를 의식해서 강하게 보이려고 한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준비된 것과 준비되지 않은 것에서 큰 차이를 보여 긴장과 당황을 많이 한다. 심상정 후보는 공적 말하기를 잘 훈련받은 사람으로 말투에서 열정이 느껴지고 대체로 들어온 질문에 대해 어물어물 넘어가지 않고 정확하게 답한다. 요컨대 이재명 후보보다는 느리게 말하되 윤석열 후보보다는 빠르게 말할 것, 잘 모르는 것이 나오거나 허를 찔렸더라도 긴장하거나 당황한 모습을 숨길 것, 동문서답하지 않고 어물어물 넘어가지 않고 열정을 담아 정확히 말하는 것이 말싸움에서 선방하는 길이다.

물론 토론에서 꼭 달변가일 필요는 없다. 눌변이어도 진정성이 있어 보이면 좀 더 대중의 가슴에 와닿을 때가 있다. 과거 대통령 중에도 눌변가가 꽤 있었다. 이들의 화술에서 장점만을 꼽아 평소의 말하기에 활용하고 싶은데 잘 고쳐지지 않는다면 대선 주자와 전직 대통령의 PI 컨설팅을 맡았던 전문가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단점 보완을 위해 조언을 해도 자기 고집이 있어서 잘 고쳐지지 않는 이들은, 선거에서 한번 떨어져 보면 재선 때 모든 단점을 고쳐서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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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Words 구희언(<주간동아> 기자)
Illustrator 송철운

202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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