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출신이라면서요. 동향이네요?
아, 그래요? 창원 사람들과는 유독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죠. 반가워요.
앞서 영상 인터뷰할 때 들었어요. 작품 촬영 끝내고 쉬는 중이라고.
맞아요. 얼마 전 <배드 앤 크레이지> 촬영을 끝냈어요. 새해를 <배드 앤 크레이지>의 ‘경태’로서 맞이했네요. 2021년의 마지막과 2022년의 시작을 <배드 앤 크레이지> 와 함께했는데요. 그 작품과 역할은 의미가 남달라요. 저는 연말에 유독 생각이 많아져요. 이전까지는 한 해를 되돌아보며 후회하기도 했고, 아쉬움도 느꼈어요. 이번에는 달랐죠. 작년 연말에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고생했고, 수고했다’고 말해줄 수 있었어요. 촬영 현장도 즐거웠지만, 큰 도움을 받았던 작품이에요. 감독님과 깊은 대화를 하며 배운 점도 많았고요.
경태는 순둥이 캐릭터인 반면 학연 씨 얼굴은 냉소적인 분위기를 풍겨요.
연기할 때나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선 그렇게 느끼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돌려 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터놓는 성격이에요. 상대방이 이해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냉소적으로 보이는 역할을 맡은 것도 사실이에요. 감독님께서는 저의 날카로운 외모가 경태와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그런데 막상 만나서 대화해보고 경태와 닮은 점을 많이 발견하셨대요. 실제론 냉소적이지 않습니다.(웃음)
<마인>의 한수혁 역은 수동적인 사람이고, 그의 MBTI를 예측하자면 ISFJ일 거라는 글을 읽었어요. 학연 씨는 그와 닮은 부분이 있나요?
제 MBTI는 ESTJ예요. 현실적이고 주도적이며 계획적인 타입이래요. 그래서 수혁이의 반은 저와 닮았지만 반은 달라요. 수혁이는 그룹 후계자가 되어야 하는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길만 추구했다면, 반대로 저는 현실에 맞게 조율하고 순응하는 편이에요. 그런 수혁이의 성향이 멋있게 느껴졌고 그 역할을 맡고 싶었어요.
의외네요? 팬들은 학연 씨 MBTI가 이성적인 ‘T’가 아닌 감성적인 ‘F’일 거라 예상했던데요.
감정 변화가 거의 없어요. 언젠가 심리 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제 심리 상태는 딱 중간이었어요. 가장 안정적인 상태. 그리고 스스로 잘 조절해요.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 고로 예민하다. 그러니 이 일은 잠깐 접어두자’는 식이죠.
일상을 찍은 유튜브 채널 <오늘의 기록>에서 직접 베이킹도 하고 창문도 닦으시던데, 차분하고 온화한 사람이었군요.
그런가요? <오늘의 기록>을 시작한 뒤로 제 색깔들을 알아가고 있어요. 이전까지는 활동적이고 활발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영상에선 소박하고 조용한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촬영과 편집은 직접 해요?
유튜브로 독학했어요. 편집할 때 모르는 부분은 친구에게 물어보면서요.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며 제 실제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것 같았어요. 직접 제작한 이유는 무엇이든 스스로 만들면 가장 나다운 색깔이 나오기 때문이에요.
2020년 전역 후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어요. 배우라는 직업에 열정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터널>을 시작으로 배우라는 직업에 애정이 커졌어요. 분량과 비중은 적었지만, 캐릭터가 매력적이었어요. 밤새워 역할을 분석했죠. 결과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감독님께서도 좋아하셨어요. 그 이후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어요. 더 깊게 연기를 공부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학연 씨는 배우로서 어느 단계까지 왔을까요?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준비는 갖춘 단계라고 생각해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올라야 할 계단도 많아요. 하지만 제게 기회가 찾아오면 자신 있게 붙잡을 수 있어요. 최근에 그러한 자신감과 여유를 가지고 연기하고 있어요.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란 확신은 어디서 비롯된 건가요?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가짐. 연기를 잘한다는 건 아니에요. 작품과 캐릭터를 만났을 때 온 힘을 다해 보여줄 수 있다는 거죠. 보는 사람이 만족감을 못 느낀다면 그건 나의 부족함 때문일 뿐, 최선은 다했다는 생각을 하니 자신감이 따라왔어요.
자신 있는 태도는 누구든 좋아하죠. 하지만 다른 인물이 되는 건 어려울 텐데요.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어려워요. 나의 일부분을 표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내가 아니니까요. 제가 역할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해야 보는 사람도 몰입할 수 있어요. 그러니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끝없이 상상하고 고민해야 하죠. 캐릭터를 분석하는 단계에 긴 시간을 투자해요. 가끔은 걷다가도 문득 대사를 읊조리곤 해요.
어떤 역할에 매료돼요?
강한 순간을 맞이하는 역할이요. 극적인 순간을 맞닥뜨리고, 그 순간을 극대화해서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라고 할까요. 이를테면 <배드 앤 크레이지> 속 경태는 순하고 착하지만, 범인 한 명을 잡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려놓는 강한 의지를 ‘눈빛’으로 표현하거든요. <드라마 스테이지 2021-더 페어>의 고도영은 마냥 살인이 주는 쾌락을 즐기는 역할이에요. 고도영은 감정 표현이 강한 캐릭터라 매력을 느꼈지만, 작품에서 그가 만든 상황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살면서 절대 겪을 수 없는 일들을 벌였으니까요.
이해하기 어려울 땐 어떻게 해결하고 몰입해요?
현장에 계시는 선배 배우들과 감독님께 많은 도움을 받는데, 이런 말을 하셨어요. ‘그럴 땐 이해하지 말고 고도영은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인식한 채 퍼포먼스하듯이 연기하면 캐릭터는 충분히 만들어진다’고요. 1차원적이고 단순하게 받아들이니까 연기가 더욱 쉬워졌어요. 이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은 파고들려 하지 않아요.
완벽주의자라는 말이 있던데요?
완벽하게 준비한 대로 해야만 안심하는 성격이긴 해요. 제대로 준비 안 하면 긴장해서 반도 못해요. 작년에 만난 작품들을 통해 배운 게 하나 있어요. 현장에 무작정 뛰어들면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혼자 대본 읽고 소리 지르기를 수천 번 반복해도 이해 안 되거나 와닿지 않는 장면이 있어요. 신기하게도 현장 가면 그런 고민이 모두 해결돼요. 상황을 직접 맞닥뜨리면 불현듯 그 대사가 납득될 때가 있어요. 예전에 <아는 와이프> ‘환이’ 역을 맡았을 때는 환이 1, 2, 3 그리고 7까지 준비해 갔어요.
1번부터 7번까지 각각 어떤 차이를 뒀어요?
이를테면 기분이 너무 좋은 환이, 무심하게 툭툭 말하는 환이, 사투리를 섞어 말하는 환이, 내면은 우울하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해보려는 환이. 감독님께 마음에 드는 환이를 골라달라고 했었죠. 지금도 번호를 매겨 여러 성격의 인물을 준비해서 보여드리지만, 현장을 믿어보자는 마음이 강해졌어요. 캐릭터를 혼자 미리 고민해 만들지 않고, 현장에서 주변 흐름을 파악하며 몸을 맡기기로 했죠. 조금씩 그런 노하우를 체득하고 있어요.
연기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생겼기에 노하우도 터득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신기하고 뿌듯하고 재미있기도 해요. 이런 변화를 맞이하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화면 속 연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기분이 어때요?
아쉽죠. 다른 방향으로 연기했다면 어땠을지 고민도 하고요. 연기하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한 가지, 나 자신을 내려놓을수록 멋있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확실해요. 저도 욕심 부리고 싶을 때가 있어요. ‘이 장면에선 이런 모습이 조금 더 멋있어 보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하더라고요.. 그런데 실제로는 스스로를 내려놓았을 때 좋은 장면과 멋있는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목표를 이루고 새로운 갈망을 찾아 나선 경험이 있나요?
<터널>에서 비교적 분량이 적은 ‘광호’ 역할을 소화했다면, 이제는 드라마에서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싶어요. <배드 앤 크레이지>의 경태를 통해 이만큼 표현했다면, 다음 드라마에서는 더 깊은 표현력을 전달하는 캐릭터가 돼보고 싶은 거죠. 이런 꿈이 한 작품 할 때마다 뻗어나가요. 더 큰 성취를 이루게 되는 원동력이죠. 최근 가구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가구도 마찬가지예요. 더 예쁜 걸 찾아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가구 디자이너에 대해 알게 되고. 주변을 바꿔 나가면서 새로운 것들을 공부하고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것 같아요.
춤 배우러 일본에 간 게 언제였죠?
고등학생 때 6개월 정도 갔었죠.
해외로 훌쩍 떠나는 걸 보면 모험심이 강한 사람인가 봐요.
변화를 즐겼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현대무용을 배우다 어느 순간 문득 다른 나라 춤이 궁금해졌죠. 환기가 필요했던 건지. 그래서 배우고 싶은 춤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직접 찾아갔어요. 선생님이 일본에 계셨거든요. 그리고 빅스 활동 당시, 해외 공연을 갔었어요. 그때도 그 나라에 제가 만나뵙고 싶었던 선생님이 계셨고, 짬을 내서 배우기도 했어요. 그런 갑작스럽고 낯선 순간을 좋아했나 봐요. 그때와 지금의 저는 또 많이 달라요.
어떤 점이 달라요?
그때는 아주 즉흥적이었어요. 어딜 가나 막내였으니 이리저리 통통 튀었죠. 빅스에서 맏형을 맡으면서 진중해졌어요. 어느덧 가장으로서 부모님을 책임지는 지금은 더욱 무거워졌고요. 변화를 즐기는 건 여전하지만 세 번 생각하고 결정해요.
그래서 집에도 변화를 줬다면서요?
네. 최근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라이프스타일 오브제의 매력에 빠졌어요. 화병과 실버 트레이를 사들였고, 귀여운 우주선 모양 조명도 구입했어요. 향을 좋아해서 향과 관련된 소품들도 모았어요. 인센스 스틱, 페이퍼, 홀더. 캔들도 종류별로 있고요. 이렇게 모은 결과 맥시멀리스트가 되었습니다.(웃음) 그래서 촬영 오기 전에 싹 비웠어요. 진열해놓을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박스에 담아두었죠.
오브제에 빠지면 끝도 없어요.
정말요. 깊게 빠지면 위험해요. 그래서 최근에 든 생각은 ‘좋은 걸 사서 오래 쓰자’는 거예요. 우선은 좋은 테이블 램프를 장만하려고요.
학연 씨는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질문지를 미리 받았을 때 정말 좋았어요. 자신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질문들이었거든요. 저는 이제야 자신을 조금 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 시간 동안 자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양한 성격을 가졌지만, 그중에서도 저의 진실함을 가장 좋아해요.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면서 꾸미거나 돌려 말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려 하고, 솔직한 제 모습이 좋아요. 팬분들과 친구들, 직원분들께도 신뢰감을 주는 큰 무기인 것 같아요. 꾸미려고 하면 겉으로 다 드러나요. 이제는 그게 보여요. 다만, 스스로 솔직하게 보여주기 싫은 부분은 아예 감추고 꺼내지 않아요.
지금 이 순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 질문만은 현장에서 즉석으로 대답하고 싶었어요. 조금 더 즐기면 좋겠어요. 스스로는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 자신을 틀 안에 가두려고 할 때도 있는 듯해요. 그래서 ‘조금 더 즐겼으면 좋겠다. 충분히 즐기고 만끽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리고 팬분들을 곧 만날 수 있을 테니 걱정 말라고 차학연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그립고, 빨리 보고 싶어요. 진심으로.(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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