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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버질 아블로

우리 세대의 칼 라거펠트, 버질 아블로가 영면했다. 패션뿐 아니라 문화 전반을 전복시켰던 인물의 타계로 전 세계는 슬픔에 빠졌다. 그는 우리 사회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이름 없는 아티스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등 새로운 패러다임과 문화를 제시했다. 버질 아블로가 남긴 것이 무엇인지, 세대가 다른 두 칼럼니스트의 견해를 담아 돌아봤다.

UpdatedOn December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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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개척자

익히 알다시피 버질 아블로는 파리와 밀라노, 런던, 앤트워프 등 전통적인 패션의 도시에서 수학한 디자이너가 아니다. 가나 출신 이민자로 시카고에서 토목공학과 건축학을 전공한 인물. 오히려 이러한 그의 태생적 배경과 학력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기존 디자이너들과는 달리 자신의 뿌리를 탐구하며, 스트리트 문화와 음악에 심취하며 자란 그는 패션계의 선구자였다. 스케이트보드와 디제잉을 비롯한 서브컬처와 로고, 숫자, 타이포그래피가 버질을 이루는 단단한 토양이다. 마치 오래전 뒤샹이 그랬던 것처럼, 이미 알고 있고 익숙한 것에 자신만의 견해와 디자인을 살짝 가미해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하며 파이렉스 비전과 오프화이트를 론칭했다. 화살표 로고와 간결한 타이포그래픽은 금세 소비자의 지갑을 가볍게 만들었다. 나이키와 협업한 ‘더 텐’ 컬렉션은 그가 루이 비통으로 가는 결정적인 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민한 디자이너는 소셜 네트워크와 디지털 플랫폼을 적절하게 사용했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 결과 패션계에서 고결하다고 칭해지는 하이엔드 브랜드에, 그것도 LVMH의 얼굴인 루이 비통의 왕좌에 앉게 됐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다양성을 강조하는 패션계에서조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는 그동안 백인이 이끌고 있었으니 그 상징성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렇기에 데뷔 무대인 루이 비통 2019 S/S 쇼 피날레에서 카녜이 웨스트와 부둥켜안고 울지 않았을까. 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루이 비통과 오프화이트 두 브랜드의 수장 자리를 겸하면서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디제잉도 하고, 새로운 협업 제품이 나오면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 루이 비통에서는 스케이트보더들을 위한 보드화가 나오는가 하면,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쇼, 그리고 환상과 모험이 가득한 컬렉션 등 그가 어린 시절 꿈꿔왔던 공상과 상상을 펼쳐냈다. 버질 아블로의 디자인에는 문화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민한 감각으로 시류를 읽고, 주의를 기울이며 포착한 그의 공백이 한없이 아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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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 아블로는 ‘무엇’인가

2018년 <시스템 매거진>은 10호의 표지에 ‘버질 아블로는 무엇인가(What is Virgil Abloh)?’라는 띠지를 달았다. ‘버질 아블로가 누구야?’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기성 패션계가 그의 작업을 생경하면서도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했다. 버질 아블로의 수많은 협업은 고급 기성복 업계에 종속되어 있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패션 학교에서 정석대로 패션을 배운 디자이너들과 시작점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으로, 버질 아블로 역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해 일리노이주에서 자랐다. 일리노이 공과대학 토목공학 학부에서 건축 석사학위를 받은 그를 처음 대중이 각인한 것은 2011년, 제이지와 카녜이 웨스트가 합작한 음반의 아트 디렉터로 참여한 <Watch the Throne>으로 그래미상 ‘베스트 레코딩 패키지’ 부문에 지명되면서였다. 당시 카녜이 웨스트는 대중과 타협하지 않은 불세출의 명반을 차례대로 공개했다. 버질 아블로는 카녜이 웨스트의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참여한 작업에서 앨범 디자인은 물론 앨범이 나온 후 어떻게 대중에게 노출해야 하는지 도왔다. 카녜이 웨스트와 작별하고 1년 후 시카고에 기반을 둔 하이엔드 스트리트 웨어 파이렉스 비전을 설립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이 브랜드에 충성도를 보인 시점에 불현듯 브랜드를 접고 다시 거점을 이탈리아 밀라노로 옮겨 2014년 오프화이트를 열었다.

소위 ‘하이엔드 스트리트 웨어’가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많은 호사가가 논평을 쏟은 이후에도 그는 비평가들이나 패션 업계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던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아갔다. 나이키와 선보인 열 개의 상징적인 스니커즈 협업 ‘더 텐’ 컬렉션은 2017년 소셜 미디어를 말 그대로 뒤덮었지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지점은 제품과 브랜드가 소비자와 만나는 방식을 마케팅 이상으로 만든 버질 아블로만의 고유한 방법이었다. ‘워크숍’으로 이름 붙인 일련의 ‘더 텐’ 행사는 런던과 뉴욕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도시 지역 문화 단체들과 협력하여 패션과 예술, 음악과 설치 작업을 연결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일종의 D.I.Y.(Do It Yourself) 워크숍이었다. 그는 젊은이들이 동경하는 요소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스턴트식품보다 빠르게 식는 모바일 문화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지역 문화의 거점을 일구는 이들과 친구가 되고, 의미 있는 행사를 주최하며, 모바일 문화에 익숙하여 온라인 세상에 길든 미래 소비자들에게 실제 참여 기회를 공유했다. 서울, 도쿄, 런던 등지의 백화점에 있는 오프화이트 매장에서 단순히 이벤트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버질 아블로’라는 한 명의 창작자로서 참여하고, 참여를 유도했다. 버질 아블로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는 스트리트 웨어, 음악, 고급 기성복, 예술과 우리 삶 전반에 놓인 디자인을 동시다발적으로 건드렸다. 2017년 10월, 하버드디자인대학원 강의에서 그는 ‘3%’의 디자인 원칙을 이야기했다. 이미 존재하는 제품에서 3%만 바꿔도 고유한 오리지널리티가 생긴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러한 관점으로 행한 다수의 협업이나 프로젝트는 거대한 ‘팬덤’과 동시에 무수한 ‘헤이터’를 생성해냈다. 1990년대 중반 헬무트 랭의 기능적이고 간결한 컬렉션과 2000년대 초반 라프 시몬스가 정립한 고독한 청년문화는 특히 버질 아블로가 직접 영향받은 컬렉션이었다. 하지만 그가 영감을 얻은 대상이 뚜렷했을지언정, 이를 바라보고 뒤섞은 다음 새로운 관점을 제안하는 방법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고 옹호하고 싶다. 그는 사람들의 삶 혹은 삶의 방식, 공동체, 미래 세대와 젊은이들, 창작과 창조가 시작되는 지점을 탐구한 아주 드문 패션 디자이너였다.

서로 배척하던 커뮤니티의 융합과 공존을 위해 기금을 만들어 후원하고, 과거와 미래, 장인정신에 관한 존중을 바탕으로 파격적인 실험을 하며, 유행 이상의 패션 혹은 패션의 물성을 지닌 오브제들이 수십 년 혹은 그 이상 답습하던 관습을 해체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패션 디자이너’에게 기대하던 직업적 특성을 버질 아블로는 그 자신만의 고유한 정신과 방식으로 재구축하고, 세상에 널리 전파했다. 그가 별세한 후 전 세계 오프화이트 매장에는 종종 그가 했던 말이 커다란 헬베티카 서체로 벽 한쪽을 장식했다. 41세의 버질 아블로는 17세의 사고와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행한 작업들은 세계적으로 열광적인 지지층의 보루이자 소유를 원하는 대상, 혹은 그 이상으로 수많은 이에게 영향을 끼친 유무형의 가치가 되었다. 창작의 범주에서 흔히 놓치고 마는 다양성의 소중한 정신을 널리 퍼트렸고, 그를 보며 새로운 희망을 품은 수많은 젊은이의 지향점이자 영감, 혹은 격의 없는 창조의 동반자 역할을 자처했다. 실제로 그는 세간에 공개하지 않은 다양한 후원 활동을 했으며, 미래 세대를 이끌 창작자들과 현재의 위상이나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협업하곤 했다.

한국의 패션 브랜드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임동준은 버질 아블로를 비롯한 그의 오프화이트 팀과 꾸준히 협업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함께한 개념이 물성을 띤 무언가로 등장할 어느 순간을 개인적으로 기다린다. 협업의 중간 과정을 조금 엿보았던 사람으로서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생전의 버질 아블로는 자신을 디자이너가 아닌, 무언가를 만드는 제작자로 칭했다. 고급 기성복과 예술부터 거리 패션과 스니커즈는 물론 자신이 속하거나 관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공동체의 위상과 무한한 가능성이 더 긍정적인 방향을 향해 전진하도록 이끌었다. 패션 혹은 디자인이라고 우리가 흔히 부르는 것은 이상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한 작업의 도구였을 것이다. 그에게는 말이다. 그는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사람들이 이미 아는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관찰하고, 누군가 시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조합하여, 결국에는 최종 소비자들과 그의 작업을 열망하는 모든 이가 과거에 생각하거나 예측하지 못한 길로 인도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혹은 건축적 배경과 디자이너 본인의 정체성을 토대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개념가이자 비전의 실천가로서, 브랜드와 브랜드가 행하는 모든 것을 단순한 ‘패션’ 이상의 위치에 존재하도록 탐구하고 실현한 버질 아블로 특유의 대담한 도전이 밑바탕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패션을 단지 산업이 아니라 커뮤니티, 어떠한 느슨하지만 단단한 결속력을 지닌 공동체로 칭할 수 있다면, 그의 부재는 이 업계와 공동체에 아주 충격적이며 슬픈 일이다. 때로는 찬반의 여지가 있고, 모든 것이 논리나 수학으로 돌아가지 않는 취향의 시대에 그는 높은 곳과 낮은 곳을 두루 아우르고, 친구들과 모르는 사람들에게 동시에 영감을 주었다. 그가 제안한 비전이 그가 관여한 브랜드를 넘어서 세상에 남아 하나의 유산으로 존재하고, 또 그에게 영감을 얻은 이들에 의해 멈추지 않고 꾸준히 전진하기를….
WORD 홍석우(<더 네이버 매거진> 에디터, ‘더 네이버 랩’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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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 아블로, 장벽을 허물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이분법의 논리는 더 이상 우리 세상에 들어맞지 않는다. 소련은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했고, 미국은 사회복지 체계를 하나둘씩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 속에서도 문화, 특히 패션은 최근까지도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다. 소수의 상류층이 향유하는 하이패션과, 하류층 문화 내지는 유스(youth)를 대변하는 스트리트 패션 사이에 있는 큰 벽이 바로 그것이다. 버질 아블로와 카녜이 웨스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흑인은 하이패션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흑인은 기껏해야 컬렉션에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해줄 모델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펜디에서 월 5백 달러 정도를 받으며 커피를 타던 버질과 카녜이의 인턴 기간이 끝나갈 무렵, 세상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스트리트 패션과 하이패션 간의 장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2008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조롱당하던 괴짜에서 세계 패션 신을 주름잡는 루이 비통의 수장이 되기까지, 버질의 성공신화를 가능케 한 것은 그의 열정과 이를 뒷받침해준 시대정신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세대의 디자이너들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것이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버질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더라도 그의 영향력을 부정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다. 지방시 2011 F/W에 등장한 로트와일러 그래픽 프린트, 그리고 발렌시아가 2012 F/W에 등장한 음침하면서도 현란한 프린팅 티셔츠는 하이패션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했다. 이는 이브 생 로랑이 레디 투 웨어의 개념을 제시한 이래 처음으로 맞이한 하이패션의 전환기였다. 패션은 더 이상 새롭고 독창적인 패턴과 테일러링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러한 전환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뉴욕의 클럽을 전전하던 버질 아블로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떨이로 구매한 챔피언과 폴로 랄프 로렌에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인 23과 마약 제조에 사용되곤 하는 유리용품 제작회사 이름인 파이렉스를 새겨 넣었다. 이는 흑인들이 길거리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농구와 마약밖에 없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내포한다.

대중이 브랜드 이면에 담긴 의미를 이해했든 아니든 간에 인스타그램의 셀럽들은 버질의 옷을 입어주었고, 하나의 유행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원가 열 배 이상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파이렉스 비전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러나 버질이 가격표를 부풀린 것을 소비자를 기만하려는 의도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저렴한 옷을 또 다른 작품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당당하게 대중에게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이 과정 자체가 파이렉스 비전의 본질이었다. 뒤샹이 변기에 사인을 하며 예술가의 숙명은 대상이 아닌 개념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버질 아블로 역시 이를 패션의 영역에 적용했을 뿐이다. 파이렉스 비전에서 나타난 버질 아블로의 작업 방식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3% 법칙이라는 이름을 달고 말이다. 3% 법칙의 본질은 기존 것의 단 3%만 변경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결과물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버질의 3% 법칙은 나이키와 협업한 ‘더 텐’부터 이케아와 협업한 ‘인마커드’ 컬렉션까지, 그의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혹자는 버질의 3% 법칙이 자신의 능력적 한계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고 비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인터넷에서 비춰지는 버질의 단적인 모습은 평범한 제품에 큰 따옴표와 글씨를 새겨 넣고 이를 작품이라고 칭하는 인플루언서에 불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질의 3% 법칙은 자신의 문화적 뿌리이자, 현대 패션업계 전반에 대한 성찰과도 같다. 문화적으로 3% 법칙은 샘플링이라는 재창조 방식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음원을 가공하여 새로운 음원을 만들어내는 작곡 기술인 샘플링은 힙합 음악의 토대이자, 스트리트 패션의 철학이다. 할렘의 쿠튀르 디자이너 대퍼 댄은 구찌와 루이 비통의 로고를 과감하게 사용해 옷을 만들었다. 그리고 슈프림은 아티스트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을 오마주한 로고를 활용하며 인기를 끌었다. 현대 패션에서 가능한 디자인들은 이미 세상에 등장한 지 오래고, 크고 작은 유행에 따라 순환하기만을 반복할 뿐이다. 유일한 차이는 기존의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이를 새로운 세대에 접목시키는 방식뿐. 이는 샘플링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버질 역시 자신의 문화적 코드를 샘플링하여 이를 하이패션에 접목시켰을 뿐이다.

그 자신도 이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힙합에서 가장 많이 샘플링된 곡 중 하나인 밴드 ESG의 곡 ‘UFO’를 루이 비통의 2021 F/W 쇼에 활용하는 등 자신의 역량에 대한 논란에 정면으로 맞섰다. 음악의 샘플링은 시대를 풍미한 히트곡을 만들지만, 패션의 영역에서는 창의성의 결핍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멋있었던 이유다.

때때로 마이너는 메이저가 되기 위해 자신의 철학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지만, 그는 수많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의 뿌리인 흑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스트리트 문화를 당당하게 지켜나갔다.

그의 등장 이후 흑인 패션 디자이너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사무엘 로스와 헤론 프레스톤이 각자의 브랜드를 론칭하고, 대퍼 댄이 구찌와 정식으로 협업을 하기까지 그 배경에는 늘 버질이 있었다. 그는 파이렉스 비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를 자신의 성공으로 직접 증명했다. 다음 세대를 위해 버질 아블로는 농구와 마약이 아닌, 창작이라는 새로운 사다리를 놓아준 것이다. 그가 어떤 디자인을 카피했고, 오프화이트의 원단이 어떻든 간에 그는 모든 논란에서 자유롭다. 파리의 이방인, 버질 아블로가 패션의 시대정신을 송두리째 뒤바꾼 만큼 이제는 그를 따라 앞으로 나아갈 때다.
WORDS 제종현(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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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F/W 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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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성지
COOPERATION 루이 비통, 오프화이트

202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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