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에 ‘정도(正道)’가 있을까. 얼굴도 모른 채 정해진 짝, 운명적인 인연, 친구의 친구, 술집에서 만난 낯선 이까지. 짝을 찾는 방식은 시대적 유행을 따라왔다. 얼마 전까지 대세는 2018년부터 시작된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였다. 부담 없이, 물 흐르듯 인연을 찾는 방식에 온·오프라인이 열광했다. 그것도 잠시.
비대면 시대의 도래로 만남의 장이 사라졌다. 한창 사랑을 좇을 나이에, 제한된 시간과 인원으로 빠르고 확실한 승부를 봐야 했던 젠지는 새 시대의 만남을 위한 돌파구를 찾았다. ‘데이팅 앱’이 바로 그것.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일상에 만남을 집어넣었을 뿐인데. 자만추라는 만남의 판도가 데이팅 앱으로 뒤집혔다.
데이팅 앱, 인기 순위
국내 데이팅 앱 시장은 2010년부터 성장해왔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2015년 약 5백억원 규모였던 시장이 2018년에는 약 2천억원 규모까지 이르렀다. 데이팅 앱 업계는 2021년에 전년도 대비 두 배 이상 이용률이 늘어났다고 전한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조사에서는 2020년 11월부터 6개월간 데이팅 앱을 사용한 국내 이용자는 평균 1백77만 명이었다. 이 중 젠지의 비중은 40% 이상. 20%의 밀레니얼 세대까지 보태면, MZ세대가 60% 이상의 비중으로 데이팅 앱을 이용했다. 2019년 66%가 인지하고 있던 데이팅 앱의 존재가 2021년에는 77.1%까지 상승했다고 리서치 기업 엠브레인도 추산했다. 더는 데이팅 앱을 활용한 구애 활동을 감출 이유도 없어진 시대가 온 것이다.
데이팅 앱을 이용한 이유
데이팅 앱 직접 써보니
주변 젠지들에게 물어 접근법이 다른 다섯 가지 앱을 설치해봤다. ‘틴더’ ‘아만다’ ‘1km’ ‘2ulip(튤립)’ ‘ssum(썸)’. 원래 데이팅 앱은 게임하듯 여러 개 돌려야 제맛이다. 그래야 성공률도 높다. 가장 먼저 튤립이란 앱을 통해 이성과 연결됐다. 프로필을 비롯해 생활 습관, 정치 성향, 결혼관, 젠더 인식 등에 대한 가치관을 기반으로 매칭 상대가 결정된다. 사진을 비롯한 세부 정보는 매칭이 되어야만 확인할 수 있다. 총력을 다해 필력을 발휘한 것이 성공 요인이었을까. 스물여덟 살인 K와 연결됐다. 중견기업 인사팀에서 일하는 그녀와 이틀을 데이팅 앱이 마련한 대화창에서 시간을 보냈다. 서로의 관심사와 일상에 관해 얘기하다가 자연스레 곱창 이야기로 넘어갔다. “논현동에 곱창 맛집 아는데! 같이 갈래요?” 흔쾌히 수락하는 그녀. 역시 곱창은 진리다. 그렇게 토요일 저녁 약속을 잡고 가게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당일. 도착하면 연락을 달라고 하고 번호를 남겼다. 그렇게 우린 만났다.
“인기 많으실 것 같은데, 왜 데이팅 앱 써요?” 몇 번의 연애사를 고백한 그녀가 내린 답은 ‘상대방을 더 알고 나서 만날 수 있으니까’였다. 무작정 만나기보단 대화해보고 결정하고 싶다는 주장. 거절하기 쉬운 점도 꼽았다. “얼굴 보고 나면 마음에 안 들어도 거절하기 미안하잖아요.” 공감이 갔다. 상대방도 상대방이지만 주선자에게 미안한 마음. 데이팅 앱에서는 주선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지. “다른 앱도 써봤어요?” 그녀는 인기 많은 앱은 거품이라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한번은 유부남이었다며 혀를 차고 소주를 원 샷 했다. 나에게 친구들한테 본인 사진을 보여줬는지 물었다. “주변에서 앱 쓰는 것도 몰라요.” 그녀는 내 프로필 사진을 확인했을 때부터 동생에게 생중계해줬단다. 오늘 만나기 전에는 회사 동료들에게까지도. “데이팅 앱 쓰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쓰면서 아무도 못 만나는 게 부끄럽지 않아요?” 듣고 보니 그렇기도. “혹시 저 말고 다른 남자도 있어요?” 내가 겨우 매칭이 됐던 순간에도 그녀에겐 여러 남자가 호감을 보냈단다. 데이팅 앱은 여자가 유리하다더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결제가 만남을 보장하진 않아
K와 헤어지고 집에 오는 길. 설치했던 다른 데이팅 앱을 열어봤다. 최근 ‘친구 찾기’를 강조하는 ‘틴더’. 몇 번의 스와이프를 했을 뿐인데, 여전히 가벼운 만남을 뜻하는 ‘ONS(One night stand)’ ‘FWB(Friend with benefit)’를 내세운 프로필을 적잖이 볼 수 있다. 스와이프를 아무리 넘겨도 매칭률은 역시나 낮다.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만, 매칭이 희박한 앱으로 정평이 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에서 2020 MZ세대가 선정한 1위 데이팅 앱 ‘아만다’는 과거 점수제로 진입을 제한하던 시스템을 등급제로 바꿨다. 물론 외모 평가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한 시도였을 뿐 여전히 이성 이용자가 채점한 점수로 앱 이용 당락이 좌지우지된다. ‘친구해요’를 보내면 간혹 매칭은 성사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매칭률이 낮아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아니라면 내 얼굴 탓일 테고. 매칭되더라도 답장이 전혀 없거나, 인사만 하고 끊어지는 걸 보면, 괜히 알바 논란이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1km’는 ‘가까운 거리의 인연과 매칭하기 유리한 앱이다’ 라고 어필하지만 사실상 이성 찾기 버전의 인스타그램 형태에 가깝다. 업로드한 사진, 글 등에 댓글을 달면서 대화를 진행하는 방식이기 때문.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걸 원한다면 괜찮을지도. 마지막으로 ‘썸’은 실제 주선자를 통해 매칭되는 신박한 방식이었다. 여타 앱과 마찬가지로 사진과 프로필을 등록해 가입한다. 이후 매니저 역할을 하는 ‘썸머’를 통해 이성에 대한 정보가 전달된다. 이에 응하면 9천 9백원을 입금 후에 카카오톡 아이디나 연락처를 받을 수 있다. 10번의 소개를 신청했지만 만남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프로필 사진조차 없고 대화 참여도 안 한 상대도 있었다.
오랜 시간 데이팅 앱을 이용하다 보니 노하우도 생긴다. 프로필 외모 관리는 필수다.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화조차 응하지 않는 것이 데이팅 앱 세계에서 불변의 진리니까. 일부다처제를 꿈꾸며 무한히 뻐꾸기를 날리자. 상대는 내가 누구와 얼마나 매칭됐는지 알 수 없다. 동시에 문어발식 앱 사용도 할 것. 이성 소개 수에 제한이 없는 앱도 있지만, 보통은 다음 소개까지 대기 시간이 소요된다. 여러 앱을 사용하며 대기 시간을 다른 앱으로 채우는 게 정신 건강과 성공률에 이롭다. 유료 결제는 지름길이다. 단, 보장된 길은 아니다. 무분별한 결제로 더 많은 상대와 기회를 만들 순 있지만, 그것이 무조건적인 만남으로 성사되지는 않는다는 거다. 하다못해 답장조차 안 오는 경우가 잦다. 대화가 연결되었다면 ‘말발’이 다음을 좌지우지한다. 데이팅 앱과 현실에서 만남의 차이는 대화하기까지의 과정이지, 본질적인 만남 상황은 크게 다를 바 없다. 유명 앱 외에도 신상 데이팅 앱을 눈여겨보자. 이성은 만나고 싶은데, 유명 앱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몰린다. 역시 전우애만큼 실속 있는 게 없다.
데이팅 앱 사용자 현황
허점은 많아도 대세는 데이팅 앱
데이팅 앱을 이용한 만남 역시 시대적 유행일 뿐, 만남의 정도라 할 수는 없다. 눈앞에서 만나도 상대의 진실된 모습을 알 수 없지 않은가. ‘스스로 꾸민 나’를 내세운 앱상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한국소비자원에서 최근 1년간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를 유료로 이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67.4%가 프로필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유령 회원으로 의심되는 상대를 본 적이 있다는 응답도 73.3%였다. 국내를 비롯한 해외에서는 데이팅 앱을 통한 범죄 뉴스도 심심찮게 마주할 수 있다. 데이팅 앱은 비대면 시대를 이끄는 만남의 장이지만, 여전히 보완해야 할 허점도 가득한 곳이다. 그래도 젠지를 필두로 한 우리는 오늘도 데이팅 앱으로 향한다. 시대가 낳은 또 하나의 러브 판타지 주인공을 꿈꾸며.WORDS 채희진(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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