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돌아보면 어때요?
참 많은 일이 있었죠. 작년 12월부터 출연 제의를 받은 작품도 늘었고, 찾아주는 사람이 많아 생애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낸 것 같아요.
<오징어 게임>은 그야말로 전 세계를 들었다 놨어요. 실감 나요?
피부로 느낄 정도예요. 인터뷰 직후 공항에 가야 해요. 미국에 가거든요. 황동혁 감독님과 이정재 선배님, 정호연 배우와 함께 <오징어 게임> 스크리닝 이벤트에 참석하고, 관객도 만나는 행사가 있어요. 해외 매체 인터뷰도 하게 됐고요.
<오징어 게임>을 향한 세계적 호응이 반가운 건, 100% 내수 시장에서 만든 콘텐츠라는 점도 있어요. ‘달고나 게임’ 같은 한국 정서를 세계적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는 점도 그렇고요.
한국 콘텐츠의 위력은 정말 어마어마한 것 같아요. 해외 문화를 재해석한 것보다는 한국적인 요소가 중심인 콘텐츠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걸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자랑스럽고 신기한 일이죠.
한편으로는 국내외를 나누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을 만큼 세상이 변한 것 같아요. 파리에 사는 한국인 친구는 어딜 가도 <오징어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했고요. 이제는 ‘K-콘텐츠’를 알고, 이해하고, 말하는 게 쿨해 보이는 시대가 아닐까 생각해요.
동의해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서양 사람들이 <오징어 게임>에 대해 말하는 걸 자랑스러워한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청신호죠. 저희끼리 최선의 영화를 만드는 게 세계적인 작품을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니까.
<오징어 게임> 공개 10분 전에 득남한 것도 이 작품이 박해수라는 배우에게 운명적으로 보여요.
정확히 3시 50분에 아이가 제 품에 왔어요. 처음 얘기하는 건데, 기존 출산 예정일보다 일주일 정도 앞당겨진 거예요. 아들이 세상을 좀 더 빨리 보고 싶었나 봐요. 아이가 태어난 건 제 인생 최고의 축복인데, 연달아 작품도 큰 사랑을 받으니 참 복덩이구나 했죠.
상우를 연기할 때 가장 고민한 건 무엇인가요?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인물이구나 생각했어요. 게임에서 어떤 판단을 할지 고민했어요. 그에게 공감해야 더 나은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황동혁 감독과의 협업은 어땠나요?
연출은 물론 각본도 감독님이 직접 쓰셨거든요. 그만큼 애정이 많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잘 잡아주셨어요. 게임 참가자들이 숙소에 있을 때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신경 쓰셨어요.
촬영하며 이정재 씨와 많이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던데요? 한 인터뷰에서 해수 씨를 무려 “귀염둥이”라고 하던데.
하하하. 이정재 선배님은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였어요. 맡은 캐릭터인 기훈이 인간미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후배들 역시 잘 챙겨주셨죠. 마지막 장면에 애착이 가는데, 기훈과 상우의 액션 신이에요. 입김이 날 만큼 추운 날씨에 정재 선배님과 서로 몸에 따뜻한 물 부어주며 촬영한 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어요.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 계정도 만들었던데, 팔로어가 2백70만을 돌파했어요. 이런 숫자도 신경 쓰는 편인가요?
초반에는 신경 쓰이더라고요. 하루에 몇 십만 명이 저를 팔로한 적도 있는데, 신기하잖아요. 제가 SNS를 안 해봐서 잘 모르기도 했고, 요즘은 SNS를 잘 활용하는 것도 배우에게 도움이 되는 시대니까요. 재밌게 소통해보려고요.
배우가 작품으로만 관객을 만나는 게 과연 동시대적인 건가 생각해보게 돼요.
배우는 사랑을 자양분 삼아 자라는데, 그런 관심에 대한 화답을 하면 서로 좋은 거니까. 정호연, 위하준 배우는 SNS에 멋지게 일상을 포스팅하더라고요. 저도 보면서 재밌다고 느낄 만큼 잘해봐야죠.
엄청난 관심을 누릴 틈이 있었을지. 바로 차기 드라마가 이어졌어요. 지난 10월 말 방영을 시작한 <키마이라>, 강력계 형사 차재환을 맡았죠.
<키마이라>는 35년 전 사건이 현재 벌어진 사건과 겹치며 범인을 쫓는 자들의 이야기예요. 추리 스릴러죠. 이 장르만의 전통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멋지게 따르는 드라마고, 시나리오가 굉장히 섬세한 부분까지 잘 표현되어 있어서 감탄했어요. 좋은 의미로 고전 작품 같은 매력도 있고, 묵직한 맛이 있는 작품이죠.
차기작도 예정됐죠. 이해영 감독의 <유령>. 설경구, 이하늬와 함께 출연하는.
설경구 선배님을 늘 존경하는 선배로 꼽거든요. 이하늬, 박소담 배우와 함께하게 된 것도 기대돼요. 그리고 이해영 감독님의 전작인 <독전>을 정말 재밌게 봤어요. 감독님 영화는 시적이랄까? 그야말로 시네마틱한 것 같아요. 아직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제가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된 게 운명적이라 느낄 만큼 뿌듯해요. 힌트를 드리자면 영화적으로 섹시한 매력이 있을 거라는 것.
맡은 역할은 경호대장 카이토, 일본인 캐릭터이기도 하고, 거의 모든 대사가 일본어라고 들었어요.
엄청난 양의 일본어 대사를 소화해야 했어요.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배우로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촬영장은 물론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열심히 공부했어요. 몇 주간 밤샌 적도 있고요. 원어민 수준으로 일본어를 구사해야 하거든요. 잠꼬대를 일본어로 했을 정도였어요.(웃음)
박해수 배우가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2017년 <슬기로운 감빵생활>이에요. 그리고 2019년 <양자물리학>으로 청룡영화제 신인상을 탔고, <오징어 게임>까지 왔죠. 돌아보면 어때요?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저를 대중적으로 더 알리는 전환점이 된 드라마이기도 해요. 선물 같은 작품이죠. 영화 <양자물리학>으로 신인상을 받았을 때 ‘최고령 신인상 수상자’라는 얘기가 있었을 만큼 즐거운 일이었죠. 제 필모그래피는 후배들에게 희망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지금 배우 박해수가 가진 최고의 무기는 뭘까요?
음… 저만의 무기는 없는 것 같아요. 주변에 감사한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무기가 아닐까요? 아내에게 고맙고, 부모님께 감사하고, 회사 식구들도 마찬가지예요.
박해수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며 배우로서 꿋꿋하고 성실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좀 전에 배역을 위해 몇 주 만에 일본어 연기를 준비했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유령>을 포함해 작품 세 개에 동시에 참여했다는 것도 그렇고요.
간절히 원하면 초능력 같은 에너지가 생겨요. 갈망하는 게 있으면 잠을 안 자도, 자면서도 공부하는 것 같고요. 제가 선택한 건데, 제 선택이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거든요.
박해수라는 배우를 지금까지 오게 한 힘은 어디서 오나요?
저는 저를 잘 못 믿는 것 같아요. 스스로 다그치는 순간도 자주 있어요. 의심하고 걱정하기도 하고요. 연극 활동할 때, 어느 순간 무대에 오르는 게 익숙해질 때가 있었거든요. 세 달 공연이면 매주 같은 무대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대사를 하니까 긴장감이 줄어든 거죠. 그때 마음을 다잡은 게 제가 무대에 서는 게 떨리지 않으면 그만둬야겠다였어요. 더 잘하고 싶으니까, 긴장해야죠. 저는 배우 일을 즐겁게, 오래 하고 싶었고, 지금도 그래요. 긍정적 긴장감은 늘 필요하다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세 작품에 동시에 임할 때 초능력처럼 대사를 다 외울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인터뷰에서 작품을 설명할 때 자주 ‘모험이었다’라고 했어요. 그렇다면 지금 박해수의 모험은 어디까지 온 것 같아요?
올해까지 여러 작품에 참여하며 다양한 도전과 모험을 한 것 같은데, 아직도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 두렵고 긴장돼요. 앞으로도 이런 도전적인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배우로서 작가의 세계관에 들어가는 게 재밌거든요. 모험이자 여행 같아요.
더 해보고 싶은 모험도 있나요?
너무 많죠. 제가 상상하지 못하는 세계관의 작품이라면 다 좋아요. 우리나라는 웹툰 기반 작품도 있고,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작품을 볼 때 드라마틱하다 느끼기도 하고요. 저는 이제 막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도, 배우로서도 더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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