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는 지난해 가을 시작해 올해 초 첫 번째 시즌을 마쳤다. 올해는 시즌 2와 시즌 3까지 이어졌고. 한 해를 심수련으로 산 셈이다.
촬영은 작년 4월에 시작했으니까, 일 년 반을 심수련으로 보냈다.
<펜트하우스 시즌 2>에서는 1인 2역을 연기했다. 아니 1인 다역이라 해야 할까?
그렇다. 심수련이 연기하는 나애교가 있고, 나애교가 심수련인 척 연기하기도 했고. 네 가지 성격을 연기했다. 시즌3의 심수련은 시즌 1의 순수한 심수련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였다. 같은 심수련이지만 결이 다른 심수련을 연기해야 해서 무척 힘들었다. 정말 여러 캐릭터를 연기한 느낌이다. 작품에서 여러 결을 연기하는 배우는 나뿐이어서 내가 잘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부담도 있었다.
<펜트하우스>는 복수극답게 처절한 장면이 많았다.
힘든 신이 진짜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병원에서 주단태를 죽이려고 시도하는 신이었다. 심수련이 주단태를 죽이겠다며 흥분해서 달려나가면, 두 남자가 심수련이 못 가게 잡고 끌어낸다. 그럼 심수련은 뿌리치고 다시 달려나가는 장면이었다. 편집해서 분량은 짧게 나왔지만 촬영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정신이 나간 듯 흥분한 상태로 건장한 남자 둘이 잡아당기는 걸 뿌리치는 장면을 여러 번 촬영해야 했으니까. 여러 앵글로 촬영하고, 한여름인데 소음 때문에 에어컨도 못 쓰고, 액션 신이다 보니 타이트 샷 찍을 때는 초점이 자꾸 나가서 다시 찍고. 그렇게 몇 번을 찍으니 진이 빠지더라. 다른 신들은 감정적으로 힘들었는데, 이 컷은 감정과 체력 모두 힘들었다.
드라마가 엄청난 속도로 전개됐다. 처음 각본을 읽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너무 재밌었다. 대본이 단 번에 쓱 읽혔다. ‘우와!’ 감탄하면서 대본을 읽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고 하더라. 각본이 그만큼 재밌으니까 영상으로 만들어졌을 때도 흡입력 있지 않았을까.
매회 굵직한 사건이 연속되는 것도 신선했다.
윤희가 내 딸을 죽였다는 게 시즌 1 엔딩에서 밝혀질 줄 알았다. 그게 큰 사건이니까. 그런데 6회에서 밝혀지더라. “벌써? 벌써 이게 나온다고? 그럼 뒤에는 무슨 얘길 하려고?” 그런데 항상 뒤에 무언가 재밌는 사건들이 계속 이어지더라.
<펜트하우스>의 전개 속도는 잠시도 지루할 틈을 못 견디는 요즘 시청 방식에 맞는, 그러니까 트렌디한 전개라고 볼 수도 있겠다.
우리 드라마를 보면 화장실을 못 간다고들 하더라. 화장실 다녀오면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그런데 촬영할 때는 빨리 찍지는 않는다. 한 회 60분 분량보다 훨씬 많이 촬영하고, 엄청 짧게 잘라서 편집한다. 다른 드라마보다 더 많이 찍고, 대부분을 잘라내서 압축시키는 방식이다. 이런 드라마는 처음이었다.
촬영 기간이 길었다는 뜻인가?
굉장히 길었다. 신이 많기도 했고, 대본도 다른 드라마보다 훨씬 두꺼웠다. 촬영한 내용의 30분 정도는 덜어내야 압축된 버전의 우리 드라마가 완성됐다. 우리 드라마는 걸어가는 장면이 없다. 그럼 걷는 장면 안 찍었나? 그건 아니다. 찍긴 다 찍지만 빠른 속도로 긴장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 잘랐다. 그게 우리 드라마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예능에도 고정으로 출연했다. <바라던 바다>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당시 <펜트하우스> 촬영 중이었다. 그래서 제작진에게 게스트로 출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달했는데, 짧은 시간이라도 나와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최대한 시간을 내서 참여했지만 하루나 하루 반 정도 머물다 보니 다른 멤버들보다 오래 머물지 못했다. <펜트하우스>에서 무시무시한 신들을 찍다가 바다에 가니 마음이 너무 편해지더라. <바라던 바다> 팀과도 너무 친해졌다. 서로 잘 통하고, 서로에게 애착이 생겨서 계속 연락하고 방송 끝나고도 따로 만났다.
다음 작품에선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게 될까?
모르겠다. 작품은 내가 원한다고 만나지는 게 아니더라.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내가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심수련과 잘 어울린다고 하는데 실제 나를 보면 아시겠지만 전혀 아니다.(웃음)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 이미지를 고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른 이미지를 연기해보고 싶다.
본인이 편한 캐릭터를 선호하나? 아니면 극적인 변화를 선호하는 편인가?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태왕사신기>나 <아테네>에서 뚜렷히 다른 역할을 했다. 완전히 다른 역할들을 다양하게 해왔다. 다른 역할에 도전하는 게 재밌다. 나에게 잘 맞는 걸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른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
뜬금없지만 연기가 왜 좋나?
좋은 걸 설명할 때 이유를 나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은 깊이 좋아하면 그렇다고 하던데, 나는 그냥 연기가 재밌다.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연기하는 순간에는 너무 잘 표현하고 싶고, 잘 표현했을 때 너무 행복하다. 표현이 잘 안 됐을 때는 많이 속상하고. 계속 도전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든다. 그게 이유 없이 좋아하는 걸까? 그저 연기가 재밌다.
배우는 자신의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캐릭터를 만든다. 이지아가 가장 애착하는 캐릭터는 누구일까?
<태왕사신기>의 수지니. 내 첫 작품이었고, 특별한 캐릭터였다.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애정하기도 했고. 최근에 연기한 심수련, 나애교 모두 애정하는 인물이다. 나애교 연기할 때는 진짜 나애교가 있고, 아픔이 큰 나애교가 있고, 심수련처럼 행동하는 나애교가 있었다. 그 인물들의 결을 각기 다르게 하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이 다르게 봐주셔서 그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기도 했다. 현재는 나애교와 심수련을 애정하고 있다. 그 전에는 수지니를 애정했고.
나애교와 심수련, 수지니 모두 영상으로 남아 있다. 애정하는 캐릭터를, 또 과거의 자신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는 좋은 직업 같다.
내가 연기한 게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은 좋은 점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마음이 쓰이고 신경 쓰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매 순간 진짜 잘하고 싶다. 기록으로 남는 것이니 잘 못 한 연기가 남으면 속상함도 크다. 지금 이 순간 연기를 하는 것만이 아닌 길이길이 남겨질 생각을 하면 더 큰 부담이 된다.
부담이 완벽해지도록 부추기나?
그런 것 같다. 돌아봤을 때 연기가 단계별로 발전하는 게 보여야 한다. 내 연기가 발전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를 더 압박하게 된다.
배우를 업으로 삼고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
가장 행복할 때는 감정을 잘 연기해냈을 때. 연기를 하다 보면 진짜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느껴질 때 행복하다.
모두들 진짜에 대해 말한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라서 그런 걸까. 뮤지션도, 작가도, 유튜버도 진짜를 이야기한다. 진짜란 뭘까. 연기에서 진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연기를 하다 보면 캐릭터의 모든 신이 전부 납득되지는 않는다. 납득하기 위해 작가님과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하고, 최대한 그 인물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배우가 충분히 이해하고 잘 표현해야 비로소 시청자들이 그 캐릭터의 감정을 이해한다. 내가 캐릭터를 이해하고 납득하다 보면 정말 감정이 진짜가 될 때가 있다. 모든 신을 그렇게 연기한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런데 그 인물이 되면 울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눈물이 나는 순간이 있다. 배우로서는 그때가 진짜가 아닐까.
사람들이 내 진정성을 알아봐 주는 것만큼 창작자에게 만족스러운 순간은 없는 것 같다.
캐릭터를 준비하고 연기한다고 그 인물이 될 수는 없다. 똑같은 말을 해도 누구는 상처받고, 누구는 상처받지 않는다. 그러니 이 사람은 어땠을까? 나름대로 고민하고 철저히 준비한다. 준비를 잘하면 어느 순간 진짜 그 인물이 된다. 그때야 말로 배우로서 가장 행복하다. 사람들이 연기를 알아봐 줄 때 역시 행복하다.
배우 이지아에게 2021년은 어떤 해로 기억될까?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해로 기억하지 않을까? 배우로서 큰 의미가 있는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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