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리가 보테가 베네타의 수장으로 부임한 지 올해로 꼬박 3년째. 35세의 젊고 유능한 영국인은 브랜드의 모든 것을 바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하우스의 명맥은 유지하면서 브랜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를테면 브랜드의 유산인 인트레치아토 패턴의 볼륨을 대담하게 키우거나 축소하고, 과감한 색상을 컬렉션 곳곳에 녹이며 도발적인 캠페인을 전개한 것. 이뿐만이 아니다. 브랜드의 강력한 홍보 및 소통 수단인 SNS를 없애고, 디지털 매거진 ‘이슈(Issue) 시리즈’를 발간 중이다. 1년에 4번 저널을 발행할 예정인데, 눈 시린 캠페인 사진뿐 아니라 3D 작업, 아트 비주얼, 짧은 영상 등 다채로운 플랫폼을 다룬다. 최근에는 <이슈 03(Issue 03)>이 발간됐으며, 한국 아티스트 이광호 작가와 정그림 작가의 작품이 <이슈 02(Issue 02)>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 모든 게 대니얼 리가 보테가 베네타에 안착시킨 새로운 DNA이며, 성공적으로 통했다.
그래서일까? 보테가 베네타가 만들면 무언가 새로워 보인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아트 인스톨레이션 ‘더 메이즈(THE MAZE)’ 역시 그들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개 패션 브랜드의 행사 및 설치물은 브랜드의 키 아이템인 신발과 가방 등을 보여주기 마련. 하지만 이번에도 보테가 베네타의 행보는 남달랐다. 어떠한 쇼피스 없이 시그너처인 트라이앵글과 초록색을 콘셉트로 삼은 미로 형태의 설치물만 만든 것. 그랜드 하얏트 서울 외부 주차 공간에 설치된 전체 크기 16m의 거대한 미로를 통해 일상에서 즐거움을 공유하며, 예상치 못한 의외의 장소에서 보테가 베네타의 유머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느껴보도록 의도한 거라고. 겹겹이 쌓인 그린색 메시 월의 낮과 밤은 사뭇 대조적인 얼굴을 띤다. 트라이앵글 미로의 중심에는 살롱 02(SALON 02)에서 선보인 시어링 퍼를 연상시키는 숨겨진 공간이 위치했다. 불현듯 나타난 혼돈 속 미로를 체험하며 잠시나마 어려운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경험.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자신들의 유머와 자신감을 뽐내는 캠페인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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