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이것은 세계를 하나로 이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기술이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다. 현실과는 달리 아바타를 통해 자신이 원했던 자아상으로 변신할 수 있다. 현실의 지위고하와 무관한 평등한 관계를 구축해 민주사회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메타버스(Metaverse)를 떠올렸다면 반만 맞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문제의 정답은 ‘인터넷’이었다.
최근의 메타버스 광풍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메타버스 수혜주라는 소문이 돌면 주가가 폭등하고 서점가에는 관련 서적들이 연일 쏟아져 나온다. 기업들은 저마다 ‘나도 메타버스입네’ 하며 홍보하기 여념이 없다. 2000년대 닷컴 버블을 떠올리게 만든다. 메타버스에 올라타지 않으면 뒤처질 것만 같은 사회 분위기도 그렇다. 욕망의 결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핫’한 이미지와는 달리 메타버스는 꽤나 연식이 있는 단어다.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의 SF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 처음 등장한다. 현실에선 피자배달부에 불과한 주인공이 메타버스에선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검객이 된다는 설정이다. 대중매체를 통해 수백 수천 번 반복 재생산된 서사이기에 지금 와서 읽으면 ‘이게 뭐야’ 싶을 정도다.
메타버스를 통해 <스노 크래시>가 가상세계라는 개념을 정립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1984년 출판된 윌리엄 깁슨의 SF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에 이미 현실과 구분되는 데이터 세계라는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우리말로 바꾸면 가상공간이다. 트렌드에 둔감한 노인정 할아버지도 알 만한 단어다. 사실상 현재 메타버스와 인터넷 부흥기의 가상공간 개념은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복합현실(XR) 등 돌림노래를 몇 년째 들어서 이미 식상해질 대로 식상해진 개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해묵은 용어를 마치 경천동지할 유행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메타버스 트렌드 전면에 서 있는 건 글로벌 IT 기업의 총수들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대표, 잭슨 황 엔비디아 대표,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 창업자 등등. 이들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5G 등 현란한 기술용어를 덧대가면서 메타버스가 가져올 미래를 황금빛으로 칠하기에 여념이 없다. 기술권력을 독점한 이들에게 메타버스란 도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니라 와야만 하는 당위에 가깝다. 페이스북은 2019년 20억 달러(2조3천3백80억원)를 들여 VR기기 개발 업체 오큘러스를 인수했다. 메타버스가 유행을 타면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메타버스의 가속화는 모바일 스토어 결제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구글플레이를 손에 쥐고 있는 구글 역시 메타버스 수혜주로 꼽힌다.
능력 있는 기업가는 욕망을 좇지 않는다. 욕망을 창조한다. 윈도가 나오기 전까지 일반 대중은 퍼스널 컴퓨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는 애플리케이션을 구매할 욕구 자체가 없었다. 메타버스 역시 기존에 없던 욕망을 발굴해내려는 시도로 읽힌다. 새로운 세계에 진입한다는 건 추가 소비를 뜻한다.
놀라운 건 메타버스 시대에도 욕망의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구와 닮은 가상세계를 창조하겠다는 ‘어스2’가 열리자 사람들은 가상 부동산 알박기를 시작했다. 메타버스 대표 게임이라는 ‘로블럭스’에서도 명품의 인기는 여전하다. 구찌의 ‘한정’ 컬렉션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는 디지털 자산의 장점을 인간 스스로 제거한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대체불가토큰(NFT) 딱지를 붙여 데이터에 오리지널리티를 인위적으로 부여한다. 메타버스 게임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2003년 린든 랩(Linden Lab)의 ‘세컨드 라이프’도 매한가지였다. 게임 내 아디다스, 도요타, 소니 등 글로벌 대기업들의 가상 매장이 들어섰다. 현실을 탈피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가상세계에선 오프라인의 욕망이 복제, 재생산됐다.
기업가들의 말처럼 메타버스 시대가 되면 모두의 환상이 충족되는 유토피아가 도래할까.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업에 성공하려면 줄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희소성 있는 자원을 독점해 우월감을 뽐내려는 욕망에 기반을 둔 전략이다. 인간은 널려 있는 자원으론 만족할 수 없는 서글픈 족속이다. 자원의 절대가치보다 타자가 부여하는 상대가치에 크게 좌우된다. 같은 자원을 분배해 모두가 동일한 행복을 소유하게 만들겠다던 사회주의의 말로가 어떤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기술이 제아무리 중립적이라고 한들 인간의 편향된 욕망을 이겨낼 순 없다. 코딩으로 메타버스를 구축하는 자, 메타버스를 이용하려는 자 모두 인간인 이상 결국 현실의 욕망이 ‘Ctrl C-Ctrl V’된 ‘현실 Ver2’로 나아가게 될 여지가 높다.
윌리엄 깁슨은 말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을 뿐(The future is already is already here-it’s not very evenly distributed)”이라고. 기술 발전으로 가상현실에서 가능한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는 날이 오더라도 인류는 어떻게든 격차와 계층을 만드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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