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 스트레스 버거 ‘클래식 치즈 버거’ 강석현(셰프)
녹진한 아보카도가 들어간 햄버거나 송로버섯이 들어간 트러플 버거, 매콤한 치킨 패티가 들어간 내슈빌 핫 치킨 버거까지. 그야말로 버거 열풍이다. 햄버거만큼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음식이 있을까? 먹음직스러운 비주얼과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까지 골고루 어우러져 영양적으로도 손색이 없다. 언제 어디서든 한 손으로 먹을 수 있고, 셰이크와 함께한다면 본식과 후식을 합쳐버리는 효율성까지 자랑한다.
내 마음속 최애 버거집을 꼽으라면 작년 이맘때쯤 혜성처럼 나타난 해방촌의 ‘노 스트레스 버거’다. 이 집은 메뉴도 ‘치즈버거’와 ‘핫윙’ 정도만 판매하는데, 특이한 점은 ‘스매시 버거’ 스타일을 지향한다는 거다. 스매시 버거는 패티를 눌러 굽는 버거를 의미하는데, 철판의 마찰 면적이 강해지고 넓어지면서 마이야르 반응이 훨씬 잘 구현된다(마이야르 반응이란 당과 단백질의 구성 성분인 아미노산 사이에서 반응이 일어나 음식의 색깔과 향을 만들어내는 화학반응을 뜻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버거가 새로운 스타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알려진 ‘버거의 아버지’라고도 한다. 노 스트레스 버거의 치즈버거는 마이야르가 최대치로 구워진 바삭한 패티에 고소한 체더치즈를 올려 녹여낸 뒤 빵 사이에 얹어내는데, 특별한 소스 없이 케첩과 머스터드, 양파, 피클 정도만 넣어준다. ‘이게 다야?’ 하겠지만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정말 ‘노 스트레스’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 적당히 바삭한 패티에서 절정의 고소함이 느껴지고, 녹아내린 체더치즈가 무엇 하나 모난 것 없이 딱 적당했다. ‘그래, 이거야!’ 그동안 빵 두 쪽에 눌린 알 수 없는 고기와 덜 녹은 치즈, 있으나 마나 한 채소인지 피클인지 익숙하지 않았던 낯선 햄버거가 아닌 기본적인 뻔한 맛,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맛’이, 사람들이 ‘노 스트레스 버거’에 열광하는 이유다.
2 삐삣버거 ‘삐삣버거’ 심승규(차리다 스튜디오, 브랜드 디렉터)
한남동에서 살고 또 일을 한다는 건 ‘어떤 햄버거를 먹을지’ 계속 선택해야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촬영 중 점심 메뉴를 선택해야 하는 일이 주 3회 이상 벌어지다 보니 “한남동에 왔으니 햄버거를 먹어야겠죠?”라고 말하는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왕십리가 곱창이고, 신당동이 떡볶이라면, 한남동은 햄버거다. 나의 주문 공식은 이렇다. 처음 만난 클라이언트에게는 ‘다운타운에 사는 사람들이 만드는 햄버거’를 권한다. 특히 아보카도가 들어간 버거는 식물성 기름이 느끼하긴 하지만 풍미가 신선해 인기 만점이다. 두 번 이상 ‘차리다’를 찾은 클라이언트에게는 동명의 애니메이션 <록 어 두들(rock-a-doodle)>을 네이밍으로 차용해 내슈빌 스타일로 해석한 ‘더 클래식 버거’를 추천한다. 닭의 주시하면서도 매콤한 육즙과 콜슬로의 아삭한 조화가 입속에서 흘러넘칠 때마다 미국 남부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까 끊임없이 상상하게 된다. ‘스트레스가 없는’ 버거도 빼놓을 수 없다. 치즈와 패티의 간단한 조합만으로 이렇게 맛있는 버거를 만들다니. 그래도 내가 꼽는 한남동 최고의 버거는 ‘삐삣버거’다. 패티가 하나인지 둘인지에 따라 ‘삐삣버거’와 ‘패티버거’ 두 가지 메뉴가 전부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삐삣버거는 패티를 ‘아주 높은 온도에서 튀기듯 바싹 구운’ 게 특징이라고 설명하는데, 로메인 상추, 토마토, 양파, 그리고 베이컨만으로 조립되는 심플함 때문에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푸드트럭으로 시작해 한남동 메인 스트리트에 1호 매장을 낸 게 2018년 1월. 그 뒤로 어찌나 들락날락거렸던지 사장님과는 한남동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게 ‘전설’이라고 한다면, 내겐 삐삣버거가 그렇다. 아, 그리고 고구마 프라이즈를 반드시 같이 주문해야 한다. 진짜 전설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3 별버거 ‘별버거’ 김아름(오비맥주 브랜드 콘텐츠 매니저)
지난 일주일 동안 인생 최대치의 버거를 먹었다. 하루에 한 번 경건하게, 때로는 세 번까지 공격적으로. 덕분에 급진적으로 체중이 증가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서울 버거 지형도를 얻었음에. 올림픽이 열리던 그 여름, 강남과 강북을 오가며 혼자만의 버거 월드컵을 진행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버거 애호가 A, 굴지의 버거 기업 출신 버거 엑스퍼트 B, 버거 격전지 용산구에 거주하는 식도락가 C, 버거에 진심인 사람들의 ‘인생 버거’를 컬렉팅해 결전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들 각자의 취향과 평가 기준은 달라도 교집합처럼 겹치는 곳은 다음과 같다. 해방촌 노 스트레스 버거, 도곡동 원스타 올드 패션드 햄버거, 성수동 르프리크, 신용산 버거 보이, 신사동 패티 앤 베지스, 대치동 크라이치즈버거. 누군가는 이런 조언을 달기도 했다. 갤러리아 고메이494에 입점한 브루클린 더 버거 조인트의 ‘크림 버거,’ 반드시 속초 코다리 냉면과 함께 먹을 것. 그래서 토너먼트 결과는? 나의 ‘소울 버거’는 상수동에 있었다. 2014년 오픈한 ‘별버거’는 이 동네 로컬 피플에게 큰 지지를 받는 버거 명소다. “제가 버거집을 열던 당시엔 탑처럼 재료를 쌓은 몬스터 버거가 유행하던 시절이었어요. 주변에 버거 전문점이 7개나 있었는데 그때는 모두가 버거를 넘어뜨려 나이프로 썰어 먹었죠.” 별버거 강윤희 대표의 말이다. 별버거에 대한 첫인상은 ‘샌드위치 같은 버거’였다. 식빵처럼 쫄깃한 식감의 번, 고기보다 두꺼운 채소 비중, 포슬포슬한 패티, 손으로 꾹 누르면 납작해지는 두께까지. 소박한 맛이다. ‘미국스러운’ 맛은 없지만, 이곳을 지지하는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백 투 베이식’을 모토로 빵의 쫄깃한 식감을 만드느라 많은 연구를 했다. 반죽을 5시간 동안 실온에 장시간 숙성시키는 것이 비결. 제빵사로 10년간 일한 경험과 노하우를 번에 녹여냈다. 먹고 나도 속이 부대끼지 않는다고 오랜 단골들이 말한다.
4 패티 앤 베지스 ‘싱글딥 버거’ 이경진(<엘르> 피처에디터)
‘하면 된다’ 식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음식은 버거 말고도 많지만 버거는 유독 화려하게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왔다. 버거 신의 엄청난 확장세 속에 나는 유독 심드렁한 버거 덕후다. 어느 버거집에서든 기본 중의 기본 메뉴, 재료가 적게 들어간 메뉴를 즐긴다. 그런 나의 버거 세계관을 관통한 것이 바로 패티 앤 베지스의 ‘싱글딥 버거’다. 가게 이름에서 느껴지듯 패티 앤 베지스는 패티에 진심이다. 패티 앤 베지스가 푸디들 사이에 뜨겁게 회자된 이유도 싱글딥 버거에 두툼한 패티 하나를 더 끼워 넣어, 묵직한 패티 두 장과 번만으로 이루어졌기 때문. 맛있는 패티의 조건은 꽤 까다롭다. 다져서 뭉친 고기 덩어리를 ‘겉바속촉’에 가깝게 구워야 하고, 너무 부드럽기만 해도 안 되며, 씹는 맛이 적당히 있어야 맛있다. 대범하면서도 부드러운 내면을 지닌, 유쾌하면서도 묵직한, 섹시하면서도 청순한 이상형을 만나기 힘든 것처럼, 이상형에 부합하는 패티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패티 앤 베지스의 패티는 그 어려운 길을 간다. 거칠게 그릴링해 적당히 까슬한 겉면, 탱글거리는 다진 고기의 식감,
버거 하나를 다 먹을 때까지 촉촉이 감도는 육즙…. 맛의 세계에도 ‘유니버설 디자인’ 같은 게 있는 법이다. 맛있는 건 누구에게나 통한다. 싱글딥 버거는 버터리한 두 장의 번 사이에 이렇게 공들여 만든 패티 하나를 쏙 넣은 주먹만 한 버거다. 토마토, 양파도 없이 오로지 빵과 고기로 승부하는데 퍽퍽하긴커녕 음료 한 모금 안 마셔도 술술 넘어간다. 세 종류의 치즈 딥 소스 중 하나를 골라 푹푹 찍어 먹다 보면 금세 버거 한 개 해치우고 여전히 입맛 다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동안 패티 앤 베지스의 메뉴에서 보이지 않던 싱글딥 버거는 이번 9월에 조금 더 두툼해진 패티와 함께 돌아온다고! 나의 행복한 버거 시대도 다시 열릴 예정이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