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오타니 쇼헤이(27세, LA 에인절스)의 2021년 활약은 별명 그대로다. 1994년생인 오타니는 생일인 7월 5일에 축포를 쏘아올렸다. 마쓰이 히데키가 2004년에 세운 아시아 선수 최고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한 31호 홈런이었다. 이틀 후 오타니는 32호를 날려 마쓰이가 162경기를 뛰고 달성한 기록을 81경기 만에 넘어섰다. 아시아 최초의 홈런왕에 도전하고 있는 오타니는 ‘조상님’ 베이브 루스가 1919년에 세운 29홈런 투타 겸업 기록을 일찌감치 경신했다. 심지어 베이브 루스가 투타 겸업을 포기하고 만든 60홈런 기록까지 넘보고 있다.
투수와 타자는 쓰는 근육이 다르다. 베이브 루스 이후 투타 겸업에 도전한 선수들이 모두 실패했던 이유다. 하지만 최고의 재능과 최고의 노력이 합쳐진 오타니는 루스보다도 더 완벽하게 투타 겸업을 해내고 있다. 동료 야구 선수들은 물론 케빈 듀란트(농구), J J 와트(미식축구) 등 타 종목 선수들까지 극찬하는 이유다.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투수와 타자로 모두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선수가 됐다.
야구에서 가장 완벽한 선수를 의미하는 ‘파이브툴(Five-Tool) 플레이어’는 5가지 재능을 갖춘 선수를 의미한다. 타격, 파워, 주루 스피드, 수비, 어깨가 모두 완벽했던 대표적인 선수는 켄 그리피 주니어다. 그런데 오타니의 어깨는 ‘좋은 송구’를 너머 투수까지 해내고 있다. 오타니는 시속 101.1마일(163km/h) 공을 던지고 117마일 홈런을 때려내며 상위 5%의 주루 스피드를 자랑한다.
하지만 오타니는 두 가지 재능을 더 가지고 있다. 뛰어난 인성 그리고 외모다. 오타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64개의 실천 사항이 들어 있는 인생 계획표를 세웠다. 그중에는 체중 증가를 위한 하루 밥 13그릇 먹기와 함께 쓰레기 줍기, 인사 잘하기, 부실 청소하기 등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일본에서 오타니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철옹성을 자랑하는 하뉴 유즈루(피겨스케이팅)와 스즈키 이치로(야구) 두 명을 제외하면 오타니보다 인기가 더 많은 남성 스포츠 스타는 없다.
오타니 열풍은 미국에서도 불고 있다.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섹스 심벌’로 여성 팬들을 몰고 다녔던 데릭 지터(전 뉴욕 양키스)가 사라진 후, 최고의 스타는 오타니와 같은 팀의 마이크 트라웃이었다. 그러나 트라웃은 묵묵히 야구만 잘할 뿐 이슈 메이커가 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는 스타 부재에 시달렸다. 하지만 1백 년을 버틴 금단의 벽을 무너뜨린 오타니는 뛰어난 실력과 뛰어난 외모로, 여성 팬은 물론 남성 팬까지 심쿵하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타니는 약점이 없을까.
오타니는 고교 야구 최고의 선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월등한 신체 능력과 잠재력으로 일찌감치 메이저리그의 러브콜을 받았다. 오타니는 졸업과 동시에 메이저리그 직행을 선언했다.
일본의 12개 구단 중 유일하게 오타니를 포기하지 않았던 팀은 닛폰햄 파이터스다. 닛폰햄은 두 가지 약속으로 오타니의 마음을 돌렸다. 투타 겸업 그리고 5년 후 메이저리그 진출이었다.
2016년 오타니는 완벽한 투타 겸업 시즌을 만들고 팀의 재팬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으며 퍼시픽리그 MVP가 됐다. 인구가 2백만 명이 되지 않는 삿포로시의 닛폰햄은 오타니의 인기에 힘입어 처음으로 2백만 관중을 돌파했다.
오타니는 2017년 연봉이 일본 야구 5년 차 신기록에 해당되는 3억8천만 엔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돈에 큰 관심이 없었던 오타니는 팀 선배 다르빗슈 유가 받았던 2억7천만 엔에 흔쾌히 도장을 찍었다.
오타니는 연봉과 수입을 부모에게 모두 일임하고 한 달 10만 엔의 용돈을 받았다. 그러나 운동하지 않을 때는 잠자는 것이 취미이며 유일한 나들이가 편의점 쇼핑이다 보니 그마저도 남기 일쑤였다. 3년 동안 용돈을 아껴 2백40만 엔을 모으기도 한 오타니에게는 10만 엔짜리 정장을 산 것이 가장 큰 규모의 지출이었다. 오타니는 야구에 집중하기 위해 운전면허를 따지 않았고, 2016년 일본 프로스포츠 대상 때 받은 자동차도 부모님에게 선물했다.
오타니는 2017년을 마침으로써 닛폰햄과 약속한 5년을 채웠다. 하지만 심각하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2016년 12월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 노조가 체결한 새로운 노사협약은 해외 리그 선수가 최저 연봉으로 시작하는 나이의 상한선을 만 23세에서 25세로 높인 것이다. 이는 오타니에게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의미했다.
사실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일본에서 두 시즌을 더 뛰고 진출하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타니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메이저리그 도전을 택했다. 이에 2014년 다나카 마사히로가 1억5천5백만 달러를 받고 진출한 것과 달리 계약금 2백31만 달러에 그쳤으며, 첫 시즌 연봉은 일본에서 받은 연봉의 5분의 1에 불과한 54만5천 달러였다.
하지만 돈에 초연한 선택은 오타니에게 두 가지 큰 선물을 안겼다. 몸값이 싼 선수가 되다 보니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 27개 팀이 영입에 도전한 것이다. 덕분에 오타니는 자신이 성장하기에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한 팀을 고를 수 있었다. 최고의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는 오타니의 마음을 잡기 위해 단장이 빌딩 외벽타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타니가 면접 기회를 준 7개 팀 중에는 양키스가 없었다.
두 번째는 주저하지 않고 꿈을 선택한 오타니에게 많은 일본 팬들이 감동을 받은 것이다. 오타니는 원래 많았던 인기가 더욱 높아지며 광고 계약을 쓸어담았고 연봉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올렸다.
오타니의 약점은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해 겨우 찾아낸 약점은 돈에 관심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오타니는 더욱 멋진 스토리를 가지게 됐다. 그러고 보니 이건 약점이 아니다.
일본 야구 만화 속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온 것 같은 오타니의 약점은 만화의 주인공과 달리 청순한 여자친구가 없다는 것이 아닐까. 맞다. 시상식에서 자기 옆에 여자가 서 있는 것만으로 잔뜩 긴장한 오타니는 연애 쑥맥일 것이 틀림없다. 아니, 틀림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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