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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모빌리티가 갖춰야 할 조건

현대자동차가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자율주행이든 전기차든 자동차만 잘 만드는 것에 그칠 수는 없다. 자동차 제조사는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해야 할 중요한 시기를 맞이했다. 이쯤에서 미래 모빌리티가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UpdatedOn August 12, 2021


대학생 때였을 거다. 당시 다니던 학교에 ‘고전 세미나’라는 악명 높은 교양 수업이 있었다. 고전 세미나는 교수가 강의하는 일반 수업과는 달리 네다섯 명의 학생들이 고전이라고 일컫는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그 책을 읽어온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수업이었다. 일주일에 책을 한 권씩 읽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예습량 때문에 그나마 공부량이 적은 1학년 때 들어야 하지만 많은 학생이 중도 포기를 외치며 4학년이 돼서야 이수를 완료한다. 혹독한 수업이라서 그런지 그때 읽었던 책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자동차 기자가 어울리지 않게 <인간의 조건>이라는 심오한 서적을 읽고, 기억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독일계 미국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대표작인 <인간의 조건>은 인간의 조건을 단순히 먹고사는 것이라 보지 않고, 사회가 성숙될수록 정치적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데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아렌트가 말한 정치는 정치 행위뿐만 아니라 타인과 관계 맺고 소통하는 일체의 활동까지 의미한다. 굳이 이 책을 언급한 이유는 ‘조건’이라는 것이 정체된 게 아니라 사물의 성격에 따라, 그리고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자동차다. 이전까지의 자동차는 대부분 이동 수단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 브랜드의 행보를 보면 자동차를 단순히 이동 수단으로만 바라봐야 할지 조금 의문이다. 자동차 브랜드들은 차를 생산하는 ‘제조사’에서 벗어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에 대한 그들의 명명법 또한 바뀌었다. 자동차가 아니라 모빌리티다. 이름이 바뀌었어도 이동 수단이라는 기본적인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인간의 조건>처럼 환경에 따라 조건들이 조금씩 더해진다. 그럼 앞으로 우리가 만날 미래 모빌리티의 조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당연한 이야기부터 하고 넘어가자. 친환경적이어야 한다. 현재 우리가 만나볼 수 있는 친환경차는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 두 가지뿐이지만 앞으로 더 확장될 수 있다. 이제 친환경차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변화하는 속도로 미뤄봤을 때 내연기관 시대에서 전동화 시대로 넘어가는 시간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게다가 미국이나 중국, 유럽연합 같은 거대 시장에서 2030년 또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 단순하게 친환경차가 많아졌다고 친환경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제품 소재부터 생산 공정, 에너지 공급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친환경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최근 자동차 업계를 강타한 키워드가 있다. 탄소중립이다. 탄소중립은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양을 계산하고 그 양만큼 나무를 심거나 청정 에너지에 투자해 실질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전 세계 모든 곳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면 전체 탄소 배출량을 낮춰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자동차 브랜드가 차뿐 아니라 기존 공장을 친환경 공장으로 바꾸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둘째는 자율주행이다. 자율주행은 운전하는 인간의 두 눈과 두 손, 그리고 오른발, 몇몇은 왼발까지도 해방시켜 더 많은 자유와 유희를 누리게 할 미래 모빌리티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하지만 자율주행을 단순히 센서로만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자율주행의 기본은 주변 정보 파악이다. 자동차 주변에 있는 사람과 사물의 크기, 위치, 움직임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완벽한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그래서 레이더 센서, 카메라 센서, 라이다 센서, 고정밀 지도, 초정밀 GPS 정보, 인공지능과 딥러닝, 초고속 프로세서, 빅데이터, 커넥티드 시스템, 5G 통신망 등 센서, 지리 정보, 정보 처리와 관련된 총체적인 기술이 집약돼야 한다. 자율주행차는 운전자의 개입 여부와 자동화 수준에 따라 미국자동차공학회(SAE) 기준 레벨 0에서 5까지 총 6단계로 구분되는데, 현재 자율주행차 기술 수준은 부분 자율주행 단계인 레벨 2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운전대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는 건 아마도 레벨 4가 나올 2027년부터일 거다. 레벨 4는 자동차가 운전자에게 제어권을 넘기는 일 없이 운행하는 본격적인 자율주행 단계다.

미래 모빌리티의 조건을 생각했을 때 누구나 그리고 대부분 친환경과 자율주행을 떠올렸을 거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멀리 보면 공상과학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개념, ‘플라잉(Flying)’이 있다. 흔히 모빌리티를 구분할 때 공간을 기준으로 땅, 하늘, 바다로 나눈다. 각 공간에 맞는 대표적인 이동 수단이 땅은 자동차, 하늘은 비행기, 바다는 배다. 하지만 이제는 공간도 점차 융합되고 있다. 영화에서처럼 바퀴 달린 배, 잠수하는 자동차 등이 대표적이다. 어떻게든 공간의 장벽을 없애기 위한 브랜드의 노력이 한창이다. 이 가운데 몇몇 자동차 브랜드가 주목한 것은 하늘이다. 땅과 같이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하늘과 땅은 서로 보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 브랜드들은 자꾸 플라잉카를 만들어낸다. 플라잉카는 전동화와 자율주행 관련 기술이 발전한 환경을 기반으로, 심각한 도시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공간에서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플라잉카가 대중화되면 엄청난 크기의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20 CES에서 우버와 함께 개발한 도심 항공 모빌리티를 선보이기도 했다. 현재 현대차와 토요타 같은 자동차 브랜드뿐 아니라 스타트업부터 보잉, 에어버스 등 항공업체까지 2백50개가 넘는 회사가 플라잉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교통문제의 해결책이 꼭 하늘에 있는 게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는 브랜드들도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AVTR 콘셉트를 선보이며 육상 부문의 자율주행 이동 수단 완성이 최우선이라고 발표했고, BMW 역시 운전자가 없는 자율주행차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최근 미래 모빌리티 조건으로 각광받는 게 있으니, 바로 로보틱스다. 이 분야에 가장 공들이고 있는 자동차 브랜드는 현대차그룹이다. 지난해 12월 현대차그룹은 소프트뱅크 그룹으로부터 미국의 로봇 전문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지배 지분 80%를 매입했다. 최종 지분율은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0%, 현대글로비스 10%, 정의선 회장 20%다. 여기서 눈에 띄는 수치가 있다. 정의선 회장의 지분율이다. 사재 2천4백억원을 출연한 것인데,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의 지분 참여는 그룹이 앞으로 본격화할 미래 신사업에 대한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투자 의지를 표명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말인즉슨 로봇 사업을 현대차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뜻이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후 로보틱스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네 개의 다리와 바퀴로 움직이는 소형 로봇 ‘타이거(Tiger)’를 공개했다. 길이 80cm, 너비 40cm, 무게 12kg으로 평탄한 도로에선 네 바퀴를 굴려 달리고, 계단이나 험난한 지형도 큰 어려움 없이 지날 수 있다. 이런 성격 덕분에 타이거는 다양한 센서를 활용한 과학 탐사 및 연구, 응급구조 시 긴급 보급품 수송, 험지로 가는 상품 배송 등 일반적인 자동차가 해낼 수 없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위에서 미래 모빌리티의 조건 네 가지를 이야기했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고 고정된 것도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조건’이라는 건 사물의 성격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추가되고 달라질 수 있다. 그럼 이런 변수로 인해서 미래 모빌리티 시대가 늦춰지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미래 모빌리티 구현을 위한 기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기업들이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 다만 염려되는 건 미래 모빌리티가 현실의 조건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새로운 모빌리티가 등장하면 정부는 기존 산업과의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규제를 시작한다. 물론 기업 입장에선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정부 나름의 목적과 이유가 있다. 이에 기업은 토론과 합의를 통해 점진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래 모빌리티가 자리 잡기 위한 사회 기반, 항공 관련 외교 정책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 모든 문제가 사라졌을 때 진정한 의미의 미래 모빌리티를 만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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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WORDS 김선관(<모터트렌드> 에디터)

202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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