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를 맡은 네이버 나우의 <보그싶쇼>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클립들이 꽤 화제가 됐다. 특별한 대화 기술이 있나?
최신 뉴스들로 상대가 좋아할 만한 얘기를 몇 개 준비해 간다. “얼마 전에 그거 하셨던데, 너무 잘되고 있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내가 말을 잘해서 이끌기보단, 출연자가 기뻐서, 스스로 나서서 얘기할 수 있게끔 한다.
굉장히 달변가더라. 원래 말을 잘하나?
어머니가 달변가다. 동생과 아버지는 무뚝뚝한데, 나는 외가 쪽을 닮았다. 어머니는 예의나 태도에 대해서도 많이 교육을 시키셨다. 백화점 같은 곳에서 내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고 문이 닫히면 가만히 서 계셨다. 다시 가서 문을 열어드리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나중에 여자친구를 만나더라도, 혹은 어른이나 친구를 만나더라도 이렇게 문을 잡아주고 기다려주는 거야. 그게 예의야.”
외모는 차가운 인상인데 외향적인 사람 같아 의외였다.
많이들 그렇게 말하신다.(웃음) 지금은 인상이 온화해진 편인데, 날카롭게 봐주는 것도 좋다. 생긴 것과 달라서 “걔는 그렇더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더 매력적인 거 아닐까? 팬들도 그 갭에서 오는 매력을 좋아해 주시더라. 첫인상과 현재 비교표 같은 것도 찾아보면 재미있다.
‘밝지만 밝지 않다’고 자신을 소개한 적이 있더라.
나는 상대방에게 맞추는 편이다. 몬스타엑스 민혁으로서 활동할 때는 비타민 같은 이미지로 봐주시니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이민혁에겐 그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방송할 때나 일 있을 때는 끌어올려서 하고, 집에 오면 방전돼서 쓰러진다. 취미도 게임하기, 그림 그리기, 인터넷 쇼핑, 과학 유튜브 보기인 집돌이다.
민혁을 ‘최애’로 두는 팬들은 왜 민혁을 좋아하는 것 같나?
글쎄. 연인 관계에서도 “그 사람이 너 왜 좋아하는 것 같아?”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잘 못하잖아. 나도 그렇다. 단지 난 늘 친구 같은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SNS에선 사소한 것도 나누며 다가간다.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좋아해 주시는 게 아닐까?
스스로 생각하기에 민혁은 어떤 사람인데?
나쁘지 않은 사람, 그 정도. 친근하고 좋은 사람으로 봐주시지만 사실 호불호도 강하고 일할 때 깐깐해서 나를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아닐 것 같지? 맞다.(웃음)
별명이 ‘서치왕’이다.
한동안 인터넷 사이트 기사나 댓글을 잘 안 봤다. 내가 의도치 않은 행동을 했는데 좋아해 주시면 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더라. 그게 진짜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한동안 서치를 자제했다. 그러다 최근 팬카페에 오랜만에 들어가봤는데, 팬들이 “왜 안 와”가 아니라 “역시 와줬구나”라며 맞아 주시는 거다. 그러면서 슬럼프를 극복했다. 지금은 반응을 찾아보며 수행하기보단 마음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맞다. 좋지만은 않은 점이다. 예전엔 촬영할 때 “지금 이렇게 가는 거 맞아요? 분량 나올까요?” 라고 자주 물었다. 방송을 즐기면서 편집 잘해주시겠지 하고 맡기는 게 건강한 것 같은데. 요즘엔 그런 의식을 덜어내고 있다.
장남이고 ‘창신동 효자’인 것도 영향을 줬나?
맞다. 내겐 ‘효자병’이 있다. 뭔지 아나? 아무도 이렇게까지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하는 것이다. 어제도 집에 들렀다가 갖고 있던 현금을 전부 두고 왔다. 입고 간 옷 동생 주고, 필요한 거 없는지 계속 물어보고. 병이다, 병. 공감하는 분들 있을 거다.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한다.
소통을 편안하게 한다. 지금도 그렇고.
주변에서 내게 고민 상담을 많이 청해온다. 어쩌다 보니 여러 사람의 비밀을 알고 있다.
남이 당신에게 비밀까지 털어놓는 까닭이 뭘까?
한번 조언해주고 금방 까먹어버려서?(웃음) 이를테면 누가 “어떤 사람을 만나면 어떻다”라고 하면, 나는 “근데 그 사람은 어떤데?” 하고 내가 궁금한 걸 파고들기보단, 그냥 “진짜? 그랬구나. 네 생각은 어떤데?” 하고 묻는 편이다. 그런 태도가 마음의 문을 여는 것 같더라.
선생님을 했어도 어울렸겠다.
아이돌 지망생들에게 무료 강의는 진짜 해보고 싶다. 나는 남들보다 늦게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연습생이 되기까지 주변에 이 일에 대해 알려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연차가 쌓이며 내가 아는 것들이 생기니까 나 같은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더라. 이타적이라고? 내 행복을 위한 거다. 그런 강의를 하면 나도 뭔가 해소될 것 같다.
언제부터 아이돌을 꿈꿨나?
어릴 적부터 케이팝 가수들을 좋아하면서도 그걸 티 내진 않았다. 중학교 때 미술부였는데, 힙합 동아리 친구들이 팔 웨이브 동작을 하는 걸 유심히 보고 있다가 집에 가서 해봤는데 나도 된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웃음) 그러다 3학년 때 친구와 장기자랑에 나가 이소라 선배님의 ‘제발’을 불렀다. MP3 배터리가 다될 때까지 종일 그 곡을 들으며 덜덜 떨었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 사람들의 호응을 받는 기분이 정말 짜릿하더라.
그 전엔 뭐가 되고 싶었는데?
시인, 미술 교사, 만화가. 어릴 땐 꿈이 많으니까. 시 쓰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시화를 많이 그리고, 대회도 나갔다. 직접 그린 그림들을 보고 왔다. 고래나 별, 꽃, 순수한
그림들이라 좋더라.
최근엔 인물을 그렸다. 한쪽은 선명하고, 다른 한쪽은 사라지는 얼굴을 그리고 싶었다.
이건 좀 슬퍼 보이는데. 자화상인가?
맞다. 내 얼굴을 나 같지 않게 그렸다.
미남인데 잘생기지 않게 그렸다.
잘생기게 그리는 법을 몰라서 그렇다. 예쁜 사람을 그리고 싶은데, 마음이 삐뚤어진 건지 울퉁불퉁한 사람이 된다.(웃음) 정형화된 걸 못 그리겠더라. 밑그림도 안 그리고 바로 붓질한다. 라텍스 장갑을 끼고 손으로 문지르기도 하고, 물감을 뿌리기도 한다. 여유가 생기면 앉은 자리에서 대여섯 시간 동안 그린다. 언젠가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
당신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타투로도 새긴 고래와 장미는 어떤 의미인가?
고래는 크고 오래 살고 멀리 다닌다. 장미는 사랑을 뜻한다. 그래서 함께 새겼다. 사랑하는 이들을 태우고 어디든 가고 싶다는 바람으로. 등에는 거울 속 장미가 있다. 거울은 자기 자신, 장미는 사랑. 나를 사랑하자는 단순한 뜻이다. 오늘 장미 속에서 촬영한 컷들을 좋아해 주실 것 같다.
직접 커스텀한 아이템들도 예쁘더라.
세상에 하나뿐인 게 좋다. 커스텀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신발끈만 다른 걸로 바꿔도 커스텀이다. 지금 내가 신은 이 컨버스에 두꺼운 붓에 물을 먹여 검은 엑스자를 크게 그리면 예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다른 분들이 이렇게 그린다면 똑같은 엑스가 그려지지 않겠지. 기계로 찍는 게 아니니까. 그런 게 커스텀의 매력이다.
활동 중인 앨범 제목 <One Of A Kind>와 비슷한 맥락이네.
맞다. 멤버들이 직접 참여해서 거의 모든 걸 다 만든, 단 하나뿐인 앨범이다. 주헌이가 만든 타이틀곡 ‘GAMBLER’는 묵직한 곡으로, 세련되고 감칠맛 난다. 내가 타이틀곡으로 밀었던 곡이다.(웃음)
7년 차 아이돌로서 케이팝 산업에 대해 코멘트해본다면?
<보그싶쇼>를 할 때 아이돌들이 나오면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는지 물었다. 그러면 다들 각자 사연을 청산유수처럼 답한다. 나는 카메라를 보면서 딱 한마디 한다. “여러분, 아이돌 이렇게 힘들게 됩니다.” 아이돌은 어릴 때부터 많은 걸 버려가며 열심히 해서 된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돌에 대한 편견을 가진 분들도 있는데,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프로페셔널로서의 자부심이 보기 좋다.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건?
아이돌이라면 누구나 팬들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당연한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그 이야기다. 팬들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해준 분들이다. 내가 무대 위에 서고 싶어서 이 직업을 택했는데,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생긴 거란 말이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랑까지 받는 건데, 성실히 피드백해야지.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
멋있네. 아이돌학 강의 할 만하다.
초중고 다 일반 학교를 다니며 평범한 친구들과 지내다 성인이 되고 연습생을 시작해서 그런 것 같다. 부모님은 반대하셨고, 집에서 돈 한 푼 없이 나와 알바하며 학원비를 마련했다. 가장 힘들 때였다. 밥 먹을 돈이 없었거든. 하지만 그런 시절을 겪었기에 견문이 넓어진 것 같다.
스스로를 인터뷰한다면 어떤 질문을 던져보겠나?
넌 언제 제일 힘들어? 왜냐하면 답을 모르겠어서. 월드투어를 하면 무대에 오를 땐 즐겁지만, 공연이 끝나고 나서 환호성만큼 이명이 들린다. 늦은 밤 차가운 배달 음식으로 이명과 함께 배를 채울 때? 아니면 활동하며 잠을 못 잘 때? 어떤 게 가장 힘든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등에 나 자신을 사랑하자는 타투를 새긴 거다.
민혁은 뭘 믿나?
종교도, 사주도, 남도, 나 자신도 믿지 않는다. 내가 나 자신을 백 퍼센트 알고 믿으면 자신을 컨트롤할 이유도 없거든.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통제하고 노력한다. 진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믿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나를 믿지 못하기에 노력한다. 그래서 내가 믿는 건 관상이다. 관상은 과학이다.(웃음) 직접 마주할 때 느끼는 그 사람의 분위기는 진짜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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