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진을 처음 본 게 언제였더라… 찾아보니, 2008년 아라리오 서울에서 개인전을 했을 때. 기자 간담회에 참석했고, 홍보 담당자와 점심 식사를 하러 갔는데, 백현진이 왔다. 기자들 사이에 앉았다. 뭔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나고, 엄청 냉소적이었다. 이런 자리를 왜 만들었지? 생각했을 수도 있을 거 같다. 어색하게 머물다가,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나갔다. 그냥, 갔다. 그냥 갔다고. 무례하게 느껴져서 한편으로는 굉장히 재밌었다. 나는 전시가 좋았기 때문에 백현진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뭐, 괜찮았다…라고 적으며 다시 생각해보니, 음, 불쾌했던 거 같기도 하고.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 다 ‘벙쪘다’라고 할까. 그런데 다들 별말 안 했다. 돌아가는 길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와, 오늘 진짜 황당한 사람 만났어, 짜증나, 라고 말했을지 모르겠으나, 그 자리에서는 딱히 말하지 않았다. 태도를 문제 삼는 건 쿨해 보이지 않아서 그랬겠지. 그러니까 여러모로 바보 만든 건데, 그게 참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백현진을 욕하려고 이 얘기를 꺼낸 건 당연히 아니다. 나는 백현진의 팬이고, 작가로서 존중한다. 그저 백현진의 캐릭터가 어땠는지 전달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정말 백현진 팬이다. 특히 어어부 프로젝트의 팬이다. 장영규와 백현진이라는 독특한 두 사람이 만든 ‘음악’은 내 기준으로는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처음 들었을 때는 노래라기보다 음, 아트 퍼포먼스 같았달까. 뭐든 상관없지. 좋았다는 게 중요하지. 속이 뻥뻥뻥 뚫렸다. 어? 노래 이렇게 불러도 돼? 사운드를 이렇게 거칠게 사용해도 된다고? 자유롭다는 표현은 촌스럽고, 음, 아, 뭐라고 해야 하지, ‘질렀다’라고 해야 하나. 어떤 표현도 촌스럽다. 저 둘이 만든 게 너무 제멋대로인데, 제멋대로 한 게 너무 멋있는데, 그걸 뭐라고 표현하겠는가. 훗날, 듣자 하니, 어어부 프로젝트의 음악에 감읍하여 이 둘을 극찬한 문화 예술계 종사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중에는 한국의 유명 영화감독들도 포함된다.
나는 어어부 프로젝트 음악을 들으며 첫 시집 원고를 다듬었다. 문장이 막힐 때마다 어어부 프로젝트처럼 더 맘대로 하기 위해 노력했다. 맘대로 하는 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당시 나는 맘대로 하고 싶은데 못하는 혹은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 시도 더 마음대로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의지를 어어부 프로젝트 음악을 들으며 다졌다. 응원을 받은 셈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그림의 팬… 음, 팬 맞다. 회화는 백현진의 가장 얌전한 작업이다. 내가 볼 때 백현진은 어떤 장면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담아내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캔버스를 오래 보며 오래 머물며 오래 작업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고, 나 역시 동의한다. 그리고 한 가지 방식이 더 있는데, 그것은 반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붓질. 그는 반복해서 무엇인가를 칠한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종종 알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다. 관객들이 그렇게 완성된 혹은 완성되고 있는 형상이 무엇인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백현진은 관객이 틀리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 언제나 정답이다. 아무도 틀리지 않는다. 관객이 본 것은 그대로 맞고, 백현진이 무엇을 그렸든 그것은 그 자체로 존재할 뿐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백현진만의 고유한 방식이라고 할 순 없는데, 아, 뭐라고 할까, 묘하게 다른 거. 이 이질감이 나는 좋다.
반복하는 것에서 그의 창작이 끝나지 않는다. 찰나 혹은 감정 같은 것, 이어서 말하면 순간의 감정 같은 것, 백현진은 그 반복된 동작 속에 미세한 균열과 간섭을 담아내려는 의지를 갖고 있고, 그것은 그림에서 분명하게 형상화된다. 그래서 백현진의 회화는 아무리 인색하게 접근해도 볼 만하다. 다만 저 위에도 적었듯, 회화는 백현진이 하는 가장 얌전한 행위다. 어어부 프로젝트가 보여준 충격은 단언컨대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것이다. 남건 말건 인정을 하건 말건 그건 너무나 위대한 것이다. 백현진이 기자들 사이에서 그렇게 무례하게 빠져나간 것을 나는, 그가 스스로 무엇을 해냈는지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꼰대의 영역이다. 다시 회화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나는 백현진이 무엇인가 더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좋고.
백현진이 대중적인 ‘작업’을 한 것은 연기뿐이니, 연기 덕분에 대중에게 알려진 건 당연하다. 뜬금없이 에피소드 하나. 아라리오 서울 개인전 이후, 한참이 지난 후에 백현진을 인터뷰했는데, 백현진이 한 배우를 극찬했다. 연기를 정말 잘한다고. 당시 그 배우가 독립 영화 쪽에선 유명했으나 상업 영화에선 인지도가 거의 없었다. 백현진은 그 배우가 반드시 연기로 유명해질 거라고 장담했고 정말 그렇게 되었다. 한예리다.
백현진 찬양 글이 되고 있는 건가? 시작했으니 끝을 보자면 나는 백현진이 언젠가 해외 유명 영화제의 카펫을 밟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연기하는 백현진을 보면,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을 보는 것 같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규격 같은 거 없고, 이렇게 할 거야 저렇게 할 거야가 있는 거 같다. 그런데 그걸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이게 내가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다. 장르로 나누자니 음악과 미술과 연기가 된 것이지, 백현진은 그냥 자기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게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니 연기가 되었고 캔버스에 그려져 있으니 미술이 되었고 사운드로 들리니 음악이 되었다. 작가가 연기를 하네, 따위의 접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일관되게 자기 작업을 해오는 과정에서 축적된 것이 있겠지. 그러니 수긍하는 것이다. 나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백현진은 한 명뿐이다.
사족이겠으나, 백현진 개인전이 6월에 열린다. 백현진이 하는 가장 얌전한 행위를 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 홍보하려고 쓴 글이 아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저 특이한 아저씨가 언제부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도대체 무엇으로 자랄지 궁금해하고 응원하는 글이다. 응원을 하건 말건 자기 길을 갈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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