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가 부활한다. 몇 번이고 날아갈 뻔했던 데이터도 무사하고, 그 옛날 폴더폰으로 충전해두었던 도토리도 지갑에 다시 넣어준단다. 무엇보다 블록체인, 메타버스, 가상현실 등 솔깃한 최신 기술들을 등에 업고 그 시절 ‘일촌’들을 만나던 재미를 되돌려주겠다니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고 기대해볼 만도 하다.
당장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앞서는 게 사실이다. 아마도 싸이월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아마 첫 문단을 읽자마자 ‘또?’라는 말이 절로 나올 거다. 싸이월드는 이미 몇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몇 번이고 부활을 꿈꿔왔다. 어떤 노력들을 해왔는지 언뜻 떠오르지 않을 만큼 그 시도들이 싸이월드를 다시 주류 소셜 미디어로 올려놓는 효과를 내지는 못했다. 지난 몇 년간 싸이월드는 서버 접속 중단과 자료 소실에 대한 우려를 반복했고, ‘싸이월드 시대의 기억’을 남겨두고 싶어 하는 세대는 자료를 백업해두며 마음을 정리했다. 또 누군가는 그 시절의 ‘흑역사’가 이제는 지워졌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 거다. 하지만 추억이라는 감성적인 가치를 넘어 인터넷 서비스의 유지, 데이터 보관, 그리고 싸이월드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단숨에 날려버리는 것은 사회적으로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그렇기에 양치기 소년처럼 반복하는 ‘이번에는 제대로 살려보겠다’는 외침에 저절로 반응하는 것이 나뿐만은 아닐 거다. 이번에는 어떻게 한다는 걸까? 앞서 시도한 것들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블로그, 모바일 등 그간 싸이월드가 변화하려는 방향은 당시에 주목받던 서비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새로운 이용자의 유입보다 십수 년 전 이 공간을 누비던 이들의 추억을 미끼로 ‘내 청춘의 기록이 잘 살아 있나’ 하는 생각으로 한두 번 접속하고 마는 일을 반복하게 할 뿐이었다.
그동안 해온 쇄신 선언에서 싸이월드는 여전히 미니홈피에 갇혀 있었다. 미니홈피가 그만큼 강력한 플랫폼이었기 때문이다. ‘싸이월드Z’로 이름까지 바꾸면서 블록체인, 메타버스, 가상현실 등 Z세대를 겨냥하는 새 서비스로 탈바꿈을 선언했지만 싸이월드는 기본적으로 미니홈피에 대한 접근을 풀어내야 한다.
아쉽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는 싸이월드가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 알 수 없다. 다만 싸이월드Z가 내세운 키워드가 우리가 기대하는 싸이월드를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만큼 걱정이 크다. 돌아오는 게 전부가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싸이월드’가 될지 몰라서다. 또 기대했던 싸이월드가 돌아온다고 해도 세상이 그걸 받아들여줄지 알 수 없다. ‘싸이월드 세대’부터 ‘Z세대’까지 모두 만족할 만한 싸이월드는 과연 뭘까?
돌아보면 싸이월드는 엄청나게 앞서간 인터넷 서비스 플랫폼이었다. 지금 우리가 모바일로 누리는 주류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추구하는 것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니홈피는 개인의 일상을 기록하는 미디어 역할을 해왔다. 막 꽃피던 디지털카메라와 ‘폰카’의 시대와 맞물려 온갖 이야기가 담겼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전 국민이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가지고 있는 수준이었는데, 그 안에는 ‘일촌’이라는 관계 기반의 연결 장치가 있다. 구독, 팔로 등의 시스템이 미니홈피에 들어 있는 셈이다. 게다가 서로 동의해야 관계가 시작되고, 콘텐츠 공유가 시작되는 아주 사적인 커뮤니케이션도 이뤄졌다. 여기에 쪽지와 PC용 메신저인 ‘네이트온’이 붙으면서 싸이월드는 지금 어느 서비스도 하지 못하는 완벽한 소셜 미디어의 형태를 완성했다. 연락이 끊어진 친구의 전화번호는 몰라도 싸이월드를 통해 만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말이다.
그 안에선 음악과 아바타 등 디지털 콘텐츠 유통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미국의 디지털 음악 환경이 애플의 아이튠즈로 시작됐다면 우리나라의 디지털 음악 문화는 싸이월드를 통해 뿌리 내렸다. 이용자들은 곡당 5백원을 내고 형체가 없는 디지털 음악을 구입했고, 음원 복제 걱정 없이 미니홈피라는 ‘플레이어’를 통해 안전하게 재생됐다. 유미, 란, 프리스타일 등 싸이월드 세계 안에서만 히트한 곡들도 많았을 만큼, 음악 플랫폼으로서의 미니홈피는 탄탄한 힘을 갖고 있었다. 아바타와 방 꾸미기 역시 유행이었다. 실제 살림을 들이는 것처럼 아낌없이 미니룸 가구를 사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잘 꾸며진 방과 그 아래에 놓인 일촌평, 근사한 배경음악과 닭살 돋는 소개글이 더해진 첫 화면은 그야말로 ‘인싸’의 지표였고, 살아 있다는 증명이었다.
이 콘텐츠 소비 규모는 당시 하루에 2억원이 넘을 정도로 엄청났다. 심지어 개별 구매가 아니라 자체 화폐인 ‘도토리’를 통해 거래가 이뤄지는 구조다. 소셜 미디어와 메시징, 콘텐츠 유통, 상거래까지 인터넷의 모든 활동이 한곳에서 일어나는 이상적인 모델이 바로 싸이월드 미니홈피였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트위터, 페이스북도 전성기 시절 싸이월드의 지배력을 넘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싸이월드를 기억하고, 또 추억하는 것이리라.
싸이월드Z가 선언한, 새롭게 나아갈 방향은 과거 싸이월드의 미덕과 연관해 유추해볼 수 있겠다. 도토리는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로, 사람과 사람의 연결은 메타버스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거창한 신기술을 내세우기만 하는 건 의미 없다. 대중이 도토리가 블록체인으로 만들어지길 싸이월드에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가상현실 기반의 메타버스는 아직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않았고, 대중적이거나 보편화된 서비스도 아니다. 오히려 개념적으로 접근하자면 가상공간 안에서 관계를 맺고, 활발히 소통하던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어쩌면 이미 세상에서 가장 발달했던 메타버스였다.
아마도 미니홈피를 모바일로 옮기는 것이 지금의 가장 큰 숙제일 것이다. 다시금 옛날의 그 미니홈피 열풍을 돌려놓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조금씩 피로도를 쌓고 있는 지금, 나만의 이야기를 담는 소소한 가상공간을 꾸미는 감성적 재미가 세대를 불문하고 먹힐 수도 있다. 특히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로 소셜 미디어에 콘텐츠를 올리는 것이 조심스러워지는 지금, 싸이월드 ‘일촌’ 시스템은 어떻게 보면 앞서간 보안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 되짚어볼수록 싸이월드는 시대를 앞서간 게 아닌가 싶다. ‘추억 보정’된 것일 수도 있지만 거의 전 국민이 쓰는 서비스가 몇 년간 말썽 없이 운영되었다는 건 새삼 대단한 일이었다.
싸이월드를 추억하는 세대는 싸이월드가 선보일 새로운 기술에 경악하기보단, 과거의 추억이 새로운 경험을 통해 되살아나길 기대할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기존 이용자뿐 아니라 싸이월드 뒤에 붙은 ‘Z’라는 꼬릿말처럼 새로운 Z세대를 만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쌓아둔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금 앞서 있는 새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 Z세대에겐 만나본 적 없을 과거, 그리고 미래. 이용자들이 경험한 문화를 바탕으로 자라온 미니홈피가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서 다시 불타오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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