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음악인’이 세상 밖으로 나와 구찌를 입고 화보를 찍었네요. 기분이 어떤가요?
‘옷이 날개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네요. 정직하게 말하자면 구찌가 비싼 브랜드라는 것 외에는 전혀 몰랐거든요. ‘이걸… 나보고 입으라고?’ 생각하며 입었는데,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정말 예뻐요.
현장에서 각선미에 대한 칭찬이 끊이질 않았어요.
하하. 오늘 입은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쇼트 팬츠예요.
은근히 자기만의 패션 철학이 있어 보이던데?
‘똥폼’이죠. 처음엔 뜨악하지만 보다 보면 정이 가는 스타일.
<싱어게인>에서 원래 지난해까지만 음악을 하고, 안 되면 접으려고 결심했다고 했었죠.
전 세상에서 제일 믿지 않는 말이 ‘난 이걸 자기만족으로 하는 거야’예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피드백을 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서른두 살까지 아무런 성과도 소득도 없이 음악을 한다는 건 자신도 지치지만 주변에도 굉장히 민폐를 끼치는 일이라 미안했죠.
접으면 뭘 하려고 했어요?
계획은 없었어요. 음악이 안 되면 이걸 해야지라고 생각한 순간 음악에 투신하지 못할 것 같아서. 불나방처럼 살아보고 안 되면 다음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자작곡 ‘무명성 지구인’에서 ‘이름이 있는데 없다고 해,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 자조해요. 그런데 ‘30호’로 시작해 벼락처럼 ‘이승윤’이란 유명 인사가 되었네요.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에요. 마이너리티에 있었던 사람이 갑자기 메이저로 왔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많이 서운해하시겠지만, ‘유명’이라는 말이 마냥 달갑고 기쁘지만은 않아요. 제가 기존 자작곡에서 말하던 것들, 대변해온 것의 반대편에 서는 것을 경계하고 싶어요.
어떤 걸 가장 경계하고 싶은가요?
제 안의 날이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쪽에 편입됐다고 해서 기존의 것을 내팽개치지 않고, 계속 경계선에 있고 싶어요. 정체성을 넓혀 나가야지, 다른 정체성이 되어버리고 싶지는 않거든요.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말이죠.
그렇죠. 다만 전 이분법 또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린 패배자고 승리자들은 나쁜 놈들이야”라고 말하는 건 매혹적이고 쉬운 방법이죠. 저는 마이너리티에 있었을 때도 애매한 캐릭터였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각적으로 하고 싶어요. 단지 제가 바라볼 수 있는 면이 하나 늘었다고 생각하면서.
인디 음악을 찾아 듣는 편인데 ‘이승윤’이라는 뮤지션의 음악은 접해본 적이 없어요. <싱어게인>의 30호가 빛난다 해서 당신의 이전 앨범들을 찾아 들어보고 놀랐죠. 의문이 들었어요. 이 가수를 왜 몰랐을까? 산업적 문제는 아닐까?
비주류 신 역시 주류 신과 동일한 구조예요. 수요층이 많고 적고의 차이일 뿐. 평론가들이 선정했다는 것, 비주류의 세계에선 가장 큰 타이틀인데 인디 음악에 권위를 부여해주시는 분들의 취향이 협소한 편인 것 같아요. 비주류에서도 비주류가 있는 거죠. 저희 음악처럼.
플랫폼의 문제도 있었네요.
사실 제가 덜 부지런했던 게 제일 커요. 음악 외적으로 자기 PR을 하지 않았어요. ‘존심’ 때문에.
소속사 찾아볼 생각은 안했어요? 인디 레이블도 꽤 많은데.
맨 처음엔 제 음악을 보내봤어요. 그런데 ‘읽지 않음’이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나중엔 제 음악에 어느 정도 입김을 발휘할 수 있는 수준이 됐을 때 소속사를 찾고 싶었죠.
어찌 됐든 결국 만났네요. 아이러니하게도 <싱어게인>이라는 주류 매체를 통해.
저 개인에겐 참 감사한 일이죠. ‘아, 내가 진짜 열심히 했더니 어쨌든 기회가 오는구나’ 여길 수 있는 부분인데, 다른 분들에게도 “너도 노력하면 될 거야”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포맷이 안 맞는 분들이 있을 것이고, 그중에서도 뛰어난, 좋은 음악을 하는 분들이 계실 테니까.
지금 제일 간절한 건 뭔가요?
전 보컬리스트나 작곡가가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로서 정체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어요. 그렇기에 제 노래를 많은 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은 열망이 있죠. <싱어게인>에선 다른 분들 노래를 빌려와서 부른 거니까요.
10년 전, 대학가요제 입상을 했었죠. 언제부터 가수를 꿈꿨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만들었더니, 만들어지더라고요. ‘와씨, 나 음악 해야겠다’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방구석에서 기타 치고 노래해서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놓고, 부끄러워서 누구한테도 안 들려주고 그랬죠.
왜 노래하고 싶었어요?
이 질문엔 답을 못 하겠어요. 다른 질문들엔 멋있는 척 답해도 이건 이상하게 못 하겠더라고요. 그냥 하고 싶었어요. 그랬던 것 같아요.
스스로 노래를 잘한다는 건 언제 느꼈어요?
<싱어게인> 나와서요. 사람들은 소위 말해 ‘배운 창법’을 좋아하잖아요. 음악 하는 친구들끼리 맨날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있어요. “크리스 마틴이 한국 오면 데뷔 못한다.” “존 레넌은 오디션 1차 탈락이다.” 제가 그분들만큼 개성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제가 노래를 잘한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단지 제 목소리를 좋아할 사람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스스로 가수라기보단 싱어송라이터로 여기다 보니, 가창력에 대해선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심사위원분들이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이제는 조금 덜 부끄럽게 여기게 됐어요.
자작곡 ‘무얼 훔치지’에서 ‘낡은 마음에다 노래는 밝은 미소를 건네와, 왜 내가 바라봐도 녹슬지 않는지’라는 대목을 듣고 느꼈어요. 아무리 응답받지 못해도 음악을 사랑해왔구나. 그 사랑은 어떻게 녹슬지 않던가요?
<싱어게인> 이전의 음악은 이런 느낌이었어요. 제가 너무 사랑하는 존재가 있는데, 맺어지지 않는 순간이 계속 이어져요. 그저 바라만 보죠. 마음을 접어야 하는데 접히지 않는 존재였어요. 제게 음악이란 꿈 이상이죠.
‘무명성 지구인’ ‘게인 주의’ 가사를 보면 이승윤이 뭘 중요하게 여기는지 느껴져요.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이름 없는 개인들, 그들의 지글거림에 계속해서 주목하죠.
그건 제가 살아온 삶이기도 하고, 제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기도 해요. 빛과 어둠, 강자와 약자, 승지와 패자라는 이분법으로 말하고 싶진 않아요. 전 뭔가를 단칼에 딱 잘라서 정의 내리거나 한마디로 퉁치는 걸 싫어하거든요. 빛 안에서도 소외되는 사람이 있고, 어둠 안에서도 소외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스테레오타입에 들어맞지 않아서요. 한두 문장으로 수렴되는 세계는 폭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문장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분들과 함께 행복하고 싶고요.
같이요?
네, 혼자 행복해서 뭐 합니까. 나중에 다 후회하던데.
‘관광지 사람들’은 동시대 예술가로서 고민이 드러나는 곡이더군요. ‘여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주인이지’ ‘벽의 여백엔 작품이, 밖의 공백엔 기념품이’라는 가사가 말하는 지점, 미술가들도 하는 고민이죠. 죽어야 값이 오르는 게 미술이잖아요. 1970년대 쿠사마 야요이도 모마 미술관 앞에서 나체 시위를 하며 “죽어 있는 사람들 그림만 저기에 걸어놓고 지금 살아 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봐주지 않는다”며 시위를 했으니까요.
소름 끼치네요. 공감해요. 해외에서 한 미술관에 갔는데, 그 앞에서 많은 화가분들이 전시된 유명한 그림을 모작하고 있더라고요. 그분들의 기분은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음악도 마찬가지고, 비단 예술이 아니더라도 세계는 죽은 언어들로 쌓여 있어요. 우리 개개인의 삶은 그것들을 지탱하면서 존재하죠. 우리가 죽은 다음에야 우리의 언어에 다음 세대가 귀를 기울일까요?
거리의 화가들이 과거의 명화를 모작하는 게 아니라, 동시대에 자기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이 주목받을 수 있는 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는 거죠?
네. 제가 있던 세계에서 싱어송라이터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았어요. 한국엔 정말 수많은 행사가 있어요. 행사에서 원하는 건 저희의 노래가 아니라 유명 가수의 신나는 노래죠. 하지만 저는 웬만해선 부르지 않았어요.
커버곡을 부르지 않던 가수가 <싱어게인>에 나온다는 것은 타협이었겠어요.
타협이란 말은 거창해서 쓰지 않았지만, 사실은 타협보다는 더 큰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었어요. 아이러니하죠. 그래서 지금 혼란스러운 겁니다.
하지만 <싱어게인>에서 커버한 곡들은 당신만의 색깔로 편곡되고 소화돼서 새로운 노래를 듣는 것 같았어요.
아이러니하지만 재미있더라고요. 조금 짜증이 날 정도로. 하하하. 가장 편곡적인 재미를 느낀 건 ‘Chitty Chitty Bang Bang’이었죠. 모든 곡을 적극적으로 편곡했지만 그 곡은 정말 산산조각 내어 재조립해 만들어냈던 무대예요.
스스로를 ‘질투가 원동력인 가수’라고 소개하기도 하죠. 가수이기 앞서 좋은 리스너기에 할 수 있는 말일 거예요. 어떤 가수들을 질투해요?
다빈치도 미켈란젤로를 질투했는데, 제가 질투를 안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저는 브릿 팝 세대예요. 비틀스부터 U2, 오아시스, 블러 같은 영국 밴드들을 무척 좋아해요. 요즘 어린 친구들은 잘 안 듣죠. 구성이 단조롭잖아요. A B A B C B 같은 진행에 악기가 추가되는 정도. 그런데 저는 그런 단조로움이 좋아요. 그 안에 지글대는 감정들, 분노가 섞여 있는 게 좋죠.
<싱어게인> 초반엔 칭찬을 낯설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오래 응답받지 못한 데서 오는 체화된 체념이었을까요?
맞아요. 체득된 체념이 분명히 있었어요. 비주류에서는 ‘주류 음악 같다’고 하고, 주류에서는 ‘완전히 비주류네’라고 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애매한 음악이었으니까. 초반 라운드에서 들었던 칭찬은 낯설어서 좋게 보셨나 보다, 라고만 여겼어요. 그래서 칭찬해주시면 무조건 반박하는 거예요. 그건 지금도 좀 그래요. 그냥 “감사합니다” 하면 되는 걸 “아니 뭐 그렇게까진 아니에요”라고 아직도 그래요. 이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재평가할 때도 오겠죠?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언젠가는 진짜 명곡, 명반을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 머릿속에는 이만한데, 보여드릴 때는 쭈뼛거리는 게…, 습관이라 그래요. 말씀하신 대로 체화된 체념 때문에. 하지만 마음속엔 좀 더 큰 게 있어요.
‘영웅 수집가’라는 곡은 제가 가장 일찍 접한 이승윤의 곡이에요. 누군가를 우상화하고 숭배하다 오점을 찾으면 부수어버리는 현 세태를 잘 반영한 노래라 생각했죠. 한 마디로 누군가를 삭제하는 ‘캔슬 컬처’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 말이 딱 맞네요. 다만 이건 시대를 불문하고 그래 왔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날 대변해줄 우상으로 만들어 과도하게 찬양하다가, 작은 흠을 발견했을 때 정말로 긍정적인 부분까지 다 부수어버리고, 대중이란 이름으로 파괴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이 폭력적일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 사람을 싫어하게 된 이유와, 이 사람이 다시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좀 다른 것인데 말이죠.
이제 이승윤도 우상화의 대상이 되었죠. 어때요? 긴장되나요?
저는 차분합니다. 우상화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제 것이 아닌 많은 요소들이 지금의 절 멋지게 포장해주고 있지만 이 포장지는 언젠가 벗겨질 것임을 알아요. 회사엔 누가 되겠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하하하.
동년배 시인들과 친해 보이더군요. 최지인 시인의 시 ‘1995년 여름’을 가사로 한 노래가 좋던데.
인천양조장 2층에서 지인이랑 그 시를 낭독하다가 펑펑 울었습니다. 꼴불견처럼. 시인들의 행사에 초대되어 시로 노래를 만들어본 적이 있어요. 그 행사를 주최한 사람이 최지인 시인이라 친해졌죠. 양안다 시인과도 가까워요.
음악이 시에 도움을 받거나 배울 점도 있나요?
너무 당연하게도 그렇습니다. 저는 시가 가장 앞선 노래라고 생각해요. 시는 가장 1차적인 음악이죠. 그 안에 리듬도, 인간도, 세계도 있고요.
당신의 SNS에서 웃은 두 문장이 있어요. ‘시카고 사람들은 씩 하고 웃는다’ ‘재즈는 곰이 부리고 돈은 아무도 못 번다’ 말맛을 살리는 문장력이던데, 글 써볼 생각은 없어요?
저는 이런 걸 아재개그로 퉁치는 것에 대해 통탄하는 사람입니다. 하하하. 시인분들 보기엔 허접하지만 종이책에 로망이 있어서 책을 써보는 게 꿈이긴 합니다.
밴드 알라리깡숑 라이브 영상을 보면 생동하는 에너지가 느껴지더라고요. 정말 신나던데요? 보컬이 카혼을 치기도 하고, 기타리스트가 보컬을 하기도 하고.
우린 밴드라기보단 음악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의 연합에 가까워요. 각자의 음악에 영향을 주고받는 진짜 음악 친구. 삶에서도 가장 중요한 친구들이죠.
이승윤은 뭘 멋지다고 생각하나요?
날이 서 있으면서, 포용도 할 줄 아는 것. 자기만의 날을 무뎌지지 않게 품고서, 많은 걸 끌어 안으며 사는 사람을 볼 때 진짜 멋지다고 생각해요. 날만 서 있지도 않고, 좋은 게 좋은 거지 넘어가지만도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티스트로서도요?
맞아요. <싱어게인>을 통해 대중에게 닿을 수 있는 경험을 했죠. 많은 분들께 닿을 수 있는 음악을 염두에 두면서, 제 시선의 날카로움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막 쑤시고 다니겠다는 건 아니에요. 날이 서 있다는 건 그 반대편도 생각한다는 뜻이니까.
이승윤은 뭘 믿나요?
전 초콜릿을 믿습니다.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라는 페르난도 페소아의 시집이 있어요. 저는 한순간의 행복을 믿어요. 지금 이 순간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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