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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가 사랑한 영웅들 PART 2

제임스 본드

영화 007 시리즈의 3대 제임스 본드와 대화를 나눴다. 007의 유산과 숙적에 대해.

UpdatedOn March 24, 2021

나의 영웅은 누구인가. 창간 15주년 특집 기사 기획안을 받고 고민했다. 기획은 에디터들이 지대한 영향을 받은 인물을 인터뷰하는 것이다. 취향도 말투도 걸음걸이조차 서로 다른 에디터들은 스스럼없이 자신만의 영웅을 꼽았고, 각 영웅의 면면에서는 그 에디터의 화보와 문체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이번 기획은 현재 <아레나> 콘텐츠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추적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에. 기사 진행이 쉽지 않았다. 에디터들은 자신들의 영웅을 영접하고자 메일과 왓츠앱, 전화와 줌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영웅들과 접선했다. 영웅들은 단번에 인터뷰를 승낙하진 않았다. 바쁜 일정으로 인터뷰가 불가능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가까스로 인터뷰에 응해 뒤늦게 답변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뒤에 이어지는 인터뷰이들의 이름을 보면 섭외에 난항을 겪은 이유가 이해될 것이다. 평소 우리가 갈망했지만 만나지 못한 인물들이다. 옷으로 낭만을 이야기하는 디자이너, 무뚝뚝한 에디터의 감정을 뒤흔든 사진가, 독일 현대 미술을 이끄는 작가, 방황하는 청춘을 그려내는 영화감독, 남극점과 북극점을 모두 정복한 최초의 인간 등 그들에겐 아직 묻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아 있다. 기사는 9명의 실존 인물과 6명의 가상 인물 인터뷰로 구성된다. PARTⅠ에는 실존 인물들과의 감도 높은 대화와 사진이 담겼다. PARTⅡ는 만날 수는 없지만 에디터들이 큰 영향을 받은, 롤모델로 삼기도 한 인물들과의 가상 인터뷰다. 자신이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자아 형성의 토대를 찾아 방황하는 이들에게 <아레나> 창간 15주년 특집 인터뷰가 나침반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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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들이 왜 당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나?
사람들은 내가 여성 편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영화에서 내가 사랑에 빠지는 여자는 한 명이다. 물론 작품에 따라 여럿을 만난 적도 있지만 보통 한 여자만 사랑했다. 작품마다 새로운 여자와 관계를 맺었는데, 시리즈가 길어지다 보니 관계 맺은 여자들이 늘었을 뿐이다. 그리고 마음 준 여자들은 대부분 죽었다. 이번에는 안 죽을 것 같지만 어김없이 죽는다.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른다. 나는 순정파다. 사별한 아내를 잊지 못하고, 첫사랑을 영원히 기억하는 남자다.

제임스 본드는 정 많은 첩보원인 것 같다. 적에게도 정을 느낀 적이 있을까?
<언리미티드>의 엘렉트라에게 정을 느낀 건 사실이다. 그녀는 매력적인 사람이지만 세상에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가장 오랫동안 맞서온 블로펠드도 잊지 못하는 적이다. 그는 똑똑하고, 신비로우며, 매력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사라져야 할 인물이었다. 그는 국제 범죄 조직 스펙터의 수장으로 나와는 질긴 인연이었다. 첫 작품인 <살인번호>부터 <위기일발> <썬더볼 작전> <두 번 산다> 등 내 경력의 절반은 스펙터의 야욕을 저지하는 일로 채워졌다.

오랜 숙적인데 덧없이 보낸 거 아닌가. 그것도 <유어 아이스 온리> 오프닝에서 헬기에 그의 휠체어를 매달아 떨어뜨렸다. 영화 시작 5분 만에 죽인 건 너무하지 않나?
정확히는 6분 만이다. 그는 무선으로 내가 탑승한 헬기를 조종했고, 나를 죽이려 들었다. 그리고 <유어 아이스 온리>는 열두 번째 007 시리즈다. 그의 악행만 12편 보여줬으니, 더 설명할 필요 없다고 본다. 충분한 전관예우였다.

마티니를 젓지 않고 흔드는 이유는 뭔가?
부드럽고 정중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비밀 첩보 요원은 항상 긴장된 상태를 유지한다. 공격적인 모습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부드러운 것을 마시면 여유가 생긴다. 시가는 독하지만 좋은 시가는 목 넘김이 부드럽다. 보드카 마티니도 씁쓸하고 독하지만 흔들어 마시면 맛이 더 부드럽고 순해진다.

당신이 즐기는 스포츠는 뭔가? 영국인이라 축구인가?
자신 있는 스포츠는 스키다. <뷰 투 어 킬>과 <유어 아이스 온리>를 보았다면 내가 스키 외에 스노모빌과 보드 실력도 탁월함을 알 것이다. 설원에서 무언가를 탈 때는 주로 추격하거나 추격당하는 경우였다. 반면 수영할 때는 대체로 평화롭다. 호텔 수영장이나 바다에서 종종 수영을 즐기는데, 수영복을 입었을 때만큼은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

자금 출처도 궁금하다. 제임스 본드는 늘 비싼 수트와 시계를 착용한다. 집 한 채 값 하는 스포츠카를 타고, 오성급 호텔에 묵는다.
스포츠카는 MI6에서 개발한 차량이다. 회사 차라 할 수 있지. 출장 숙박은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다. 작전에 필요한 숙박지에 은거한다. 수트와 시계는 내 자금으로 충당할 때도 있지만, 직업상 필요한 품목이라 별도의 신용카드로 구입한다. 현장 요원은 임무 수행에 필요한 비용을 처리할 수 있는 신용카드가 발급된다.

자동차를 떼고 제임스 본드를 이야기할 수 없다. 당신에게 최고의 본드카는 무엇이었나?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애스턴 마틴 DB5를 애정한다. 애스턴 마틴 DB5는 제임스 본드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한 본드카다. 클래식한 디자인에 기발한 무기들이 숨어 있다. 머신건이나 연막탄 등 Q의 아이디어는 참으로 대단하다. 매번 놀란다. 로저 무어의 본드카 로터스 에스프리도 빼놓을 수 없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로터스 에스프리의 모습은 본드카를 상징하는 이미지다. 본드카가 못 가는 곳은 없다.

Q가 만든 본드카 외에 만족스러웠던 차도 있나?
물론이다. 가장 든든했던 차는 <골든 아이>의 장갑차 T-55M5다. 장갑차를 몰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추격전을 벌였는데, 느리지만 답답하지 않았다. 담장이나 건물을 통과할 수 있거든.

<문레이커>에서는 우주에서 작전을 펼쳤다. 황당하지 않았나?
때는 1979년이었고, <스타워즈>가 스페이스 오페라 신드롬을 일으키던 시기다. 우주에서 세계 정복의 야욕을 실현한 악당이 등장했고, 나의 임무는 그를 저지하는 것이었다. 제임스 본드라고 해서 우주에 나가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굴욕적인 순간도 겪게 마련이다. 지우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
잊고 싶은 기억을 말해보라고? 너무하는군. <카지노 로얄>에서 벌거벗고 고문받았던 것보다 <옥터퍼시>에서 광대 분장한 게 더 치욕적이었다. <옥터퍼시>는 화려한 영화였다. 분장도 화려했고.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본드라니.

제이슨 본, 잭 바우어 등 오늘날 첩보원 이미지는 007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임스 본드가 첩보원 이미지의 전형을 만든 것이다. 제임스 본드는 스스로 이미지를 탈피할 필요성을 느낄까?
아니다. 제임스 본드는 60년의 역사를 지닌 캐릭터다. 제임스 본드는 전통이다. 다른 영화의 첩보원들이 나를 따라 한다면 그들이 바뀌어야지. 내가 바뀔 이유는 없다. 007을 연기한 배우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순 있다. 로저 무어와 대니얼 크레이그는 얼마나 다른가. 로저 무어의 액션은 대니얼 크레이그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젠틀하고, 유연하며, 강인하다. 그것이 007의 본질이고, 이어져야 할 유산이다. 시대는 변해도 제임스 본드는 변함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제임스 본드라는 전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의 몫이다.

제임스 본드는 모든 임무를 완수했다. 실패를 모르는 엘리트 장교다. 그런 당신에게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을까?
<007과 여왕>에서 트레이시와의 결혼은 곧 비극으로 끝났다. 돌아갈 수 있다면 결혼식으로, 아니 그보다 트레이시를 만나기 전 해변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럼 뼈아픈 슬픔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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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ILLUSTRATION 두원

202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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