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버그 <Ponte City> Patrick Waterhouse, Mikhael Subotzky
여전히 ‘폰테 시티’는 요하네스버그의 스카이라인을 지배한다. 도시의 고지대인 베이라 지역에 위치한 이 아파트는 1975년 54층 규모로 지어졌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절정에 달한 시절이다. 남아공을 지배하던 백인 상류층을 위한 호화로운 거주 시설이었다. 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된 1990년 이후 백인들은 도망치듯 떠났고, 빈집은 이주민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한 이들, 전쟁을 피해 온 가난한 이민자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수도도 전기도 엘리베이터도 없는 폰테 시티의 빈집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슬럼화됐다. 도시는 붕괴했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는 랜드마크는 매춘, 마약, 범죄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재개발 움직임이 일었다. 대부분의 거주민이 쫓겨났지만 개발은 허투루 돌아갔고, 이듬해 2008년 비디오그래퍼 미카엘 수보츠키와 작가 패트릭 워터하우스는 폰테 시티에 남아 있는 주민들의 초상화를 촬영했다. 폰테 시티는 미디어에선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슬럼가로 다뤄졌지만 거주민의 생활은 다른 지역의 주민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폰테 시티의 폭력과 범죄는 아파트가 아닌 TV 속에 있었다. 책에서는 폰테 시티 주민들의 일상과 아파트에서 바라본 요하네스버그 전경, 개발 흔적이 무덤처럼 중정에 쌓인 폰테 시티를 관찰한다. 지배자들의 꿈, 미디어에겐 디스토피아, 피난민에게는 등불인 폰테 시티는 여전히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다.
런던 <Shoreditch wild life> Dougie Wallace
이스트런던은 런던에서 가장 이상한 곳이다. 그중에서도 쇼디치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해괴한 지역이다. 더럽고, 재밌고, 활기차고, 괴팍하고, 자유롭다. 사진가 두기 월레스는 쇼디치의 기묘한 생명력을 좇는다. 가게 주인의 놀란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라비티를 그리는 남자, 버려진 기내용 캐리어에서 자는 개, 헬멧을 쓴 늙은 노점상, 경찰을 향해 아랫도리를 벗고 서 있는 사람. 쇼디치의 거리는 혼란하다. 두기 월레스는 납득할 수도 추측할 수도 없는 것들을 포착한다. 그는 쇼디치로 이사하기 전까진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책에 담긴 혼돈의 쇼디치는 런던의 야생성이다.
키예프 <Kachalka. Muscle Beach> Kiril Golovchenko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는 머슬 비치가 있다. 말 그대로 근육을 키우는 해변이다. 카찰카라고 불린다. 규모는 3천 평에 달하며 녹슨 아령과 강철로 만든 운동기구들이 해변을 점거하고 있다. 운동기구들은 누가 훔칠까 두꺼운 체인으로 묶여 있다. 왜 운동기구를 모두 파란색으로 칠했는지는 알 수 없다. 바다가 푸르러서? 그럴 수도 있다. 카찰카는 1970년대 초 조성됐다. 역도 기구를 놓기 시작한 것이 점차 종류가 늘어났다. 많은 고철이 기증되었다. 군용 탱크의 부품, 거대한 기어, 크레인 훅, 파이프 같은 것들이다. 고철들을 용접해 기괴한 운동기구를 만들었다. 실패한 성형수술처럼 보이는데, 무엇이 됐든 간에 파란색을 칠하면 완성이다. 조잡하지만 무거우니 됐다. 운동기구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서지기 때문이다. 현대식 체육관도 늘어나고 있지만 야만적인 카찰카를 찾는 사람은 줄지 않았다. 무료로 하루 종일 운영되기 때문이다. 카찰카에는 사회적 계급이 없다. 아이, 노인, 여성, 마피아, 유명 운동선수, 보디가드 등 누구나 와서 근육을 키운다. 키예프에서 근육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뉴욕 <Subway> Bruce Davidson
1980년대 초 뉴욕 서브웨이 풍경이다. 열차는 그라비티로 도색되었고, 낙서와 낙서 사이에 머물러 있다. 스프레이 페인트와 매직 마커로 쓴 낙서들은 사실 갱단의 태그다. 갱단들의 언어는 그림처럼 보이고, 죽고 사라진 갱의 이름 위에 또 다른 이름을, 숫자를 덧씌운다. 1980년대 뉴욕 서브웨이는 저승으로 가는 카론의 배와 같았다. 사진가 브루스 데이비드슨은 그라비티의 주인들, 갱단을 주시하면서도 이따금 서브웨이 탑승객들을 바라본다. 카메라를 든 저승사자 같기도 하다. 그는 창밖으로 코니 아일랜드의 원더 휠을 바라보는 세 아이들이나 눈을 잃은 열차의 악사들, 카메라를 의식하는 사람들, 연인, 형제, 이민자, 체포하길 기다리는 경찰견, 체포된 갱, 죽음에 근접한 사람을 사진에 담았다. 책에 담긴 사진들은 서사가 명확하다. 인물과 배경의 절묘한 배치는 그가 얼마나 가까이 접근하고, 많이 셔터를 눌렀는지 짐작하게 한다.
더블린 <Made IN Dublin> Eamonn Doyle
사진가 이몬 도일은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집 근처 거리를 배회한다. 더블린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멀리 나가거나 특별한 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가 북부 더블린에서 보고 느끼고, 겪는 일상을 찍는다. 책은 ‘I’ ‘ON’ ‘END’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I’에서 그는 노인들을 내려다본다. 구부정한 자세로 이동하는 노인의 뒷모습이나 바닥을 향하는 노인들의 시선을 따른다. 노인의 뒷모습처럼 사진은 고요하다. ‘ON’에서는 올려다본다. 거리를 지나는 행인은 대부분 이민자들이며, 명암의 대비를 한층 강조한 흑백으로 촬영해 인물들은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비장함과 힘이 교차된다. ‘END’에선 그가 일상에서 겪는 사건들을 담았다. 다른 행인을 피하고, 걸으며 보게 되는 앞사람의 팔이나 옷자락 등이다. 북부 더블린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닥을 보며 걷는다. 그렇게 걷는 것이 북부 더블린의 삶인 것처럼.
도쿄 <TO:KY:OO> Liam Wong
사진가 리암 웡은 스코틀랜드인이다. 도쿄에 간 것은 게임 관련 업무 때문이었다. 이후 다시 도쿄를 방문한 2015년 12월, 그는 카메라를 들고 자신만의 도쿄를 보았다. 간판으로 가득한 유흥가 골목이지만 고요하고, 고인 물웅덩이에 반영된 번화가의 네온사인은 조용하며, 투명한 우산을 쓴 사람들의 실루엣에선 어떠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리들리 스콧의<블레이드 러너> 속 무명의 행인들처럼 보인다. 빗물 웅덩이에 비친 도시의 조명은 가스파 노에의<엔터 더 보이드>를 닮았다. 나아가 발전소의 풍경, 도쿄 중심으로 폭발하는 듯한 거대한 에너지의 모습은 오토모 가츠히로의 애니메이션<아키라>의 일부 같다. 현실에 없는 색감과 마젠타빛 도시의 이미지는 게임처럼 느껴진다. 리암 웡의 사진들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촬영 이후 후반 작업에 더 많은 공을 들였음이 짐작된다. 그는 자신의 세계관에 비추어 도쿄를 그렸다. 그의 도쿄는 리들리 스콧과 가스파 노에, 오토모 가츠히로의 세계와 교차하며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원형을 자처한다. 그래서인지 책에 담긴 도쿄의 이미지는 익숙하고도 낯설다.
펜실베이니아 <American in a Trance> Niko J. Kallianiotis
흥망성쇠가 끝난 뒤에 무엇이 남을까. 미국이 제조업으로 흥하던 시절 러스트벨트는 미국 경제를 견인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펜실베이니아는 미국 제조업을 이끄는 축 중 하나였다. 뉴욕과 가까운 지리적인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제조업은 쇠락했고, 러스트벨트는 녹슨 채로 남았다. 간판도 광고도 없는 건물, 부서진 폐공장, 텅 빈 상점, 황량하고 으스스한 도시를 걷는 사람만이 흥망성쇠 이후 남은 도시의 조각들이다. 제조업을 부흥시키겠다고 주장하는 공화당의 목소리만이 도시를 울린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성조기가 내걸리지만 사람들은 각기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사진가는 빛바랜 유산만이 남은 러스트벨트의 풍경을 모은다. 도시에는 결말이 없다. 책은 해피엔딩 이후 세월이 흐른 뒤 변화한 도시의 지금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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