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MZ 세대라 불리는 이들에게 디지털 디바이스는 한 몸처럼 익숙하다. 그들은 전혀 몰랐던 과거의 유산을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해 습득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는 2000년 국내 개봉되어 신드롬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하고 남을 시간이 흘렀지만 이 영화는 청춘에게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타이틀의 의미가 부여하는 진정성 때문일까? 각설하고 개봉 20주년을 맞은 왕가위의 철 지난 영화는 우리 시대의 소비 주축으로 자리한 새로운 세대에게 ‘뉴트로’ 트렌드와 맞물려 다시금 호명되었다. 이와 동시에 그의 또 다른 영화 <아비정전> <해피 투게더> 등도 마찬가지다. 불혹을 넘어선 에디터와 같은 세대가 열광했던 작가가 디지털 기기를 통해 다시금 새로운 세대의 작가로 부활한 셈이다. 청춘은 디지털 기기를 통해 작품을 재생하고, 블루투스 기기를 통해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MZ 세대가 이런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듣는 방식은 남다르다. 물론 디지털 기기의 스트리밍 음원이 대세긴 하지만 최근 들어 힙하다고 받아들여지는 트렌드는 당연히 바이닐 레코드다. 속칭 LP라 불리는 구세대적 유물이 음악 산업을 이끄는 새로운 미디어로 다시금 떠올랐고, MZ 세대는 이를 패셔너블한 액세서리로 받아들이며 열광하고 있다. 그러니까 완전한 디지털 디바이스로 이미지를 즐기고, 아날로그적 플레이어로 사운드를 만끽한다는 말. 이렇게 <화양연화>를 최근 다시 보았다. 극 중 양조위는 꽤 묵직한 끽연가로 등장한다. 당시의 정서를 떠올려보면 그 푸르스름한 연기가 필름에 담겼을 때 나 역시 담배 한 개비를 찾았던 것 같다. 왜 그런 감흥을 느낀 적 있지 않던가? 시대는 바뀌었고 그 역시 레트로적이며 아날로그적 단상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제는 그조차 전자 기기로 전환되어가는 추세다. 지금 나는 <화양연화> OST 바이닐 레코드를 걸어두고, 가장 유명한 연주곡 ‘Yumeji’s Theme’를 듣고 있다. 궐련형 전자담배 한 모금과 함께 말이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