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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K-팝은 무엇으로 사는가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판매할 수 있는 것엔 어떤 것이 있을까? 연예인의 본업과 주 수익이 음악, 공연, 드라마, 영화, 예능 출연 그리고 광고라 한다면, 팬들의 절대적인 사랑으로 먹고사는 아이돌은 태생부터 고전적인 팬 사인회, 팬 미팅 등 팬 서비스라는 의무가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이 소통은 점점 더 내밀해지고, 플랫폼마저 다각화되어 아이들과 팬의 일대일(처럼 보이지만 아이돌에겐 일대다인) SNS 창구인 버블, 시도 때도 없이 켤 수 있는 브이라이브 등 새로운 수익 창출원이 아이돌 산업에서 빠져선 안 될 요소로 떠올랐다. 소통을 얼마나 잘하는지가 ‘아이돌력’으로 가늠되는 시대, 지금 K-팝 산업은 무엇으로 사는가?

UpdatedOn February 04, 2021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한겨울 아침, ‘춥다’ 소리가 나오자마자 휴대폰 메시지 알람이 울린다. “오늘 엄청 추워요, 옷 잘 챙겨 입고 나가!” 슬슬 배가 고파지는 저녁 시간, 오늘은 뭘 먹을까 생각하는 순간 또다시 휴대폰이 울린다. “오늘 저메추(저녁 메뉴 추천)는 쌀국수!”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익힌 인공지능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놀랍게도 액정 뒤에 사람이 있다. 그것도 ‘최애’ 아이돌이다. SM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팬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리슨의 ‘디어 유 버블’ 서비스 이야기다.

‘최애와 나만의 프라이빗 메시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서비스는 월 이용료 4천5백원을 내면 소속 아티스트 가운데 한 사람을 구독해 대화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소통은 일방적이다. 카카오톡과 유사하게 만들어진 대화창은 최애와 내가 일대일 대화를 하는 것처럼 구현되어 있지만, 사실 아티스트가 보낼 수 있는 건 일방적인 형태의 전체 메시지뿐이다. 처음에는 동방신기, 소녀시대, 엑소, 레드벨벳, NCT 등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들만 입점했지만, 2021년 1월 현재 JYP엔터테인먼트와 FNC 엔터테인먼트,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까지 합류해 라인업 폭을 넓혔다. SM 엔터테인먼트는 해당 서비스로 2020년 2분기에만 42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애플리케이션은 10월 기준 50만 건 이상 다운로드되었다.

팬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구독화해 비즈니스로 만든 건 버블이 처음은 아니다. 아이즈원은 2019년 1월 ‘아이즈원 프라이빗 메일’ 서비스를 출시했다. 해당 서비스는 일대일 대화가 아닌 뉴스레터 형식으로 가수가 직접 쓴 글과 사진을 메일로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조금 더 내밀한 소통을 시도하는 서비스도 있다. 2020년 6월 론칭한 ‘포켓돌스’는 앞서 언급한 서비스들이 제공하는 기본적인 소통 외에도 아티스트가 팬에게 랜덤으로 일대일 대화를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다만 구독료만 내면 아티스트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무료인 타 서비스와 달리 한 번 답장을 보내는 데 약 2천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유사 서비스의 한 달 구독료가 평균 3천~4천원대에 형성된 걸 생각하면 단일 메시지 단가가 꽤 높은 편이다.

엔씨소프트가 ‘아티스트와 팬이 만나는 새로운 우주의 시작’을 테마로 만든 K-팝 엔터테인먼트 애플리케이션 유니버스도 2021년 주목할 만한 새로운 서비스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아이즈원, 몬스타엑스, 강다니엘, (여자)아이들, 에이티즈 등 현재 K-팝 신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들이 다수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해당 그룹의 팬들은 물론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솔직히 말해 이러한 분위기가 낯설진 않다. K-팝 신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장르보다 팬덤의 의미와 소중함을 잘 아는 것은 물론 그들과 함께 하는 자신들만의 확고한 생태계를 만들어온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만큼 아티스트와 팬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조성하는 데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팬클럽 회원 한정 메시지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었던 전화 사서함이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아티스트와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로 시행 초기 큰 화제를 모았던 유에프오 타운이 있었다. 팬들과 함께하는 실시간 영상 소통의 대표 주자가 된 네이버의 브이라이브는 K-팝을 좋아하는 국내외 팬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대표적인 소통 서비스다. 숙소, 대기실, 스케줄 이동 중 언제 어디서나 영상을 통해 팬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열었던 브이라이브는 이후 애플리케이션 내 유료 구독 서비스인 채널플러스나 팬쉽을 통해 아이돌 구독 모델의 초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중요한 건 팬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그로 인해 형성되는 유대감이다. 여기에 2010년대 들어 급속하게 성장하기 시작한 SNS의 발달이 기름을 부었다. SNS는 창작자와 향유자 사이의 거리를 급격히 가깝게 만들었고, K-팝 역시 그 커다란 흐름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젠 한국 대중음악사를 이야기할 때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룹 방탄소년단의 성공 비결 가운데 SNS를 통한 끊임없는 소통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 업계 관계자와 팬들은 이제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2020년 전 세계를 온통 뒤덮은 코로나19의 영향도 컸다. 공연에서 팬 사인회, 팬 미팅까지 팬들과 직접 만나 사랑을 주고받고 시너지를 내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던 신에서 아티스트와 팬이 물리적으로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채널이 원천적으로 봉쇄됐다. 비대면으로 열리는 온라인 콘서트나 팬 미팅, 영상통화 팬 사인회 등 다각도의 아이디어들이 등장했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나를 선택해준 이들과 보다 개인적이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플랫폼이었다.

이러한 최근의 업계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건 결국 이 모든 것이 아티스트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아이돌은 춤과 노래에만 집중해서는 인기를 얻기 어렵다. 연습과 녹음, 앨범과 방송 준비를 하는 틈틈이 트위터로 셀카를 올리고 연습실에서 브이앱을 켜야 했던 아이돌은, 이제 자신을 구독한 이들에게 메시지로 자신의 일상을 쉼 없이 알리고 말을 걸어야 한다. 자주 메시지를 보내며 소통하는 아이돌을 ‘효자’라 칭하며 소통을 일종의 ‘아이돌력’으로 치환해 부르는 팬덤 풍조도 강해졌다.

점점 높아져가는 감정노동 요구에 더해, 팬이라는 명목하에 가해질 수 있는, 언어 폭력에 노출된 환경도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대부분의 일대일 서비스는 특정 언어 필터링이나 직원 모니터링을 통해 아티스트에게 부적절한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을 막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완벽히 원천 차단되는지는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시대가 그것을 원하고, 시국마저 변화의 흐름에 채찍질을 하고 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운영 중인 자체 플랫폼 위버스는 그런 의미에서 향후 움직임을 다각도로 주목할 가치가 있는 서비스다. 팬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생태계를 지향하는 위버스의 가장 큰 강점은 누구보다 높은 충성도를 자랑하는, 무려 1천5백만 명이 넘는 가입자 수다. 자사 아티스트인 방탄소년단은 물론 씨엘, 선미, 드림캐쳐, 그레이시 에이브럼스 등 국내외를 막론한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를 입점한 서비스는 기본적인 팬 커뮤니티 기능은 물론, 동영상 송출 플랫폼에서 자체 미디어까지 운영하며 다방면에서 영역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춤과 노래, 무대 위와 아래, 빛나는 스타와 친숙한 소통을 넘어 내가 사랑하는 것이 나의 세상 그 자체가 되어버린 세계. 과연 미래의 K-팝은 무엇을 팔고, 우린 무엇에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될까?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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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예지
WORDS 김윤하(음악 칼럼니스트)

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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