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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만달로리안>이 포착한 <스타워즈>의 정수

<스타워즈> 속에 갇혀 있던 만달로리안 종족 이야기가 <더 만달로리안>으로 세상에 나왔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선보인 <더 만달로리안>의 흥행에는 ‘베이비 요다’도 한몫했지만 미국 영화 산업의 역할도 컸다. 만달로리안 이야기 속에는 차별이 없다. 다양한 문화와 관념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공통점을 갖고 맞닿아 있다. 단지 연결하는 것, 그게 <더 만달로리안>이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국내 팬을 보유한 이유이며 <스타워즈>를 훌쩍 뛰어넘은 비법이다.

UpdatedOn February 08, 2021

OTT 플랫폼 디즈니 플러스가 제작한 <더 만달로리안>을 심드렁하게 보고 있었다. <스타워즈> 세계관을 배경으로 전투 종족 만달로리안이자 현상금 사냥꾼인 딘 자린이 에피소드마다 의뢰를 완수하며, 속사정을 굳이 알려고 들지 않는 냉정한 태도로 고객도 만족시키는 이야기. 그러다 우연히 자신이 몸담던 바닥에 외계 종족 아기인 그로구가 끼어든 것을 계기로 심경에 변화를 맞는다는 전형적인 갱생 활극 드라마다. 재미는 있지만 뇌리에 꽂힐 정도로 강렬한 구석은 없었다. 그러다 시즌 2의 네 번째 에피소드 ‘The Siege’에 이르러 마침내 드라마가 개인적인 관심권에 들어왔다.

본편에서 비중 있는 조역으로 출연한 칼 웨더스(<록키> 시리즈의 아폴로 크리드!)가 연출도 겸한 이 에피소드에서 딘 자린은 마침내 다른 만달로리안 동족을 만난다. 하지만 반가움은 커녕 실랑이가 벌어진다. 다른 만달로리안들이 살아 있는 존재 앞에서 절대 헬멧을 벗지 않는다는 종족의 신조를 배반하고 딘 자린에게 얼굴을 드러낸 탓이다. 그러나 어디서 얼굴을 보여주냐며 유교적 감성이 진하게 농축된 딘 자린의 훈계 앞에 그들은 너야말로 극단주의 분파라서 신조에 집착하는 것 아니냐고 응수한다. 생각해보면 딘 자린도 헬멧만 거의 벗지 않았을 뿐, 시즌 1에서부터 다른 종족에게 꾸준히 ‘만달로리안치고는 특이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로구와의 만남이 일으킨 변화다. 그러나 헬멧 착용 여부는 정체성 문제로 여기고 격한 반응을 보인 셈이다. 해당 에피소드 속 대화 장면이 흥미로운 이유다. 딘 자린이라는 캐릭터의 헬멧 논쟁을 통해 <더 만달로리안> 제작진이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어느 선에서 새롭게 다뤄야 하는지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스타워즈>의 창조주인 조지 루카스 감독은 1970년대 초, 영화의 연출 동기에 관해 이렇게 언급했다. “어린이를 위한 영화를 제작하는 일이니 재미있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기회이기도 하다.” 우주가 배경이라 필연적으로 제작비가 많이 드는 프로젝트임을 생각해보면 동기가 지나치게 소박하다. 루카스의 친구들과 영화사 관계자들도 의문을 표했다. 어째서 몇십 년 전에나 유행한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를 연출하려 하지? 주변에 소재가 널려 있는데? 70년대 미국 사회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는 의문이다. <스타워즈> 제작을 다룬 걸작 다큐 <꿈의 제국>에서 정의된 당시 미국 사회는 역사상 손에 꼽을 만한 격동의 시대였다. 소련과 경쟁하려고 추진했던 우주 개발은 진행 동력을 잃었고 물가와 원유 가격이 폭등했다. 여성과 흑인이 적극적으로 인권운동을 펼쳤으며,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 전쟁의 후폭풍으로 미국 국민은 갈라지고 있었다. 다양하고 심각한 사건들이 실시간으로 펼쳐진 셈이다. ‘꿈의 공장’ 할리우드조차 상상력을 가미한 세계에 죽음과 묵시록적 정서를 부여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영향을 받은 조지 루카스는 당대 사회의 문제적 풍경을 개별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문화역사가 레오 브로디에 따르면, 루카스는 ‘각기 다른 문화 속 신화들의 관련성을 찾고 공통점이 없었던 다양한 문화를 하나로 연결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여러 문화와 인종으로 구성된 국가가 미국이었지만, 그들의 모든 가치관을 현실적인 화법으로 다루려면 그때나 지금이나 감수해야 할 부분이 많다. 루카스가 구상했던 ‘연결’은 대륙을 넘어 광대한 우주를 통해서만 시도하고 성립할 수 있었다. 그가 활기찬 모험이 가득하고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던 어린이, 스페이스 오페라 등에 애착을 가졌던 이유는 자신의 구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키워드였기 때문이다. 신화, 미국과 이탈리아 서부극, 제2차 세계대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지다이게키(시대극) 영화 같은 동서양 문화가 제한과 차별 없이 섞일 수 있는 분야였다. 이야기 속 다양한 종족을 통해 어떤 문화든 존중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인종과 성별, 장애에 제한받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하며 스스로를 임파워의 대상으로 자각할 수 있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제작됐던 일명 ‘시퀄 3부작’은 원작 프랜차이즈의 이런 부분들에 대해 피상적이었다. 타이 파이터 같은 전투 기체, 라이트 세이버 결투 정도만 가져와 천편일률적으로 활용하기만 했다. 정치적 올바름조차 매력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채 이데올로기처럼 다뤘으니 외면받을 일만 남았던 셈이다.

<더 만달로리안>은 <스타워즈>가 지녔던 정신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시퀄 3부작과 달리, 살아남았다. 훗날 조지 루카스가 작가적 의도를 내세우며 컴퓨터 그래픽으로 무분별하게 수정했던 원작의 정취를 복원하기까지 했다. 드라마에서 서부극 스타일로 재현된 냉혈한 액션 장면들이 그것이다. 그로구를 만나며 조금씩 따뜻해지지만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헬멧 벗기에는 쉽게 응하지 않는 딘 자린처럼, 이 드라마는 시대에 발맞춰야 하는 것과 지켜야 할 것에 관해 명확한 기준을 견지하고 있다. 그로구의 외형에서 <그렘린>의 기즈모가 연상되거나 두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선 <E.T.>의 영향이 엿보이는 등 단순히 복고적 열풍에 의존하려는 듯한 지점도 있다. 그러나 과거를 모르면 미래도 없는 법이다. 한국에서 영화를 보는 리뷰어로서 미국 영화 산업에서 부러운 부분이 있다. 바로 방대한 아카이빙과 탄탄한 팬덤을 이용해 끊임없이 과거와 소통하는 것이다. <더 만달로리안>이 제작된 트럼프 정부 시기의 미국은 지속적으로 억눌렸던 무언가가 폭발해왔다. 덕분에 70년대와 비슷한 혼란이 지금도 계속되며, 영화 산업도 이념과 정치적 입장에만 몰두하는 중이다. 드라마가 끝까지 화제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 <스타워즈>처럼 모두를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정치 사회적으로 대립 중이다.

그러나 <더 만달로리안>에서는 ‘총체적인 영화적 감흥’ 아래 하나로 연결된다. 광대한 우주에서 보안관으로 활동하는 근육질 여성, 도시의 통치자가 되어 범죄를 없애려는 흑인을 보며 자연스럽게 우러러보고 꿈꿀 수 있다. <더 만달로리안>은 과거의 우리는 이 정도까지 표현하고 꿈꿀 수 있는 역량을 지녔고 지금은 그보다 더 나아질 수 있거나, 나아져야 한다고. 그것이 바로 <스타워즈>를 보고 자란 사람들이 표현해야 할 일이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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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EDITOR 정소진
WORDS 홍준호(영화 리뷰어)

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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