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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클래식

한 해의 첫날, 새해 첫 클래식을 듣는다. 음악을 닮은 꽃과 함께.

UpdatedOn January 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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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RORA ORCHESTRA MUSIC OF THE SPHERES

동시대의 오케스트라, 오로라 오케스트라를 소개하기 위해선 <타임스>를 인용하는 것이 좋겠다. “오로라는 지난 10년간 영국 클래식 음악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가장 상쾌한 숨결이다.” 어느 분야든 새로운 물결은 필요한 법. 영국 실내악단인 오로라 오케스트라는 고전적인 오케스트라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 뮤지션 뷔욕까지 다양한 협업과 시도를 해왔다. 이번 앨범은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의 데뷔 앨범으로,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Jupiter’로 웅장하게 시작해 막스 리히터의 환희에 찬 ‘Journey’를 거쳐, 16세기 류트 연주자 존 다울런드의 ‘And Time stands stil’, 토머스 아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Concentric Paths’,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의 ‘Life on Mars’까지, 그야말로 폭넓은(그러나 영국적인)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과감한 재해석도, 두 개의 구가 부딪힐 듯 공존하는 커버 아트도 아름답다. 클래식이라는 말과 대중이라는 말이 상충한다고 느껴질 때 한번쯤 들어보길 권하고 싶은 앨범. 신년엔 신보를 듣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새로운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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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PENTIER ORPHEE AUX ENFERS

뒤돌아보지 말 것. 오르페우스가 지옥에 내려가 에우리디케를 데려올 때 들은 당부다. 그러나 금기는 깨어지고, 손에 잡혔던 사랑은 다시 지옥으로 사라진다. 몬테베르디, 글루크, 오펜바흐까지 많은 이들이 이 극적인 서사에 사로잡혀 오르페우스에 대한 오페라를 작곡했다. 샤르팡티에의 실내 오페라 <지옥으로 간 오르페오>도 그중 하나다. 오르페우스 신화를 그린 어느 작품보다 서정적이며, 샤르팡티에 특유의 피어오르는 듯한 음률이 저승으로 떠나는 오르페우스를 안개처럼 감싼다. 이 오페라는 2막까지 만들어졌기에 이야기는 명왕을 설득해 연인과 재회하는 장면까지 그려진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샤르팡티에는 궁정의 총애를 받던 장 바티스트 룰리의 그늘에 가려 예산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부터 이 오페라를 추천하는 까닭은 카운터 테너 반 메흘렌의 가창과 기악 앙상블이 우수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음악이 비극 직전의 승리에서 멈추었기 때문이고, 작별해야만 나아갈 수 있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새해 아침에 <지옥으로 간 오르페오>를 듣는다. 이번엔 돌아보지 말 것. 지나간 과오도 후회도 모두에게 무거웠을 지난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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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HMS SYMPHONY NO.3 & TRAGIC OVERTURE

새해 첫날에 브람스 교향곡을 듣는 건 퍽 타당하게 느껴진다. 균형 있고, 과하거나 덜하지 않으며, 정결하면서도 다채로워 귀가 편하다. 더군다나 브람스가 비스바덴에서 휴양할 때 쓴 3번이라면 숲을 거닐듯 평화롭다. 활기찬 관악으로 시작해, F-A플랫-F 화음으로 이어진다. 기쁨과 슬픔, 격동과 고요, 알레그로와 안단테가 밀물과 썰물처럼 반복되며 저울의 중심을 잡듯 마음을 조율한다.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라면 더할 나위 없다. 브람스의 오랜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은 F-A-E(Frei aber Einsam),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를 인생의 신조로 삼았는데, 브람스는 이를 변형한 F-A-F(Frei aber Froh), ‘자유롭게 그러나 즐겁게’를 이 교향곡의 첫 주제로 삼았다. 이 한정판 LP의 특별한 점은 마지막 트랙에 ‘비극적 서곡’을 함께 담아냈다는 것이다. “고독한 마음을 고백하며 비극적 서곡을 쓴다”고 서신을 쓴 힘든 시기에 작곡된 이 서곡은 제목과는 달리 힘이 넘친다. 파도처럼 몰아치는 코데타 속에선 고양감과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비극은 슬픔으로 끝나지 않고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마침내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LP를 턴테이블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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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 MOTETS

성가가 찬란히 쏟아진다. 엎지른 물이나 들이치는 빛처럼. 무신론자도 신을 믿고 싶어질 만큼 아름다운 곡이다. 바흐는 신을 찬미하는 신앙심으로 음악을 썼지만 그의 곡들은 때로는 과학에 가깝고 때로는 신앙을 초월한다. 미사와 함께 대표적 가톨릭 교회 음악 중 하나인 모테트는 본래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서 기원한 다성 음악 양식으로, 초기 모테트에서 이뤄진 실험은 현대 음악의 근간인 대위법을 발전시켰다. 음표와 음표, 독립적인 두 개 이상의 멜로디가 조화롭게 결합해 이루어지는 기법. 바흐의 모테트는 BWV 230을 제외하면 기악 성부 없이 인간의 목소리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 질박하면서도 정교한 다성 음악을 듣고 있자면 인간의 힘으로 도달할 수 있는 그 너머를 내다보는 것 같다. 지금 프랑스 고음악계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젊은 지휘자 라파엘 피숑과 그의 앙상블 피그말리온의 앨범으로, BWV 225부터 BWV 230까지의 모테트를 수록했다. 신을 믿지 않지만 한 해의 안녕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흐의 모테트를 듣는다. 조금은 경건해져서 한 해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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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예지
PHOTOGRAPHY 박원태
FLORIST 무드

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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