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좋아하나?
추위는 싫어하지만 겨울의 무드는 좋다. 크리스마스를 진짜 좋아하는데, 밤에 노란 불빛이 환하게 켜지고,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풍경을 볼 때마다 쓸쓸하고 우울하면서도 이상하게 좋다.
쌀쌀한 겨울밤, 떠오르는 가사가 있나?
밤에 도로를 달리는데 불빛이 환한 가로등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고 뭔가를 떠올렸다. 아직 작업 중이다.
펜타곤 리더, 프로듀서, 여러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로서 치열하게 살아왔다. 최근 뮤지컬 <광염소나타>에 ‘J’ 역으로도 출연했고, 트로트 그룹 ‘다섯장’으로도 활동했더라.
열여섯 살 때부터 연습생을 시작했는데 스물네 살 막바지에야 데뷔했다. 데뷔한 후엔 그만큼 절실했고 치열하게 달렸다. 돌이켜보면 스무 살까지는 피아노 앞에 그냥 오래 앉아만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연습 시간은 길지만 몰두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적도 없었고, 잘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주변에서 “쟤 어떡하지” 하고 고민도 많이 하셨다. 콤플렉스도 커져갔다.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왔나?
어릴 때부터 내가 조금이나마 잘한다고 생각하는 건 포기하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 육상부의 장거리 선수였다. 장거리 달리기는 간단하다. 그냥 뛰면 된다. 그런데 남들은 그걸 대단하다고 하더라. 어린 나이에 10km를 달리다니 대단하다.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포기하지 않고 뛰었을 뿐인데. 그런 습관이 붙어 포기하지 않는 게 몸에 뱄다. 웬만하면 어떻게든 해낸다. 20대 때 하려고 작성한 버킷 리스트도 거의 다 이뤘다. 펜타곤 활동도 열심히 했고, 곡도 많이 썼고, 고정 예능도 했고, 뮤지컬도 했고.
음악 관련 서바이벌을 다 섭렵했더라. <건반 위의 하이에나> <더 콜> <로드 투 킹덤> <로또싱어>까지.
하하. 음악 서바이벌 전문이다. 서바이벌만의 묘미는 컨셉추얼하고, 스토리가 확실한 곡들이 있다는 거다. 음악 방송에서 하면 너무 세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서바이벌에서는 먹히거든. 그런 부분이 재미있다. 점수나 순위가 실시간으로 나오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고.
(여자)아이들 전소연과 오버랩되는 이야기가 있다. 같은 기획사 소속 팀의 리더이자 프로듀서로서 좋은 자극이 되기도 하나?
소연이와 친분은 없지만, 굉장히 좋은 음악을 만들고, 깊이 고민하는 게 느껴진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이런 생각을 했어?’라고 느껴지는, 배울 점들이 늘 있다.
작사 작곡을 하는 아이돌은 많지만 후이처럼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주는 프로듀서는 드물다. 워너원의 ‘에너제틱’ 같은 히트 곡도 당신의 손에서 나왔다.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버티면 승리한다. 하하.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고,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음악적 능력치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라톤 뛰듯 뛰다 보니 어느 순간 터닝 포인트가 생긴 거다.
가수이자 프로듀서로서, 마음에 쏙 드는 곡을 썼을 때와 무대에 섰을 때 언제가 더 즐겁나?
무조건 무대다. 무대에 설 때의 긴장감과 떨림, 쾌감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내가 만든 곡을 무대에서 부를 때 가장 재미있다는 것. 난 음악을 만들기 전부터 머릿속으로 무대를 그린다. 전체적인 색, 무드, 의상, 소품, 댄서들의 움직임, 노래 부르는 이의 캐릭터까지. 뚜렷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생각한 후 곡을 만들기 때문에 안무와 의상 등 여러 면에 참여하고 무대에 오른다. 퍼즐처럼 딱 맞지.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반대로 내가 쓴 곡을 남이 소화할 때는?
‘에너제틱’ 이후 곡 청탁을 많이 받았다. 옹성우 님을 비롯해 여러 가수들의 곡을 썼다. 곡 청탁이 오면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혀드리려 한다. 그분에 대해 공부하고, 화보도 보고, 어떤 무드의 사람인지 파악한 후 어울리는 콘셉트를 찾아 노래를 만든다. 그렇게 곡이 팔렸을 때의 희열도 남다르거든. 하하하. 내가 만든 곡이라도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다른 곡이 되는 게 흥미롭다.
음악을 만들기 전에 설계도부터 짜는 타입인가 보다.
고민하고 만드는 음악과 고민을 안 하고 만드는 음악은 차이가 아주 많이 난다. 나 스스로도 시간에 쫓겨 만든 곡들은 아쉬움이 남더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하고 구체적일수록 좋은 곡이 나온다.
프로듀싱하는 모습을 보니 깐깐하게 디렉션을 주던데.
하하하. 요즘엔 너무 내가 만든 그림 안에 멤버들을 맞추려고 했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최근엔 멤버들의 개성이 드러나도록 놓아두는 편이다.
펜타곤의 ‘데이지’는 사랑하는 이를 데이지에 비유한 서정적인 곡이다. 언어를 섬세하게 다루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곡가마다 멜로디에 가사를 맞추는 사람이 있고, 가사에 멜로디를 맞추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가사에 멜로디를 맞추는 사람이다. 나는 음악이 결국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이 음악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가사 한 문장을 4일 내내 고민하기도 한다. 해바라기 선배님들과 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 ‘사랑으로’라는 노래를 만드는 데 2년간 가사를 썼다고 하시더라. 난 새 발의 피다.
그리고 펜타곤은 데뷔 4년 만에 이 곡으로 첫 1위를 했지. 기분이 어땠나?
안도감이 너무 컸다. 입대 전 마지막 앨범이었기 때문에 부담과 고민이 컸다. 멤버들도 후이 형 군대 가기 전에 1등 한 번만 해봤으면 좋겠다고 입에 달고 살았고. 정말 많이 고민하고 만든 곡이다. 너무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결과다.
후이가 쓴 가사들엔 잘 안 되더라도 웃자는 기조가 있더라. 제자리라도 포기하지 말자, 지치지 말자, 웃자는 비관 속 긍정과 낙관. ‘찌질이’에서 ‘빛나리’가 되는 펜타곤의 노래 ‘빛나리’처럼.
그런 가사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결과적으로 음악은 내 이야기고, 기대만큼 우리 팀이 승승장구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버티는 사람이 승리하는 거라고 멤버들에게 늘 이야기했다. 포기만 안 하면 언젠가 기회가 한 번은 올 거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준비만 하고 있자. 우리 멤버들도 믿고 있었다.
방송을 보면 멤버들과 유대감이 무척 돈독해 보이더라. 좋은 리더 같았다.
상대방을 최대한 존중하려 한다.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먼저 의사를 묻는다. 진짜 제일 중요한 건, 누군가 실수를 했다 해서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타박을 하지 않는 것이다. 팀에선 그런 사소한 존중이 꼭 필요하다.
후이가 <브레이커스>에 출연해 “날 믿어주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달려온 진솔한 감정을 토로하는 자작곡 ‘For You’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멤버들이 눈물을 죽죽 흘리더라. 팀의 리더로서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누가 나를 보고 따라오려면, 내가 제일 열심히 해야 한다. 가장 잘하진 못해도 제일 열심히 해야 멤버들도 나를 따라올 수 있거든. 그건 인위적으로 ‘날 믿어, 따라와’라고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매 순간 어떤 일이든 해보려고 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나서서 해결하려 했다.
후이가 쓴 곡 중 가장 후이다운 곡은 뭔가?
아직 들려드리지 않은 ‘다섯 살’이라는 솔로 곡. 다섯 살 때 계단에서 넘어져 동전을 떨어뜨리고 울었는데 외할머니가 동전을 주워주시고 “일어나”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때 일어났던 기분으로 지금도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가장 나다운 곡이다.
가수, 프로듀서, 리더…. 후이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회택이라는 사람이지. 하하. 나는 멋진 뮤지션이 되고 싶지만, 한편으론 내가 평생 음악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지금은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만들고 뮤지컬을 하고 있지만, 성악을 배우거나 드럼을 칠 수도 있고, 음악 아닌 다른 걸 할 수도 있다. 관심 있는 분야를 다 경험해보고 싶다. 연기도 해보고 싶고, 장사도 해보고 싶고, <아레나>에서 인턴으로 일도 해보고 싶다.
<아레나> 인턴이라니 환영이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무대를 만드는 데 있어 음악만큼 중요한 게 패션이다. 음악이 무대 배경이라면 패션은 거기에 그리는 그림 같은 것이지. 스타일리스트 형과도 많이 얘기한다. 개인적으론 쇼핑을 좋아한다. 꽂힌 아이템이 있으면 주야장천 그것만 산다. 바지에 꽂혀서 일본 투어하며 빈티지 숍에서 바지를 7개씩 산 적도 있다. 패션지에서 인턴으로 일하면 아티스트로서 일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언제 한번 놀러 가도 되나?
언제든 와주시라.
정말이다. 조만간 놀러 가겠다.
치열하게 활동하다가 잠시 팀을 비운다. 군 입대를 앞뒀는데 어떤 기분인가?
원 없이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고 가서 홀가분하기도 하다. 최근 멤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내려놓았고 역할을 나눠주려 했다. 인수인계랄까. 내 빈자리를 아무렇지 않게 잘 메울 테고, 잘해낼 거다. 1년 9개월이 지나면 사람들이 후이를 잊어버릴까봐 불안하지만.
지금 스물여덟 살이니 다녀오면 서른이다.
다녀오면 서른 끝자락이다. 지금의 내가 10대 때의 나를 후회하듯, 그때의 내가 20대의 나를 후회하진 않을 거다. 그러니 이젠 30대의 후이를 잘 준비해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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