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가 들썩거렸지만 출시 1년이 지난 지금 무섭도록 고요하다. 구독형 게임 서비스 얘기다. 대표적인 게 ‘애플 아케이드’다. 접근 방식은 혹할 만했다. 애플이 직접 선택한 1백여 종 이상의 수준 높은 게임을 월 6천5백원만 내면, 무제한으로 플레이가 가능하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 iOS 생태계 전반에서 크로스 플레이가 가능한 확장성, 5인까지 계정 공유가 가능한 가성비, 유비소프트·캡콤·어스투게임즈 등 개발력을 인정받은 스타플레이어까지 포섭했다. 애플의 모바일 플랫폼 장악력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다. 이론상 망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현실은 찻잔 속 태풍처럼 초라하다. 애플 아케이드 1년간의 여정을 살펴보면 마이크 타이슨의 어록이 떠오른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한방 얻어맞기 전까지는.”
애플의 청사진은 게임사는 물론 유저에게도 매력적으로 들렸다. 게임 본연의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확률형 아이템이나 추가 결제를 금지했다. 보상을 얻기 위해 의미 없는 30초 광고를 반복 재생해야 하는 구질구질함도 없다. 다수의 콘텐츠를 묶음 판매해서 콘텐츠를 저렴하게 공급하고, 제작사는 새로운 판로와 구독료 기반의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한다. 애플이 손수 제작 지원까지 해준다. 애플 아케이드의 사업 모델은 넷플릭스의 그것과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성패를 가른 건 서비스 방식이 아니라 콘텐츠, 킬러 타이틀의 유무였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주는 기대감과 재미를 애플 아케이드의 독점작들은 제공하지 못했다. 5성급 호텔 뷔페인 줄 알고 기대감에 부풀었는데, 알고 보니 동네 어귀 신장개업 치킨집 점심 뷔페에 초대된 느낌이랄까.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그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들를 정도일 뿐 확 당기는 특별함은 없었다. 애플 아케이드 대표작의 면면을 살펴보자.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시리즈를 모방한 <히어로즈 오브 뉴어스>는 분명 해볼 만한 게임이지만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과 비교하기 어려운 범작 수준이다. 유비소프트의 <레이맨 미니>는 왕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만 유저들을 서비스에 묶어두기엔 무게감이 떨어진다. 댄싱 배틀 장르를 표방한 리듬 게임 <사요나라>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발상이 돋보이지만 내일도 모레도 하고 싶은 중독성은 부족하다. <모뉴먼트 밸리> 시리즈로 유명한 어스투게임즈의 신작 <어셈블 위드 케어>는 스토리와 감성적인 일러스트가 매력적이지만 대중성을 담보하긴 어려운 작품이다. 프랑스의 저술가 기 드보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애플 아케이드에는 소비자를 압도하고 정신을 홀리는 거대한 이미지, ‘스펙터클’이 부재한다.
애플 아케이드의 어정쩡함은 애플이 놓친 세 가지 함정에서 기인한다. 첫째는 독점의 함정이다. 애플 아케이드에 입점한다는 건 구글플레이 등 빅마켓에서 사실상 배제된다는 뜻이다. 독점작은 넷플릭스는 물론이거니와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 등 게임 콘솔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하지만 애플 아케이드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완성된 게임을 판매한다는 콘솔의 ‘풀프라이스(FullPrice)’ 정책은 모바일에서 빛이 바랜다. 진입 장벽을 극단적으로 낮춘 인앱 결제 모델이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애플 아케이드에 입점한다는 건 현존하는 가장 매력적인 수익 모델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성 개발사가 수년의 개발 기간, 수백, 수천억을 투자한 대작 타이틀을 선보이기에 애플 아케이드는 불안 요소로 가득하다. 블록버스터는 빠져나가고 게임성은 괜찮지만 상업성은 보장할 수 없는 인디 게임들이 애플 아케이드의 구독료 울타리에 남게 된다.
두 번째는 디바이스의 함정이다. iOS 생태계를 모두 연동하겠다는 발상은 좋았지만 기기별 성능 격차로 인한 문제가 불거져나왔다. 애플 아케이드는 아이폰이 감당할 수 있는 게임과 아이패드쯤은 돼야 돌아가는 게임이 뒤섞여 있다. 발열과 배터리 광탈, 튕김 현상이 반복적으로 보고됐고 이는 유저 이탈로 이어졌다. 결국 애플은 대작 대신 모바일 환경에 맞춘 가벼운 게임 위주로 라인업을 재편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마지막은 플랫폼의 함정이다. 애플 앱스토어라는 강력한 플랫폼이 애플 아케이드의 성장을 가로막는 모양새다. 게임 제작 도구인 언리얼 엔진과 ‘포트나이트’로 유명한 에픽게임즈는 시장 독점이 불공정하다며 애플을 제소했다. 애플은 앱스토어에 입점한 게임에서 발생하는 매출의 30%를 얄짤없이 수수료로 가져간다. ‘수수료가 지나치게 많다’는 개발사들의 볼멘소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앱스토어 없이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불만을 눌러 담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임사들은 애플 없는 게임 배급을 꿈꾸며 저마다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에픽게임즈의 ‘에픽게임즈 스토어’, 유비소프트의 ‘유플레이’, EA의 ‘오리진’ 등이 대표적이다. 독립적인 ESD(전자 소프트웨어 배급) 시스템을 구축해 중개업체 애플을 건너뛰고 게임을 직배송하는 게 목표다. 업계의 공공의 적이 된 애플에게 게임사들이 순순히 킬러 타이틀을 넘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애플 아케이드의 고전이 게임 구독 모델의 실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9세대 콘솔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시리즈 X’와 소니의 ‘PS5’는 구독 모델을 주요 수입원으로 탑재했다. 월 7천5백원만 내면 <언차티드4: 해적왕과 최후의 보물> <블러드본> <폴아웃 4> 등 PS의 트리플A급 명작 게임들을 무제한 플레이할 수 있다. MS는 한술 더 떠서 게임 뿐 아니라 콘솔도 할부식 구독형 모델로 선보인다. 기기는 염가로 제공하고, 그동안 축적해놓은 방대한 명작 라인업을 풀어 구독으로 이끄는 마중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1980년대 아타리의 <퐁>, 1990년대 닌텐도의 <마리오>와 세가의 <소닉>, 2000년대 소니의 뛰어난 독점작들까지. 압도적인 킬러 타이틀을 더 많이 확보하는 기업이 게임 업계의 왕좌를 차지한다는 성공 방정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파느냐보다 중요한 건 무엇을 팔 것이냐는 고민이다. 제아무리 헐값이라도 썩은 사과는 팔리지 않는다. 강백호의 왼손처럼 판매 방식은 그저 거들 뿐이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