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이라 불리는 젠지들은 SNS로 돈 버는 법을 공부한다. 이미 유튜브와 틱톡에는 주식 강의를 하며 통장 잔액을 보여주는 10대가 수두룩하다. 이들에게 내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하고, 그와 관련된 일자리를 찾아 취업하는 건 더 이상 고민 1순위가 아니다. 매달 받는 월급이 아니더라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심지어 월급보다 더 나은 벌이가 있다는 걸 너무 빨리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 대신 앞머리 롤을 말고 뷰티 브랜드 리뷰 영상을 찍기도 하고, 게임 스트리머 세계에 일찌감치 발을 들이기도 한다. 용돈 모아 주식을 하는 것도 낯선 일이 아니고 말이다.
그렇다면 40대 직장인은 어떨까? 직장 상사보다 존 리의 말을 새겨들으면서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어떻게 하면 더 불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주변 사람들이 먹고 입고 쓰는 모든 브랜드가 다 주식으로 보인다. 점심시간은 이미 부동산 투자 정보나 청약 소식 등을 주고받는 정보 나눔의 장으로 바뀐 지 오래다. 일은 손에 익었고, 통장에 굴릴 만한 돈은 있고, 투자에 성공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직장을 관둘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벌써 직장인이 되는 것 외에 다른 삶을 개척 중인 10대와 이미 부동산과 주식에 열을 올리는 40대 사이에 낀 20~30대 청년은 그래서 더 외롭다. ‘취업 뽀개기’에 성공하기만 하면 나름대로 밝은 미래가 펼쳐지던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긴 터널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청년의 취업 자체가 어렵다. 원래도 취업문은 그리 넓지 않았는데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한층 더 좁아졌다. 기업은 기존 인원을 감축하거나 월급을 삭감하는 극단의 조치까지 내릴 상황이기 때문이다. 신입을 원하는 기업은 많지 않고, 있더라도 충원할 규모는 매우 적다. 이 상황에서 정말 어렵사리 취직을 했다 하더라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월급을 아껴 저축하고, 그 돈이 모이면 대출받아서 집을 살 수 있던 시대는 진작에 지나갔기 때문이다. ‘수년 전 사놓은 집이 몇 억 올랐다’ ‘예전에 사들인 주식이 몇 배 올라서 몇천이 몇억이 됐다’는 과장급 이상 회사 선배들의 전설만 구전으로 회자될 뿐이다. 심지어 주식 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수년 전 회사 주식을 배당받은 선배들은 자기도 모르는 ‘공돈’이 생겼다는 전설만 남겨준다. 그걸 지켜보는 청년 신입 직장인은 도대체 이 회사에서 어떤 목표를 세우고 실행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업무 능력을 인정받고, 진급을 하고, 연차가 쌓여 연봉도 오르고, 이렇게 티끌이 쌓여 태산이 되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티끌 모아 티끌처럼 느껴진다. 연봉 오르는 속도보다 물가 오르는 속도가 더 빠른 데다, 방 한 칸 마련하려고 받은 대출금 갚기도 사정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면 회사 밖에서 돌파구를 찾는 사람들 천지다. 직장을 다니는 청년이 퇴근 후 진짜 일을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볍게는 용돈 벌이로 ‘배민 커넥트’ 배달 알바를 하는 친구부터, 자기 사업을 하기 위해 소셜 살롱에서 지식과 네트워크를 쌓는 친구, 또 직장인 브이로그나 한 끼 먹방 같은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친구까지. 회사 업무를 마친 뒤 회사 밖에서 답을 찾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유행처럼 번진다. 단순히 ‘자기 계발’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이 노력을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한 치열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회사에서 얻는 소속감의 ‘메리트’는 찾기 힘들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요즘엔 회사만 다니는 청년을 찾아보기 힘들다. 자기 커리어를 흥미롭게 알리고, 자기 자신을 좋은 브랜드로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회사는 그저 이 과정을 밟아가는 작은 디딤돌에 불과하다. 대중에게 호감도가 높은 회사를 다닌다면 조금 더 쉽게 풀릴 수도 있다. SNS를 적극 활용해서 자신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능력치를 한껏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주말이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개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법도 있다.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서 소셜 미디어를 통한 소소한 캠페인을 펼쳐본다거나, 콘텐츠를 만들어본다거나 하는 식의 개인 프로젝트를 포트폴리오용으로 준비할 수 있다. 실제로 평일 늦은 저녁 시간에 크고 작은 소셜 모임을 통해 회사와 상관없는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청년이 꽤 많다. 이런 모임에 나가보면 반드시 직업이 2개 이상인 청년을 만나게 된다. 특정 회사에 소속되기보다 자기 능력으로 다양한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젊은이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어떤 회사를 다니는 누구’인지보다 ‘어떤 능력을 갖춘 누구’인지가 훨씬 의미 있어진다. 자연스레 서로에게 나이와 직업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요즘 소셜 모임의 트렌드일 정도.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회사 밖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청년은 회사 업무를 더 잘하기 위해서가 아닌, 회사를 더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덜 쓰고 아껴서 돈을 모으기보다, 아예 처음부터 더 많이 버는 방법을 스스로 체득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청년에게 회사는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밑그림 정도가 됐다. 본격적인 돈벌이를 위한 워밍업 혹은 스쳐 지나가는 첫 단추라고나 할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다니는 회사가 나를 대변해줬다. 그 회사의 위상과 호감도가 그곳에 소속된 나를 말해줬다. 소개팅에 나가서 좋은 회사 다닌다고 얘기하면 그래도 먹혔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회사의 능력이 아닌 나 자신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알려야 하는 시대가 됐다. 잘나가는 직장인이라는 안정감보다 나라는 브랜드를 알리고 인정받는 행위가 훨씬 더 중요해졌다. 그래야 고정 수입을 아껴 돈을 모으는 것보다 더 빨리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래야 남들 다 하는 주식과 부동산도 기웃거릴 수 있다. 그래야 미디어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삶의 질을 레벨업할 수 있다. 2020년을 사는 청년에게 회사는 그저 내 돈벌이를 거들 뿐, 더 이상 충성을 바쳐야 할 ‘평생직장’의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됐다. 이제 기업 면접관들은 “5년 후 이 회사에서의 비전을 얘기해보라”는 질문을 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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